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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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발탑사의 여인
인욕바라밀 닦은 수행자 깨달음의 길 가니…

만발공양 법회에서 여인으로 화한 문수보살
“떡 과일만 올리지 말고 평등한 마음 올려라” 일갈

문수도량으로 유명한 중국 오대산은 높이 3058m로 중국 북동쪽에 위치한다. 다섯 봉우리로 이뤄져 오대산이라 불리는 이 산은 당나라 때 법화, 화엄, 천태, 정토 등 종파와 신흥 밀교 고승들이 많은 사원을 개창한 불교 성지다. 특히 <화엄경>에서는 문수보살이 머무는 청량산과 동일하게 인식됐다.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 자장 율사는 청량사에서 47일 기도 후 문수보살로부터 불사리와 금란가사를 받고 귀국해 설악산 봉정암 사리탑을 조성했다는 설화도 있다.
오대산 발탑사(髮塔寺)에 전해내려 오는 다음 이야기는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해 발탑사에서 만발공양 무차법회가 봉행되던 날, 한 여인이 동자와 함께 개를 데리고 도량에 들어섰다. 개가 도량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볼 일’까지 보자 대중들은 개를 데리고 온 여인에게 화를 냄은 물론, “저 개를 때려야 한다”며 불평했다.
이에 여인은 오히려 “볼 일 안 보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호통 치며 원주스님을 불러,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다.
원주스님이 “만발공양 무차법회가 있다”고 답하자, 여인은 “가위를 갖다 달라”고 요구하고 “머리카락을 잘라 부처님께 올리겠다”고 말했다. 가위와 쟁반을 갖다 주자 여인은 그 자리서 손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쟁반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을 지켜 본 대중들은 ‘보살’이라고 칭송하며 그 여인을 따뜻이 맞이했다.
법회가 오랜 시간 지속되자, 여인은 원주스님에게 밥을 달라고 청했다.
원주스님이 “법회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밥을 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지만, 여인은 “나도 머리카락 보시를 했으니 밥 먹을 자격이 있다”며 당장 가져오라고 또다시 호통을 쳤다.
원주스님은 법회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여인의 요구대로 밥 한 그릇을 갖다 주었다. 그러자 여인은 동자와 개도 먹어야 한다면 밥을 더 요구했다. 개밥까지도 갖다 주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여인은 “임신을 했다”며 한 그릇을 더 요구했다.
당돌한 여인의 돌출 행동을 보다 못한 대중이 “냄새나는 머리카락 보다 밥값이 더 들겠다”며 소리 쳤고, 이에 여인은 “그럼 밥 안 먹고 머리카락 다시 가져 가겠다”며 동자를 시켜 머리카락이 담긴 쟁반을 가져오라 했다.
동자승이 머리카락을 여인의 머리에 대자마자, 머리카락이 자르기 전과 똑같이 머리에 달라붙는 게 아닌가. 사람들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할 때, 여인은 “좀 전에 이 개를 때리고 싶다고 했는데 남이 내 개를 패는 것은 원치 않으니, 내가 직접 땅에다 팽개칠 터이니 잘 보라”며 개를 땅에다 내리꽂았다. 그러자, 허공에서 땅으로 떨어진 그 개는 곧바로 청사자로 변했고 하늘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떴다.
여인은 동자승을 데리고 청사자 등에 올라타고는 허공을 날아오르며 “중생들이여 평등한 마음을 배워라”고 일갈했다. 말로는 “마음을 넓게 쓰라” 하면서 ‘볼 일 보는’ 개가 미워서 때리려 하는 마음은 무엇인가? 머리카락 자르기 전에는 ‘못된 여인’이었다가, 자르고 나니 바로 ‘보살’로 부르는 그 마음은 무엇인가. 만발공양 무차법회에서 떡과 과일만 올렸지 진실로 중요한 마음 한 자락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대중들은 문수보살에게 참회하며 중생을 위해 법문 한 구절만 들려달라고 간청했다.
이 때 여인으로 변화했던 문수보살은 이렇게 법을 설한다.
“때리면 맞고 밀치면 뒹굴 뿐. 얼굴에 침을 뱉거들랑 마를 때까지 그냥 두어라. 이런 사람을 보살이라 이름 하나니라.”
이에 대중이 “머리카락 몇 올이라도 남겨 주시면 보전해 문수보살님의 오신 뜻을 새기겠습니다”하고 간청하자, 문수보살은 “쟁반위에 몇 올이 남아 있다”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이 이야기가 바로 발탑사의 유래이다.
문수보살의 이 법문은 인욕의 극치를 보여준다. 인욕바라밀을 닦은 수행자는 혼자 있어도 게으르지 않으며 칭찬과 비방에 흔들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언제나 당당하게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김성우 기자
200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