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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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세상은 인간의 욕망조절에서 시작”
불광 생태·환경 강좌
발 표 : 황대권(생태운동공동체 대표)
주 제 : 생명, 평화, 그리고 영적 각성
일 시 : 2008년 10월 15일
장 소 : 서울 불광사 불광교육원
주 최 : 조계종 불광사·불광법회

‘저 생명 어디서 왔을까’ 의문으로 생명에 대한 생각 일대 변혁
자연 속에서 찰라멸?찰라생 반복하는 것이 생명?인간의 모습

“민주정부가 되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변화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2번 경험하고 일어난 생각의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야생초 편지>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로 잘 알려진 작가 황대권은 무려 13년 6개월간 억울하게 징역살이를 하고 출소한 야생초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독방에서 10여 년을 지낸 그는 “감방에서 잠깐 살고 왔다면 오히려 사무친 원망으로 세상에 독을 품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그가 생명 존중과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깨우치게 했을까? ‘생명, 평화, 그리고 영적 각성’ 을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들어보자.
# 생명에 대한 깨달음과 생각의 변화
독방생활 5년 동안 세상에 대한 분노, 원망만이 가득 차 심신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더 이상 사회의 이념에 대한 투쟁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죽지 않고 살아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됐습니다. 죽음의 고비에서 독방에 들어온 사마귀, 파리, 개미, 거미 등을 마주하게 됐을 때 문득 ‘저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순간 내가 접하는 모든 것이 내 몸의 확장으로 인식되면서 생명에 대한 생각에 일대 변혁이 생겼습니다. 길가의 돌멩이와 풀, 그 어떤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은 없고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병원도 의사도 없어 스스로 몸을 고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봤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야생초 요법’입니다. 야생초는 옥중 동지이자 깨달음의 텃밭이었습니다. 야생초를 보면서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소중한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당시 갖가지 야생초를 2년 간 먹고 건강은 회복됐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긍정적·자연친화적으로 변한 마음과 생활이 완전한 회복을 가능케 했음을 알았습니다. 내 몸의 변화를 보면서 ‘자연치유’ ‘자연의학’에 눈을 떴습니다. 진흙탕 속에서 진흙을 씻어내려면 더욱 더러워지듯 병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기보다 병을 잘 알고 병과 하나가 돼 자연치유를 해야 합니다.
약과 의술은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증명했습니다. 문명의 발전이라는 것은 타고난 자연 치유력을 상실시키고 자연과 멀어지는 방식, 돈이 많이 드는 방식일 뿐입니다.

# 문명과 지구
인간이 지구를 병들게 하는데 걸린 시간은 200년, 지구 역사 45억년 중 고작 0.0000004%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지구의 자연치유능력을 상실시켰습니다. 자연계의 순환법칙 ‘먹이사슬’은 이미 깨져버렸습니다. 과학자들은 모든 개별 생명들은 전체의 부분으로서 기능하며, 서로 연결돼 하나의 큰 생명이 됨을 밝혔습니다. 생명은 먹이사슬의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생명은 먹이사슬의 구조 속에서 ▲전체성·개별성 ▲관계성·순환성 ▲다양성을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듯 자본주의는 확대재생산 하지 않으면 망하는 사회구조입니다. 계속해서 소비지향적인 발전을 추구한다면 한정된 자원이 있는 지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즘 지구는 이상한 신호를 계속 보내옵니다. 첫째, ‘기후이상’입니다. 기후이상의 주범은 바로 이산화탄소며 이산화탄소의 급격한 증가는 세계자본주의의 엄청난 생산량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둘째, 멸종 즉 ‘생물의 종 다양성’의 감소입니다. 생물종의 감소는 생태계 먹이사슬 구조가 끊어짐을 의미하며, 필연적으로 생태계의 교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끊임없이 소비를 확대해야 유지되는 구조를 갖는 자본주의체제의 ‘소비증가율’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인구증가율’입니다.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구가 적정인구의 약 4배 정도”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 인간의 욕망
‘문명’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 낸 인간은 스스로 생명의 일반법칙에서 예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중심주의에 빠져 지구를 위기로 몰고 있습니다. 자연의 지배자로 나선 인간은 욕망의 끝없는 확대와 인구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생명의 관계성을 부정하는 식량생산 체제를 확립합니다. 인간은 생명의 일반적인 특성인 전체성, 다양성, 관계성을 모조리 부정함으로써 오늘날 생태계의 총체적 위기를 낳는 주범이 됐습니다. 인간은 뭇 생명들의 지배자나 관리자가 아니라 함께 공존 번영해 나가야 할 동격의 파트너일 뿐입니다.
생명에 대한 편견과 무지는 인간사회와 자연생태계를 전쟁상태로 몰고 갑니다. 평화롭지 못한 생명은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생명과 평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함께 추구돼야 합니다. 평화는 나와 너가 다르지 않고, 서로 의지해 있으며, 함께 하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다는 깨달음 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생명과 평화를 단지 과학적 측면에서 혹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서는 온전한 생명평화를 맛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생명과 평화가 유린됐던 것은 모든 생명 활동을 물질적 차원에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싸우고, 타협하는 모든 행위를 물질적 차원에서 행하는 한 인간은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연계의 다른 동식물과 다른 이유는 자유의지를 갖은 인간이 욕망에 이끌려 살기 때문입니다.
# 수행으로 지키는 지구의 미래와 우리
우리는 지금 지구에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 아닙니다. 집주인과 계약을 맺고 세를 들듯, 인간이 지구에서 살 때 자연의 법칙과 질서에 맞게 살겠다는 계약을 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주인은 당장 쫓아낼 것입니다. 바로 지진ㆍ태풍ㆍ홍수ㆍ괴질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기체로서 ‘온 생명’의 자연스런 반응(자율규제)입니다. 그러나 자의식으로 무장한 인간은 자연의 ‘자율규제’를 거부하고 자의식 과잉 또는 욕망으로 자연을 조작합니다.
생명평화세상은 인간의 ‘욕망의 조절’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 최빈국으로 알고 있는 방글라데시나, 필리핀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행복지수가 최고 높은 수준입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살율과 이혼율이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전철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생산량이 어느 정도 증가할 때까지는 행복지수도 증가하나, 인간의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가 채워진 이후에는 행복지수가 하락합니다. 행복은 물질적 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만족입니다.
자연은 삶과 죽음의 연속입니다. 불교에서는 찰라멸, 찰라생, 공(空)을 말합니다. 자연 속에서 생겨났다 없어졌다 반복하는 것이 생명의 모습이고 인간의 모습입니다. 노자는 “천지는 결코 인간을 위해서 존속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기대나 좌절, 희망이나 믿음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스스로 그러한 존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생명의 온전한 발현과 생명들 사이의 평화는 자기 삶에 대한 태도와 철학을 정립하고 끊없는 수행의 실현에서 시작됩니다. 도법 스님께서는 “수행이란 내게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지금까지 물질문명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일시에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행은 생태적인 삶의 자세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정리=이상언 기자 un82@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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