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 종합 > 기사보기
마음의 스위치를 누를 줄 알아야 오계를 지킬 수 있어!
한 세상 머물렀다 가는 이 길에서 우리는 터득을 해야!

한 사람만이라도 생각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회사와 나라는 아주 융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를 받으면 무엇이 좋은지?
질문: 스님, 저의 집사람이 제가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 절에 다니더니 사람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착하고 조용하던 사람이 제가 절에 다니지 않으면 같이 살지 않겠다고 합니다. 늙어서 퇴직하고 나면 24시간 함께 있을 텐데, 그리고 자기는 마음공부가 너무 좋아서 절에 다니면서 공부를 계속 해야 할 텐데 저하고 말도 안 통하고 그러면 정신적인 교류가 되지 않아서 어떻게 같이 사느냐고 그러면서 퇴직하기 전에 절에도 다니고 공부해서 수계도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절에는 가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몇 번 들어와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를 받으려면 술도 먹지 말아야 하고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런다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리고 계를 받으면 무엇이 좋은 건지요?
답변: 수계에 관한 것은 왜 그런가 하면, 우리가 마음에서 고장난 거는 마음으로부터 해결을 해야 하는 거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수억겁을 거치면서 진화돼서 이 세상에 이렇게 인간으로서 등장을 했습니다. 인간으로 등장을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만이 우리가 업을 짓지 않고 현재의 모든 것을 다 녹이면서 생동력 있게, 또 걸림 없이 살아나갈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미생물에서부터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면서 수억겁을 천차만별로 모습을 바꿔 가면서 이날까지 진화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고등 동물이라는 인간으로서 이렇게 등장을 해서 살고 있는 이 마당에서 가만히 또 생각을 해 보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육통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셨습니다. 육통이라는 것은, 이 몸뚱이를 통이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그 안에 천차만별의 모습과 의식들이 살고 있으니 어떻게 나 하나만이 살고 있다고 하겠습니까? 한마음으로서 더불어 같이 사는 한 개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한 몸뚱이를 한마음으로서 이끌어 나가려면 내 마음 자체를 움죽거려야 이 몸속에서 그대로 따라 준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내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몸속에서 그대로 따라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공부를 그대로 잘하고 나간다면 그 육신 속에 있는 생명들의 의식이 다 그대로 따라 줍니다. 그래서 한마음이 돼서 모든 것을 털구멍을 통해서 바로 나가서 조절하고 안에서 모자라는 건 작용을 해서 채워 주고 이렇게 합니다. 예를 들어서 가난하면 관세음이 돼 줍니다. 즉 마음을 따라서 의식이 하기 때문에 의식은 보살로 화하고, 다스리는 중심은 바로 부처님으로 화하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한생각을 하시면 의식들은 바로 부처님의 제자가 돼서 보살로 화해서 응신이 돼서 나투어 주신다 이런 뜻입니다. 그와 같이 내 마음 쓰는 대로 이 육신 속에 있는 의식들도 따르니까, 마음공부들 열심히 해서 그대로 한마음이 돼서 들고 난다면 그것을 이름해서 보살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속에 생명의 의식들을 말입니다. 그래서 천백억화신으로서 나투신다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따로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여러분이 그대로 부처요 그대로 법신이요 그대로 화신 보현신이란 얘깁니다. 이게 전부 수계에 관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크고 작은 대로 이 몸속에 유전성 업보성 세균성 인과성 영계성,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여러분한테 주둔하고 있는 겁니다. 많고 적고 크고 작을 뿐입니다. 오계를 받는 데에 이것을 말을 안 해 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럽니다. 지금 몸뚱이 속에 있는 이 모든 것이 내가 마음먹는 대로 따라 주게 돼 있으니까, 내가 도둑질을 해야겠다 하면 도둑질을 하게 되고 내가 돈을 좀 벌어서 좋은 일을 해야겠다 하면 그대로 따라 줍니다. 또 자식이나 남편이나 부인이나 부모나 형제들 간에도 ‘내가 이 세상에 났으니까 내 탓이지 남의 탓을 하면 무엇하랴.’ 하고 모두 내 탓으로 돌리는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로 지혜가 부풀어져서 바깥으로나 안으로나 편안하게 이끌어지고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전자에는 오계를 설하면 ‘먹지 마라, 하지 마라, 죽이지 마라’ 이렇게 그냥 전체 다섯 가지가 다 ‘마라’로 됐습니다만, 그래도 나는 샛문을 틔워 놓지 않았습니까? ‘술을 마시더라도 분수를 알고 마셔라. 남을 위해서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건 도둑질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거를 훔치라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살생을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짐승을 죽였다 한다면, 우리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에 맡기고 하면 그대로 두 마음이 아니니까, 살리는 사람의 마음이나 살아난 사람의 마음이나 죽는 고기의 마음이나 전부 한마음이 돼서 고기는 고기의 허물을 벗고, 모습을 벗고 인간이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또 이쪽에는 그 고기의 살을 약으로 먹으니 병이 나아서 좋고, 그래서 보시를 하는 것은 살생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죽이지 마라, 하지 마라, 먹지 마라’ 이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스스로 분수를 지키면서, 스스로 남을 위하는 게 바로 자기를 위하는 거고, 남이 괴로우면 나도 괴로우니까 남을 위해서 부드럽게 말해 주고 부드럽게 행동해 줘라 이겁니다. 가정에서 식구들하고도 다 그렇게 하라는 얘기죠. 우리가 마음으로 지은 죄를 마음으로 벗어야지 만약에 말이나 이론으로 벗으려면 벗어지겠습니까? 그러니 만날 말씀해 드리는 게 부처님이 말씀하시는데 입을 빌려 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 뜻을 알고 마음과 마음이 둘이 아니게 열심히 하셔야죠. 부처님의 마음도 내 마음이고 부처님의 형상도 내 형상이고 부처님의 법도 내 법입니다. 그렇게 모든 거를 둘 아니게 생각하면서 배우신다면 이 우주 삼천대천세계에 직결되어 있는 줄이 우리들의 근본의 줄과 직결돼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전기를 방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가발전소에서 가설이 돼야 전력이 들어오죠, 가설이 돼야. 그러니까 가설이 다 돼 있다는 겁니다. 우리도 우주 삼천대천세계의 줄과 우리들의 근본의 줄과 이렇게 직결이 돼 있어요. 가설이 돼 있듯이 말입니다. 가설이 돼야 불이 들어오죠? 우리는 본래 그렇게 돼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시하고 그렇게 안 하니까, 즉 우리들의 스위치를 해 놓지 않았단 얘깁니다. 전기 가설은 다 돼 있는데 스위치를 해 놓지 않았으니 이게 불이 생전 가야 들어옵니까? 그걸 누를 줄을 모르고 누르는 거를 해 놓지도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스위치를 누를 줄을 알아야 오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스위치를 누를 수 있어야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에 이익이 갈 수 있고 공덕이 될 수 있고, 자식들을 돌에다 세워 놔도 살 수 있게끔 만들어 줄 수 있고 조상을 이끌어서 건질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데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대로, 오계를 받고 그대로 지키면서 공부하는 데에 따라서 요다음 생에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주어지는 겁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거고, 지금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미래에 또 우리가 한 철 살다가 갑니다. 금방입니다. 금방 옷을 벗고 다시 나올 때에 차원에 따라서 그 모습을 해 가지고 나옵니다. 이 공부는 자유자재권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지혜롭게 물리가 터져서, 천체 물리가 터져서 우리가 해 나갈 수 있는 그 자유권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반야줄을 쥐고 가고 있습니다. 우주와 직결돼 있는 줄을 반야줄이라고 한다면, 그래도 살아생전에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반야줄을 쥐고 갈 줄 알면 요다음에 죽어서도 사자가 와서 데려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보현보살들이 다 모셔갈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싶어
질문: 며칠 전에 선원에서 개최한 법형제 수련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다 좋은 내용이었지만 5층 법당에서부터 눈을 가리고 눈 뜬 이의 인도를 받아서 내려갈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발목이 삐지나 않을까 넘어져서 나뒹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너무나 무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것이 바로, 절에 다닌다 하면서도 사업이 잘 풀리기만을 바랐고 내 가정과 친지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면서도 자신의 근본을 믿지 못해서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하고 보이는 눈과 생각으로서 이리저리 계산을 하면서 살아온 저의 삶의 모습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 제가 이 생에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물질에 끄달리지 않고 마음의 눈을 밝혀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답변: 지금 이 시대는 뭐든지 공중에서 탐지하고 공중으로 정보를 보내게끔 되어 있는 그런 급박한 시대입니다. 그러니만큼 우리가 어떻게 처신을 하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만 이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잘 참작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무나 급박한 세월 속에서 수천 년 수만 년이라는 세월을 그냥 또 이름도 없이 말려서 여기에서 태어나고 저기에서 태어나고…, 차원이 낮게 나고 차원이 높게 나고, 항상 몸을 받아 나와서 그렇게 애를 써야만 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부처님 되는 것이 십중팔구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자기를 부처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이 부처를 만드는 것이지 허공에서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형상에서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글자를 세워서 갖다 주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과 같이 한 도반으로서 여러분의 길을 인도해 드릴 뿐입니다. 그 맛을 아는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각자 그 맛을 알아야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부처님께서도 사람이 살고 죽는 데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길밖에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살고 죽는 데서 벗어나야만 하는 일은 우리들한테 너무나 큰 일이며 너무나도 타당한 일이라서 게을리 생각하지 말고 부지런히 닦아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속이고 또 속임을 받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일 뿐이지 누가 속인다 또 안 속인다가 없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만약에 귀를 꼭꼭 막고서 소리를 듣는다고 할 때는 안 들릴 겁니다. 또 그 귀 막은 것을 떼고서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다 듣게 됩니다. 역시 눈도 그렇습니다. 일체 만물과 이 세상…, 아니 보물이 수두룩히 쌓여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눈을 감고 볼 때는 보이지 않지만, 눈을 뜨고 볼 때는 보이듯이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하면 그 도리도 모르거니와 우리가 그렇게 진기한 문제를 터득할 수도 없고 내가 나를 발견할 수도 없는 겁니다. 반면에 허망한 물질적인 문제들만 가지고 싸우게 되고 집착하게 되고 삼독을 빼 버리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바쁜 것이 무엇이냐? 나는 항상 자기 내공에 모든 것을, 일체 들이고 내고 하는 것이 우리 생활이니 그 생활을 바로 자기 내공에 놓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법을 믿지 않는다면 놓지를 못하고 또 놓지를 못하면 편안치가 못합니다. 여러분이 생활에서 그렇게 쪼달리고 방황하고 애를 써야만 합니까? 한 번 와서 머물렀다가 그냥 가는 길에 말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잠시 잠깐 머무는 동안에 이렇게도 한세상 저렇게도 한세상 사는 것이지만 억겁 동안 말리느니, 억겁 동안 그 생사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애를 쓰느니 한세상에 머물렀다 가는 이 길에서 우리는 터득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고 벗어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모두들 물질에만 급급해하지 마시고 물질을 쓰되 하나도 씀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서 느끼셔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를 못 보시걸랑 현실을 보십시오. 눈이 어두워서 말이죠, 빚을 얻어서 어떠한 장사를 하려고 했는데 이익이 남아서 들어올 것만 알았지 빚져서 이자와 더불어 같이 나가는 거는 생각지 못하고, 그러다가 그것째 그만 잃어버려서 탕진을 하는 수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진실한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고 자기 마음을 정도에 넘치지 않도록, 분수를 알맞게 지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무겁게 두들겨 가면서 걷는다면 아마 천둥 벼락이 내려도 꼼짝도 안 하고 여러분은 그대로 진행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이런 공부를 하면 보통 생활에서 어려움이나 좀 없애고 그냥 살겠지.’ 그러지만 이 생활 속에서도 얼마나 어려움이 많습니까? 내가 주장자를 세우지 못하고 그걸 발견을 못하고 이래 가지고서는 세균, 영계, 윤회, 생사, 유령, 업보에 끄달리면서 살아나가니까 그 고달픔은 말도 못합니다. 거기에서 나 하나만 몰락 벗어난다면 그 외의 것은 다 벗어나는 것입니다. 본래 나는 공(空)해서, 벗어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지어서 속는 것이고 그게 업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침착하게 생각하셔서 누가 모든 걸 망하게 했고 누가 흥하게 했고 누가 웃게 했고 누가 울게 했고 누가 그렇게 했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는 공덕은 쌓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울수록 진심으로 있든 없든 내 성의껏 시주를 하고 정성을 들이면서, 과거의 빚을 갚으면서 미래의 덕을 쌓으면서 우리는 현실의 공부를 하자 이겁니다.
현실의 공부를 할 때 영원한 오늘, 영원한 오늘을 안다면 영원한 오늘도 벗어날 것입니다. 나 하나로 인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진리가 돌아간다고 생각했을 때 나 하나도 바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경지까지가 어려운가 하면 어렵지도 않고, 어렵지 않은가 하면 어렵기도 합니다마는 이것이 가다 보면 다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려고 생각하는데 왜 안 되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마음을 잘 여미고 다시 한 번 집중해 보실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지금의 이 사회를 포기했습니다
질문: 저는 지금의 이 사회를 포기했습니다. 눈만 뜨고 나면 회사들이 부도가 나더니 이제는 나라가 부도가 나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뉴스를 보고 주위의 고통을 볼 때마다 마음을 냈지만 제가 깨닫지 못하고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헤어날 기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내야 하나요? 어쩌면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깨달음의 길을 포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답변: 우리가 이 마음부터 알아야 그야말로 한생각을 내도 지혜롭고 넓게 할 수 있는 겁니다. 마음부터 알아야 하는 것은, 내 마음은 체가 없어서 내놓을 것이 없이 공했다. 그러니까 공한 내 참나를 그냥 무조건 믿고 무슨 일을 하는 것도 내가 옳다고 생각했을 때는 무조건 한다. 또 사회적으로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될 텐데, 우리 국민이 이거는 안 되겠다 할 때는 무조건 국민을 위해서, 대인을 위해서 밀고 나가고 말입니다. 내가 회사원이라 할지라도 그렇고 공장을 한다 무슨 장사를 한다 이런 경우도 다 그런 점으로 인해서 융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생각에. 한 사람만이라도 생각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회사는 아주 융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한생각을 잘한다면 이 나라는 바로 물질과학으로부터 정신과학으로, 마음으로써 만법을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깨친다 안 깨친다 이거를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은 자꾸 스스로 좌절해요. 여러분은 자기를 못 믿어요. 여러분은 자꾸 자기가 생각하는 거를 ‘중생이 생각하는 건데 이거 안되지.’ 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것뿐만 아니라 큰 것도, 타인의 일이라도 말입니다. 공장을 처음 냈는데 ‘이게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할 때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며, 한생각을 탁 내 줄 때 그 공장은 그대로 유지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생각을 내 주는 것도 그렇고 한생각을 하는 것도 그렇고 한생각의 그 향기로운 냄새가 온 우주를 다 덮고 우주를 싸고 아니 닿는 데 없이 닿을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마음의 능력입니다. 마음은 여러 가지로 낼 수 있고 여러 가지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바로 이것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몸뚱이도 한 사람 몸뚱이지만 한 사람의 몸뚱이라 해도 이름이 다 각각 있지 않습니까? 눈이다 코다 귀다 손이다 발이다 간이다 하는 이름이 여간 많지 않습니까? 이 많은 이름들이 한데 합쳐진 게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이 하는 노릇이 부처가 하는 노릇이다 이겁니다.
그렇게 백지장 하나 사이인데도 그게 그렇게 안 돌아가니까 힘이 든다 이겁니다. 마음의 주인공은 바로 가슴에서 느끼는 점입니다. 느끼는 점! 이 가슴에 와 닿아 가지고 느끼는 점입니다. 느껴서 그대로 생각나면 그냥 그대로 법입니다. 그러니 보는 것도 아주 세밀하게 볼 수가 있는데 그거를 여러분이 느끼면서도 못 믿는 것입니다. ‘야, 이건 내 마음으로 이렇게 느껴지지만 이건 모두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니까 이건 안 된다는데….’ 이러거든요. 아, 남의 말을 그렇게 잘 듣고 잘 들으면서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자기 주인공의 뜻은 왜 못 믿습니까? 자기 스스로 믿고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자재한다면 그대로 법신 아닙니까?
그래서 법신은 ‘자(子)’로 치고 마음내기 이전은 ‘부(父)’로 쳤습니다. 마음을 내서 용(用)을 할 때는 ‘부’는 ‘자’로 하나가 돼 버리고,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때는 한데 조화가 돼서 가만히 있으니까 부처거든요. 그러니 여러분이 생각할 때 좁게 생각하지 마시고 넓게 생각을 하십시오. 부처님께서 누구 형상에다가 절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뜻은 그걸 알고 하면 절을 해도 자기요, 모르고 하게 되면 타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빨리 깨쳐야겠다 해도 그것이 착이 되는 거니까 빨리 깨쳐야겠다 하는 그 말 자체가 아닌, 그대로 자기를 믿으라는 얘깁니다. 욕심이 생겼다는 얘깁니다. 욕심이 생겼는데 내가 항상 말을 하듯이 여기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자기 자신(自信)이 있다면 그것을 밀고 나가고 자신이 없다면 밀고 나가지 말아야 하겠죠. 이것이 자기 분수에 따라서 판단하고 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판단을 할 때 처음에는 요기밖엔 못 디뎠는데 나중에는 저기까지 딛게 됐다 이겁니다, 지혜가 넓어져서. 그랬을 때 차츰차츰 뛰어야 되는 거지 이걸 한꺼번에 뛰려면 안 되니까 살면서 체험을,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체험을 해 나가시라 이겁니다. 체험을 해 나가시다 보면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도 만반의 준비를 할 수가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을 볼 때 오관을 통해서 오신통(五神通)을 지금 하고 계시면서도 그것을 100% 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의 법만 활용을 하지 무의 법은 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것을 욕심 없이, 내가 한다는 생각 없이 해야만 된다. 즉 습이라는 게 참 무섭다는 얘깁니다. 모든 걸, 선한 일을 했어도 내가 한 일이 아니요, 악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내가 한 게 아닙니다. 두루 편하기 위해서, 대의를 위해서 했다면 악한 일이 아닙니다. 거짓도 남을 위해서 거짓을 했다면 잠시만 거짓으로 한 거지 그건 거짓이 아니겠죠. 그러니 모든 것을 다 자기가 잘 생각한다면 남을 이익하게 할 수 있고 또 나를, 나의 중생에게도 이익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타인의 육체나 내 육체나 똑같은 중생이지만 말입니다. 자기 중생을 자기가 이익하게 만들 수 있어야 남을 이익하게 만들 수 있죠.
그러니까 우리가 잘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이겁니다. 잘 생각해야 할 점은 깨달아야만 한다는 거, 그거를 마음으로 규정지어 놓고선 ‘얼마쯤이나 가야 될 것인지?’ 그러지 마시고 우리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체험을 해 봐 가면서 탁탁 밀고 나가 보시라 이겁니다, 의심을 하지 말고. 그렇게 탁탁 밀고 나가다 보면 어떤 거는 자기에게 감촉이 온단 말입니다. 그 자리에 감응이 와서 느껴진단 말입니다. 점점 점점 점점 아주 굳어지는 겁니다. 굳어지는 반면에 큰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그걸 밀치고 나갈 수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도 꿈을 꿔 보셨지요. 우리가 살면서, 좋은 집에 살면서 즐거운 것도 순간 돌아가고, 친구들하고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논 것도 순간적입니다. 그렇게 즐거웠는데 그만 돌아서면 순간 허전하고 허황한 게 말할 수 없죠. 또 좋은 집에서 잘사는 것도 금방 망해서 돌아갔을 땐 그 허전함이 말할 수도 없고요. 꿈에 참 좋은 데 가서 즐겁게 놀고 즐겁게 살고 하는데도 그게 꿈을 깨고 나면 그렇게 허황될 수가 없죠. 목을 눌러서 죽이려고 하는데 꿈을 깼다. 야! 꿈이기에 망정이지 이거 생시 같으면 죽을 뻔했다고 할 겁니다. 이게 모두가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꿈도 생시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꿈이 생시요, 생시가 꿈이듯이 우리가 허황되지 않은 진실을 알아서 그대로 법을 행하는 것이 부처이자 법신이자 보신(報身)이자 화신(化身)입니다. 용왕도 거기 들어 있고 모두가 다 거기 들어 있는데 왜 그 능력을 내지 못합니까? 그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공한 것입니다. 공했기 때문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지 공하지 못했다면 능력을 그렇게 발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 된다고 할 수가 없는 거죠. 부처 될 가능성도 없고요. 그래서 ‘짐승들이 사람을 거치지 않는다면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2008-11-05
 
 
   
   
2024. 11.2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