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 종합 > 기사보기
여러분이 있기에 부처님도 있고 불법도 있는 겁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시되 내가 했단 말 하지 마세요

진짜로 믿는다면
고꾸라지든지 가든지 오든지 그런 걸 상관 안 하고
근본에다 턱 맡기고 그냥 진짜로 내가 한다는 생각 없이 한다면
아무 괴로움이 없어요!

(지난 호에 이어서)
한마디만 더 하고 질문받겠습니다. 여러분이 말입니다, 항상 내가 그 말은 빠뜨리지 않고 합니다. 가족간에 친척간에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내 탓으로 돌리고 주인공에 맡겨 놓아야 됩니다.
이런 예가 있었죠. 수원에 어느 삼 형제가 사는데 밭 하나라도 그냥 더 가지려고 서로 싸우고, 음식을 했어도 하나 주지도 않고, 조금만 잘못해도 몽둥이를 가지고 그냥 서로 패고 들고 싸우고, 참 어렵게 살았더랍니다. 근데 어떡하다가 선원에 오게 됐어요. 선원에 오게 됐는데, 떡 보니까 말입니다, 나한테 착 오는 게 뭐냐 하면 ‘저렇게 위도 모르고 아래도 모르고 천방지축들이니 안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당신네들, 자식을 기르고 살지?” 그러니까 그렇대요. “몇 남매나 뒀어?” 그러니까 오 남매를 뒀고 뭐 삼 남매를 뒀고 모두 그렇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랬어요. “그러면 요다음에 죽을 때에 자식들한테 어떻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느냐?” 하니까 “으레 자식들은 부모를 섬겨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래요. 그래서 “그럼 자식들이 부모를 섬겨야 한다면 당신네 부모들은 어떻게 섬겼느냐?” 그랬어요. 그랬더니 아무 소리 못하고 고개를 푸떡 떨어뜨리더군요.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과 돌아가신 후에 어떻게 했는지 그 양면을 다 얘기를 해 줬어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아파서 드러누워 있는 사람에게 방바닥이 뜨거운가 안 뜨거운가 보지도 않고 불을 때서 엉덩이가 다 타서 죽게 만들고, 죽고 나서도 그냥 깔고 있던 그걸로 그대로 두루루 말아서 갖다가 넣는 게 어딨어?” 그랬더니 고개를 푹 떨어뜨리면서 그걸 어떻게 아시느냐는 거죠. “아, 당신이 알고 있는 걸 내가 알지 당신이 모른다면 내가 어떻게 알아?” 이랬어요. 그때부터 이 공부를 하기 시작을 하더니 그 삼 형제는 아주, 모두 오 남매인데 얼마나 다정다감하게 다 잘 지내던지 정말이지 잘 살게 됐더랍니다. 외국도 가게 되고요.
그런 거와 같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부모나 자식이나 부부지간이나 아무리 잘못한다 하더라도 배척을 해서 버리려고 하지 말고 모든 거를 그 안에 넣고 ‘응, 모자랄 때 내 모습과 같아. 그러니까 너만이 그렇지 않게 할 수 있어.’ 하고 거기다 놓고 부드러운 말, 부드러운 행, 부드러운 뜻을 가지고 마음을 먹으면 저절로 잘될 것이고 저절로 복덕이 아니라 공덕을 받게 되고, 저절로 집안이 아주 유하고 광명이 스스로 들어서 하나도 애고가 없이 잘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저 만나면 사랑하고 만나면 즐겁게 웃고 말입니다. 자식들도 마음과 마음으로 붙들고, 남편 부인도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붙들어야지 몸을 붙들려고 그러고 말로 해서 붙들려고 그런다면 붙들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붙든다면 육체는 저절로 붙들어지죠. 허허허…. 그 도리가 아주 묘한 도리인 줄 아셔야 될 겁니다. 마음을 붙들어야 육체가 붙들어지고 육체를 붙들어야 화목도 붙들어진다고요.
우리가 몸을 붙들려고 “예이, 이놈의 개새끼, 소새끼!” 하고, 하하하…, “너는 내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도 그 고생한….” 아, 고생을 했으면 같이 고생을 했지 뭐 혼자만 고생했겠습니까? 이 세상을 가만히 보십시오. 끼리끼리 모여 있죠? 사과는 사과대로 배는 배대로 있죠? 그와 같이 여러분도 끼리끼리 만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누구를 나무라고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렇게 끼리끼리 만났으니 그저 ‘한마음 주인공! 너만이 해결할 수 있다.’ 하고 거기다 놓고 부드럽게 해 주고, 부드러운 말 해 주고, 부드럽고 정답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이러한 마음으로써 사랑하고 위로해 준다면 너무나 행복해지고 잘 살게 될 겁니다, 아마. (대중 박수)
부처님 법이 경전에만 있고 부처님한테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없으면 부처님 법도 없을 거고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에 부처님도 있고 부처님 법도 있는 겁니다. ‘일체제불의 마음’ 그 노래를 했죠? 노래를 한번 해 보면서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부처님 법이 어디 있는가를 잘 아실 겁니다. 우리가 그대로 불교입니다. 불교 자체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생명의 근본이 불이고, 말과 마음과 서로 통하고 돌아가는 게 교이고, 그러니까 불교는 그대로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네 가정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진리 자체가, 바로 살림 자체가 바로 부처님 법이자 도입니다. 도도 딴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살고 있는 생활 속에 도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마음 하나만 잘 쓰면 물리가 터지고 지혜롭게 돼서 공덕을 크게 받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질문하십시오.

질문자1(여) 스님, 오랫동안 좋은 법문 들려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는 평소에 생활하면서 불교와 생활이 둘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고 주인공한테 항상 맡기면서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근데 제가 주인공한테 항상 맡기면서도 ‘주인공, 이렇게 이렇게 해야지.’ 하고 맡기면서도 주인공한테 관하는 방법이 올바른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고 항상 의심이 조금씩 들거든요.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주인공한테 잘 관하는지 올바르게 이끌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님 그래서 여직껏 말해 주지 않았어요? 당신, 지금 말하는 자체가 바로 그 주인공 놈이라고. 말하게 하는 놈 자체가 바로 주인공 놈이에요. 그러니 믿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어요. 하하하….

질문자2(여) 감사합니다. 스님께 어려운 일 병고 액난을 하소연했을 때 스님께서는 “주인공을 믿고 거기에 맡겨 놓고 관하세요.”라고 하십니다. 관하는 도리를 통해 병이 낫게 되었다고 할 경우에, 병이 낫는 까닭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스님 여지껏 말했지 않소? 회사를 다스리는 회장과 같아서 바로 내 몸속에 모든 생명의 의식들이 그 회장의 결정 하에 작용을 한다고. 내 몸속에 모든 생명의 의식들이 바로 여러분이 마음을 정하는 데에 따라 작용을 하는 거지 여러분이 믿지도 않고 마음도 정하지 않는데, 결재도 내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직원들이 일을 합니까? 그와 같이 내 몸속에서도 결재를 해야 작용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병이 나을 수가 있는 거죠. 그래도 모르겠어요?

질문자3(남) 무량법문 잘 들었습니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면서, 막상 선원을 떠났을 때 그 도리를 실천하지 않는 저희들의 모습을 보면 스님의 그 한량없는 자비심을 또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관한다고 함은 곧 지켜보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무엇을 지켜보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생각, 자기의 마음이 현재 상태를 지켜보는 것인가? 마음으로 마음을 지켜보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놓고 가는 것인가? 이래저래 생각해 봅니다만 여전히 모를 때가 많습니다. 스님 가르침 청합니다.
스님 마음이라는 건 허공과 같아서 마음이 요거 한 가지를 생각했다면 고정되게 고거 한 가지만 딱 물려서 있는 것이 아니죠? 요 마음으로도 화할 수 있고 조 마음으로도 화할 수 있죠? 금방 딴 사람 만났으면 금방 화하고, 또 딴 사람 만났으면 금방 화하고, 이렇게 화해서 돌아가지요? 그러니까 그 마음이 바로 자기 주인공에게, 자기 마음 근본에다가 딱 놓고 자기가, 자기 마음이 지켜보는 거예요. 마음이라 그러는 건 이름이에요. 그러나 수천수만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마음이죠. 그러니까 그거를 지켜보는 것이 참 선(禪)이에요. 그리고 관법이에요.
그러니까 물건을 한번 실험하려면, 밥을 짓는 것도 그렇고 하다못해 무엇을 하나 해도 실험해 보려면 한번 넣고 지켜보지 않아요? 그렇죠? 그와 같이 모든 것을 그렇게 거기 맡겨 놓고, 어떠한 용도에 따라서든지 어떠한 문제든지 거기 놓고 지켜보는 마음을 가지면 바로 그게 실험이요, 그것이 지나가면 바로 체험이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 놓고 관하고 지켜보고, 관한다는 게 지켜보는 거니까 둘 아닌 지혜로운 마음으로 거기다 맡겨 놓고 지켜본다. 지켜보면 체험이 되고 체험이 되면 ‘아, 고놈이로구나! 고렇게 되는 거로구나!’ 하고 그때는 놓치지 않고 갈 수 있죠.
질문자3(남)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질문자4(남) 간단히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복덕과 죄업은 상쇄되는 것인지요. 그 점이 알고 싶습니다.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 그런데 그것이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고, 아까도 얘기했듯이 한마음 속에서 잘못하게 하는 마음을 쓰기도 하고, 즉 말하자면 도둑질을 할 수도 있고 선행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한마음 속에서 나오죠. 즉 말하자면 방송국에서 이것도 나오고 저것도 나오고 다 나오는데 방송국은 하나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그 자체에서는 어느 거든지 다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을 하고 나오느냐에 따라서 수천수만 개가 나올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선덕이나 악행이나 그것은 다 마음에서 생각하는 대로 따라서 되는 거니까 이렇다 저렇다, 갈라져 있다 붙어 있다, 이럴 수가 없는 거죠. 그냥 마음먹는 대로니까요.

질문자5(남) 저는 지금 대학원 다니는 학생인데요, 학교 일정이 있어서 시간이 바쁠 때는 법회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에 있어서 봄에 몇 달 동안 법회에 안 왔었는데요, 법회에 안 오니까 생활이 좀 무기력한 것 같고 일이 좀 잘 안되는 것 같고 그래서 지난 7월부터 법회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또 이렇게 자신감이 더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불교를 기복 신앙으로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의 경우는 법회에 참석하면 뭔지 잘 풀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에요. 시간이 별로 없어도 와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있거든요. 가끔은 졸더라고요. 그런데 이거 자체가 하나의 기복 신앙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스님 하하하…. 아니, 그러면 사는 게 전부 기복이죠. 가고 싶은 데 가는 것이 왜 기복입니까? 그게 당당한 바로 자기 자성의 발현이죠. 타의를 놓고서 빌고 타의에서 찾지 말라 하는 거지 자기 자성에서 일어나는 건 어떤 거든지 그냥 자성 그대로 법이죠.
질문자5(남) 그리고 스님 법어집 『무』에 보면요, 이 세상은 이렇게 당당하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그런 말씀을 핑계 삼아서 조금 소심해서 잘하지 못했던 것이나 계율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해이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 자신에 대해서 좀 느슨하게 대하는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자기 변명이 좀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스님 그런데 말이에요, 이 무(無)의 정신계라는 거는 물질이 나오기 이전이거든요. 그러니까 집을 지으려면 먼저 설계도가 나와야 되는데 정신계라는 것은 설계도가 나오기 이전이거든요. 그렇죠? 설계가 나오기 이전이니까 집을 어떻게 짓든지 설계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설계를 해 놔야 집을 짓죠. 생각을 낼 때는 물건이 나오기 이전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했으면 물건이 어디서 오든 올 수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게 뭐냐 하면 마음과 마음이 일체가 다 같이 전달이 돼서 돌아가거든요. 마음이라는 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포괄적으로 돌아가는 우주 법계에 실현이 되는 그 마음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저주저한다면 자기가 자기 마음을 못 믿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을, 자기 뿌리를 무조건 믿고 거기다 놓고 관찰하면서 체험하면서 돌아가다 보면 스스로 자기를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 ‘아, 과감히 이렇게 이렇게 할 수 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이것이 둘이 아니고 그대로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이 모두를 알게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종합해서요.
질문자5(남) 감사합니다.

스님 (삼 배를 올리는 다음 질문자에게) 한 번만 하세요.
질문자6(여) 스님, 뵙게 돼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한마음선원을 처음 왔습니다. 얘는 고등학교에 갈 제 아들인데요, 마음을 잡지 못하고 주위가 산만하고 불안하고 항상 그렇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좀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 한마디로 말해서, 학생! 잘 들어 봐. (왼쪽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시며) 저 나무에 뿌리가 있어, 없어?
학생(남) 있습니다.
스님 있는데, 나무는 흙에 가려서 자기 뿌리를 못 보지?
학생(남) 예.
스님 사람도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자기의 영혼의 근본 뿌리가 있어. 그렇기 때문에 그 뿌리를 주인공이라고 이름 해. 그 주인공만이 너의 마음을 모두 이끌어 줄 수가 있다고. 네 몸속에 많은 생명들이 있고 많은 의식들이 있기 때문에 그 의식들로 인해서 그런 문제가 생기거든. 그러니까 그 의식들을, 의식들의 마음 나오는 거를 다 다잡아 줄 수가 있는 거니까 ‘주인공, 너만이 나를 이끌어 줄 수 있고, 공부 잘하게 할 수 있고, 너의 심부름을 정직하고 진실하고 잘하게 할 수 있잖아.’ 하고 거기다가 맡기고 그렇게 진짜로 믿어. 네 영원한 친구야. 알았어?
학생(남) 예.

스님 (남자 어린이가 올리는 꽃다발을 받으시며) 너 왔구나! 하하하…. 많이 컸구나! (합장하시며) 아이고, 절도 다 할 줄 알고!

질문자8(남)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하여 오늘 이렇게 또 나왔습니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면서도 기실 그 마음공부의 대상이 어떤 사사로운 이익에 제한돼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기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고통과 고난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스님의 제자로서, 또 부처님의 제자로서 진정 새롭게 추구하고 또 바라야 될 희망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가르침 주시옵기 바랍니다.
스님 지금 ‘부처님의 제자로서, 스님의 제자로서’ 이렇게 말을 했죠? 그런데 말이에요, 우리가 넓게 생각을 한다면 풀 한 포기도 스승 아닌 게 없어요. 부처님만 스승이 아니에요. 나만 스승이 아니고요. 이 세상을 살아나가다 보면 강도짓 하는 사람을 보고도 깨닫는 게 있어요. ‘나는 저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죠. 그러니까 풀 한 포기도 돌 하나도 물 흘러가는 것도 스승이에요. 그렇게 스승 아닌 게 없으니까 그거를 한데 합쳐서 주인공이라고 그런 거예요. 일체 만물만생 모두, 또 과거 현재 미래를 한데 합쳐서 삼심 삼세, 그 모든 것을 한데 합쳐서 주인공이라고 한 거니까 그 주인공 하나만 생각하면 뜻으로다가 그냥 둥글려지죠. 그렇게 간단하게 하세요. 이것저것 자꾸 이렇게 하면요, 마음이 산란해서 진짜 곧장 들어갈 것도 못 들어가요. 그러니까 그렇게 한데 모으셔서 거기다 맡기시고 지켜보는 그런 참 선자(禪者)가 되세요.
질문자8(남) 그래도 이해가 안돼서 한 말씀 더 여쭙겠습니다. 선원에서 스님께 배울 때는 그렇게 배우지만 직장에서 일할 때 또 가정에서 문제에 부딪칠 때는 자기에게 이익 되는 것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고,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마음을 제대로 마음자리에 두지 못하고 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생활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될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면 하나만 말씀을 해 주십시오.
스님 그래요. 근데 여러분이 좀 어리석은 면이 있어요. 왜냐하면 회사에서 직원들을 데리고 일을 하거나 장사를 할 때 사람이 안 온다 온다 이런 문제들, 뭐 잇속을 찾는다, 이(利)가 부진하다 이런 문제들이 있을 때 ‘아, 그러면 이런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어떻게 이익을 취할 수 있을까?’ 이러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진짜로 믿는다면, 고꾸라지든지 가든지 오든지 그런 걸 상관 안 하고 거기다가 턱 맡기고 그냥 진짜로 내가 한다는 생각 없이 한다면 아무 괴로움이 없어요. 돈이 많이 벌려도 걸림이 없고요, 돈이 안 벌려도 ‘너만이 할 수 있다!’ 하고 거기다 놓기 때문에 괴로운 게 없어요. 그런데 믿지 못하는 까닭에 그렇지 않을까요?
간단히 생각하세요. 돈을 수만억을 번다 하더라도 걸림이 없어야 돼요. 왜냐하면 그것도 자기 혼자 갖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혼자 번 것도 아니고 혼자 가질 것도 아니고 혼자 쓸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거기 걸려요? 내가 또 많이 번다고 하는 ‘내가’라는 생각이, 나를 내세우는 게 있기 때문에 그게 걸리는 거지 내 한마음이라는 주인공에서 본다면 아이, 그렇게 나가 많은데, 일체가 다 나 아님이 없는데 구태여 왜 거기 걸립니까? 그러니까 선지식들은 개구리 하나를 죽여도 죽인 사이가 없고, 깨치지 못한 자는 개구리 하나를 죽여도 살생이 된다 그랬어요.
그거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증득해야 알아져요. 그러니까 열심히, 무조건 믿고 거기 맡겨 놓고 지켜보시고 그러세요. 그리고 거기에 걸림이 없어야 됩니다. 몇만 냥을 벌더라도, 또 욕심을 내서 생각을 내서 ‘저걸 벌어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이 나도 당신 혼자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에요. 수십억의 의식들이 한데 모여서 그렇게 생각을 한 거지요. 그러니까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돼요. 그 묘한 법은 여러분이 아마 열심히 해야 아실 겁니다.
질문자8(남) 그럼 스님! 나한테 병이 있다든가 고난이 있을 때에도 그것이 내가 겪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겪고, 이 마음자리가 같이 한다고 생각하고 끄달리지 않는다면 올바르겠습니까?
스님 그거야 ‘너한테서 나온 거니까 네가 해결할 수밖에 없잖아.’ 하고 놔야 되죠. 그리고 또 제 몸을 제가 끌고 가는데 ‘내가 죽으면, 내 몸이 죽으면 네 집합소가 없어지는데, 네 집합소가 없어지면 너도 죽잖아?’ 하고 거기다가 맡겨 놔야 되지 않아요?
오늘 여러분이 말입니다, 지금 내용을 가만히 들어 보니까 ‘야, 나가서 장사를 하거나 회사에 다니거나 또는 회사를 경영하더라도 남과 같이 돈을 벌어야 살 수 있고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데, 다 놓고 어떻게 돈을 벌어서 가정을 이끌어 나갑니까?’ 이렇게 생각하시지만 여러분이 한번 뒤바꿔서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여기 걸어오실 때에 그냥 서서 걸어오라는 게 아니거든요. 걸어오긴 했는데 발자취를 하나도 짊어지고 온 게 없죠? 아니, 생각해 보세요. 내가 하지 말라는 게 아니거든요. 돈벌이하지 말라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분이 저 아래에서 걸어오실 때에 발자취를 걸머지고 오셨습니까? (대중 박수) 걸어오긴 틀림없이 걸어왔는데 걸어온 사이가 없다. 내가 짊어지고 온 게 아니니까. 벌이는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있는데, 이게 우리가 걸어온 거와 똑같아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되 자기가 했단 말 하지 마라, 자기가 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모두가 공용으로 했다고 생각하라 이겁니다. 주인공에서 모든 것을 공용으로 한 것이지 자기 개별적으로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동시에 우리가 걸음을 걸어왔는데, 한 발 떼어 놓고 한 발 떼어 놓고 걸어오긴 했는데 걸어온 자취가 없지 않습니까? 그것도 혼자 걸은 게 아닙니다. 여럿이 작용을 해 주기 때문에 여러분이 걸어왔지 아마 위 공장 하나만 그냥 파워가 일어나도 다리도 떼어 놓지 못하고 걸어오지도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같이 한 거니까 내가 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걸림이 없어요. 그게 참 묘하죠. 말로는 할 수 없는 묘한 도리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잘 생각해서 알아서 하세요. 하하하….
2008-10-29
 
 
   
   
2024. 5.1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