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집착 버리고 실상 보면 안심입명”
부동 우바이 머무는 ‘안주’ 흐트러지지 않음 상징
불법 수지?보살도 성취로 ‘싫음 없는 삼매’ 얻어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는 보살도를 닦는 방법을 묻기 위해 남쪽의 안주(安住)라는 국토의 서울에 있는 부동(不動) 우바이를 찾아간다. 한량없는 친족들에게 묘법(妙法)을 설하고 있는 화려한 궁전에 들어서니 금빛 광명이 두루 비치는데, 이 광명에 닿은 사람은 심신이 청량해졌다. 그 모습은 너무나 고결해 잠깐 보기만 해도 모든 번뇌가 저절로 소멸될 정도였다. 또 몸에서는 광명이 나와 중생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고, 몸의 털구멍에서는 항상 묘한 향기가 나왔다.
선재동자가 환희심을 내어 찬탄하면서 가르침을 청하자, 부동 우바이가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꺽을 수 없는 지혜장(智慧臧)해탈문, 견고하게 받아지니는 수행문, 모든 법을 평등하게 모두 지니는 문, 모든 법을 밝히는 변재문, 모든 법을 구하는 데에 고달파하지 않는 삼매문을 얻었다.”
선재동자가 그러한 삼매를 얻은 까닭에 대해 묻자, 그녀는 자신이 불도를 수행하게 된 인연과 과정을 설명했다.
“선남자여, 지난 세상에 수비(修臂)여래가 계셨을 때 나는 국왕의 딸이었다. 밤중에 나는 누각 위에서 별을 보고 있다가 허공에 계시는 그 부처님을 뵈었다. 나는 ‘세존께서는 어떠한 업을 지었기에 거룩한 모습이 원만하고 광명이 구족하며, 권속을 많이 두고 궁전을 장엄하며, 신통이 자재하시고 변재가 걸림이 없는가’하고 생각했다.
그 때 여래께서 나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깨뜨릴 수 없는 마음을 내어 모든 번뇌를 없애라. 이길 이 없는 마음을 내어 모든 집착을 깨뜨리라. 물러가지 않는 마음을 내어 깊은 법문에 들어가라. 참고 견디는 마음을 내어 나쁜 중생을 구호하라. 의혹이 없는 마음을 내어 모든 길에 태어나라. 싫어함이 없는 마음을 내어 부처님 뵈오려는 생각을 쉬지 말라.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을 내어 모든 여래의 법비(法雨)를 받으라. 옳게 생각하는 마음을 내어 모든 부처님의 광명을 내라. 크게 머물러 지니는 마음을 내어 여러 부처님의 법륜을 굴리라. 널리 유통하려는 마음을 내어 중생의 욕망을 따라 법보를 베풀라’고 하셨다.
선남자여, 나는 이러한 법을 듣고 온갖 지혜, 부처님의 열 가지 힘ㆍ변재ㆍ광명ㆍ육신을 구했다. 선남자여, 내가 이 마음을 낸 후부터는 탐심을 내지 않았고 다른 중생에게 분심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한 겁 동안에 받아 지닌 여러 부처님의 바른 법을 한 글자도 잊지 않았다. 그 동안에 여러 보살들이 묘한 행을 닦는 것을 보고 한 가지 행도 내가 성취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또 내가 본 중생들 중에서 한 중생에게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도록 권하지 않은 적이 없다. 선남자여, 나는 그때부터 항상 모든 중생의 번뇌를 없애고, 그들의 좋아함을 따라 몸을 나타내며 훌륭한 말로 모든 중생을 깨우친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모든 법을 구하여 싫음이 없는 삼매의 광명을 얻고, 모든 중생에게 미묘한 법을 말해 기쁘게 할 뿐이다.”
부동 우바이의 의보(依報: 거처)와 정보(正報: 신체의 용모)가 훌륭한 것은 끊임없는 지계, 인욕, 정진 등 보살행으로 말미암아 갖추어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 보리심을 일으키고 나서 무수한 세월 동안 불법을 한 구절도 잊지 않고 수지하며 보살행을 닦아 보살도를 성취했기에 ‘싫음이 없는 삼매’의 광명을 얻어 항상 모든 중생에게 미묘한 법을 설하게 된 것이다.
부동 우바이가 머무는 곳이 ‘안주(安住)’인 것은 항상 진실한 법에 의지해 외부의 경계에 의해 흐트러지지 않음을 상징한다. 또 이름이 ‘부동(不動)’인 것은 발심한 이래로 무량겁을 지내오면서 세속의 욕심과 성냄과 원한 등에 흔들리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육조스님은 <금강경오가해>에서 “법을 듣는 사람의 갖가지 모습은 같지 않으나 분별심을 짓지 말 것이니, 다만 공적하고 일여한 마음을 요달하여서 ‘무엇을 얻으려는 마음(所得心)’ㆍ승부심ㆍ바라는 마음ㆍ생멸심이 없으면 이를 이름해 여여부동(如如不動)이라 한다” 했다. 규봉 선사가 “부동이란 ‘물듦이 없음(無染)’이다” 했듯이, 부동 우바이처럼 한결같이 보살도를 닦는 수행자는 갖은 경계에서 오는 번뇌ㆍ망상을 마주하되 사랑하고 미워하는 분별심과 집착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봄으로써 흔들림 없는 본래자리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