김 재 성
조계종 전통사상서간행회 선임연구원
요즘 인생의 어려움, 마음의 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대중매체를 통해서,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을 통해서 자주 접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삶을 포기할까하는 생각을 하며, 연민의 마음이 일어나는 한 편, 나는 어떻게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깊어가는 가을, 사춘기 때 일어났던 실존적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도심의 인도 위를 구르는 낙엽을 밟으면서, 산기슭을 오르며 밝게 떠오른 10월의 보름달 빛을 받으면서, 인생에서 정말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삶의 진정한 의지처는 어디에 있는지 마음 속 깊이 물음을 던져봅니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마음은 여덟 가지 인생의 부침[八風, 八世間法]에 의해 항상 흔들립니다. 칭찬과 비난, 명예와 불명예, 이익과 손실,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바람이 부는 세상살이, 이리 저리 흔들리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4가지 순풍이 불면 들떠 흔들리고, 4가지 역풍이 불면 침체되어 흔들립니다. 바람 앞의 등잔처럼 위기의 순간들의 연속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처럼 불어오는 세간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하게 깨어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풍전등화와 같은 인생살이에서 진정한 의지처는 어디에 있을까요?
반열반(완전한 열반)을 앞두신 부처님은 붓다 입멸 후에 법과 율을 스승으로 삼을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과 법을 의지처로 하라고 가르치십니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DN II 100 이하) 그리고 아라한이 되지 못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신 후 입멸하십니다.
“그럼 잘 들어라, 비구들이여! 지금 너희들에게 이르노라. 모든 조건지어진 것은 소멸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諸行壞法). 게으르지(방일하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 , .”
우리는 45년을 인연이 닿는 중생들을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해탈에 이르게 도와주셨던 붓다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훈에서 진정한 의지처가 무엇인지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지처는 바로 세간의 바람을 위시한 무상한 것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열심히 계정혜 삼학[八正道]을 닦는 정진을 하여, 법에 의해 잘 닦인 자신의 마음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순풍의 단맛에 빠져버리기 쉽고, 역풍의 쓴맛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인생에서 순풍의 맛을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그 바람도 지나가고 만다는 것을 알고 평정한 마음으로 대하면 어떨까요. 역풍이 괴로워도 그 바람도 스쳐지나가고 만다는 것을 알고 평정심을 유지한다면 어떨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순간순간 흐르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이것이 부처님께서 의지하라고 하신 법입니다. 이 법에 굳건하게 머물게 되면, 끊임없이 부딪혀오는 순풍과 역풍에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마음에 이와 같은 여유 공간이 생기게 되면, 세상의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행복과 평온함이 찾아옵니다. 섬세해진 마음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도 놓치지 않으면서 알아차리게 되며, 마음은 더욱 평온해지게 됩니다. 지극히 평온해지고 깨어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지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처님과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은 옷 3벌과 발우하나와 최소한의 소지품만을 지니셨지만, 정말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사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비난을 하거나 칭찬을 하거나, 마음은 동요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 분들이 얻은 진정한 의지처는 세상의 바람에 의해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은 도구일 뿐, 도구를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 도구에 휘둘리게 됩니다. 도구는 필요하지만 그 한계를 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길들여진 마음을 떠나 따로 삶의 안식처는 없음을 깊이 이해하여, 각자의 근기에 맞는 방법으로 진정한 마음의 평온과 행복을 위해 정진한다면, 바람 속에서도 평온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행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