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가 하나로 돌아가기에 우리가 내는 한생각이 보배!
안되는 거 되는 거 다 거기다 놓는다면
맡겨 놓고 참 믿는다면, 물러서지 않는다면
바로 거기에서
홀연히 자기 생명수의 근원이 스스로서 나올 것입니다
주인공도 실상이 아닌 이름인데
질문: 스님께서는 본래 주인공도 실상이 아니라 이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본래 없는 주인공을 지극하게 믿어야 한다고 하시는지 그것을 여쭙고 싶습니다.
답변: 믿어야 열쇠를 맡기죠? 믿지 않으면 열쇠를 맡길 수가 없듯이 말입니다. 내가 ‘참나’인 주인공을 진실로 믿는다면 몸이 아프고 괴로워도 거기를 믿고 맡길 수가 있죠. 주인공이라는 그것 자체도 이름이고 실(實)은 아닙니다만…, 그래서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 실상 그 자체를 믿는다는 것인데 바로 거기다가 놓아 버린다면, 믿고 놓아 버린다면 해결이 될 수가 있죠.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차가 있고 기름이 있어도 차는 운전수가 끌고 다닌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차와 운전수와 기름이 삼합(三合)이 되어서 돌아가듯이 그렇게 공존하니까 색이 공이자 공이 색이다 하는 거고 그렇게 공존하는 것을 공이라고 할 때 거기다가 몰락 놔 버리면 그대로 공존돼서 바로 일체 유생 무생이 한데 합친 그 능력의 의사가 되니 나는 손을 까딱 안 하고도 해결을 할 수가 있는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여러분, 가난도 자기가 만들어 놓고 자기가 당하는 거지 누가 가난을 주고 뺏어 가는 게 아닙니다. 옛날 말에 어느 부자가 복을 지은 거라고는 동네에서 누가 어린애 낳는 데 고작 짚 한 단 준 거밖에 없었답니다. 그랬는데 부자가 죽어서 가 보니까 부자 복(福) 창고에 짚 한 단밖에 없더란 셈으로, 그런 마음을 썼으니 짚 한 단만 있을 수밖에요. 자기가 준 대로, 한 대로밖엔 안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생활을 해 보시겠지만 수많은 사람한테 속기도 하고 사기도 당하고, 또 안 당한 사람도 있고 사기를 친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주인공에 놓는, 방하착 할 수 있는 진실한 마음을 갖는 그런 분들은 나중에는 참자기의 감응이 와서 그걸 그렇게 하라 그래도 안 그럴 겁니다. 또는 안 그런다 하는 마음조차도 없고 한다 하는 마음조차도 없이 슬그머니, 보이지 않는 데서 다, 오온에 칠보(七寶)가 가득히 차 있듯이, 가난도 면할 것이고 병도 물러날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다 저절로, 자기의 뿌리로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겁니다.
그 뿌리엔 자식의 뿌리도 있고 부모의 뿌리도 있는데 뿌리는 다 똑같이 공이다 이겁니다. 만 강에 달이 비쳐도 그 달이 한 달에서 비쳤지 여러 달에서 비춘 게 아니듯이 말이죠. 만 강에 달이, 수많은 달이 비쳤다 할지라도 그것은 한 달에 불과합니다. 하나의 달에 불과하다 이겁니다.
그러나 그 달이 만 강에 비칠 수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게 달이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의 달이 하나의 달일 뿐이냐? 아니다. 만 강에 비칠 수 있는 달이다. 그런다면 때로는 달빛이 만 강에, 즉 말하자면 만 달이 될 수가 있고 또 때에 따라서는 한 달이 될 수가 있고, 달이 하나가 될 수가 있고 달이 만 개가 될 수가 있고 이렇듯이 인간의 마음도 한마음이 될 수가 있고, 여러 사람들이 나 아님이 하나도 없을 때는 바로 여러분과 같이 한마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자꾸자꾸 찰나찰나 나투기 때문에 그 마음 하나도 없느니라 하고 바로 ‘무(無)!’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만 가서 되는 것이 아니니 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공에다가 놓아 버리세요. 모든 것을 공에다 놔 버리라는 것은 왜냐? 예를 들어 만약에 장님이 있다고 한다면 장님은 지팡이 없이는 못 갑니다. 그러니 공에다 놓지 않는다면 장님의 눈을 밝게 할 수는 없고 겨우 지팡이 하나 쥐어 주는 것밖엔 안 되죠. 그래서 공에다가 이름을 붙여서, 주인공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거기다 다 놔 버린다면 바로 여러분에게도 그 뜻이 풀려 공도리(空道理)도 알 수 있으며, 바로 인에 의해서 연도 생기고 그렇게 돌아가는 자체가 바로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걸 알 수도 있고요. 그 마음을 쓰면서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연이라고 할 때, 그 연에 따라서 인연의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아실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고 행하고 듣고 보고 하는 그 결과가 바로 여러분한테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절에 다니면서 건성 다니지 마시고 정진 열심히 하시고 진실하게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부터라도 다시 정신을 차려서 주인공이라는 그 자체! 여러분이 내가 주인공이라고 그러는 것도 이름이라고 깔보려거든 아예 당신 이름을 불러요. 성을 부르든지. 김 씨면 김 씨, 박 씨면 박 씨. 다 당신이 이날까지 살아왔잖아요. 그러니까 ‘네가 다 알아서 하고 안되는 일도 네가 알아서 하고 잘되는 일도 네가 알아서 해!’ 하고 안되는 거 되는 거 다 거기다 놓는다면, 맡겨 놓고 참 믿는다면, 물러서지 않는다면 바로 거기에서 홀연히 자기의 생명수의 근원이 스스로서 나올 것입니다.
타 종교인은 구원받을 수 없는지
질문: 천주교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저는 모든 종교는 다 좋은 말씀이고 착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가르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이 불교만 믿어야 구원의 길을 갈 수 있고 저희같이 이렇게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구원의 길을 갈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답변: 말 잘했어요. 궁금하걸랑 내 대답해 주죠. 외국으로 다니면서 전 세계를 통해서 이렇게 종교를 볼 때 티베트 불교든지 알라신교든지 뭐 또 가톨릭교, 기독교 모든 것을 이렇게 종합해서 만나서 토론도 해 보고 또 이렇게 봤어요. 내가 볼 때는 불교(佛敎)라는 단어가 그냥 주어진 게 아니에요. 일체, 하다못해 이 풀 한 포기의 생명도 전체 생명은 불이에요, 불!
그리고 말로 통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고, 뜻과 뜻으로 통하고 통신으로 통하고 그러는 거를 통해서 만나서 우리가 서로 보고 배우고 듣고 하는 것이 교(敎)예요. 그렇기 때문에 불교라는 그 단어는 방편 아닌 방편으로써 그것은 이름이자 진리예요, 그대로. 우주 전체가 돌아가는 진리를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불교가 어느 한 군데 국한돼 있는 게 불교가 아니에요. 그러니만큼 우리는 어느 종교를 막론해 놓고, 그 그릇을 다르게 하고 가는 거를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거는 주처에 근본이 있는 거지 바깥에 근본이 있는 게 아니다라는 얘기입니다.
내가 외국에도 가 보면 여기 기독교든지 뭐, 가톨릭교든지 많이 이렇게 토론하러 오셔요. 그런데 하나도 틀리지 않아요. 왜? 불교고 기독교고 가톨릭교고 다른 게 없이 선지식은 전부 “딴 타의의 사람을 믿으면 마구니 소굴에 드느니라.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부터 알라. 주처는 바로 너한테 있느니라. 너 이 몸뚱이 속의 모든 생명들을 다스리고 나가는 선장, 바로 그 자체가 주인이니라. 그 주인부터 알아야 이 전 우주의 섭리, 하나로 돌아가는 이 이치가 바로 거기에 직결이 돼 있으니깐 알 수 있느니라.” 한 거거든요.
그런데 기독교나 불교를 막론해 놓고 ‘아이고! 잘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 하나님! 부처님!’ 하고 찾거든. 이거는 기독교든 불교든 가톨릭교든 간에 그런 거를 말하는 게 아니고, 근본 너부터 알라 이 소리예요. 어떤 종교를 막론해 놓고 그 이름을 떠나서 너부터 알라 이 소립니다. 못났든지 잘났든지 네가 이 세상에 형성이 됐으니까 상대가 있고 종교도 있고 세상도 있는 거지, 네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너부터 알아라 이런 거죠.
내 몸속에 생명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헤아릴 수 없이 천차만별로 의식들이 많고 모습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거를 중간에서 다스리는 주인이 있어요, 내가 항상 얘기했듯이. 이것을 들이고 내는 물질세계, 정신세계와 더불어 같이 모두 중용을 할 수 있는, 들이고 내고 하는 그런 선장이 있다 이겁니다. 그것을 주님이라고 하죠. 그런데 주님을 바깥에서 찾으니까 내가 하는 소리죠. 부처님도 자기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인데, 만날 바깥으로 찾고 하니깐 그런 것이지 내가 왜 그러겠어요?
부처님께서 팔만대장경을 그렇게 해 놨는데도 그렇게 모두 기복적으로 하는 데는 이런 이치가 있었죠. 물론 불교도 그렇지만 다른 것도 다 그렇죠. 이조 때에 탄압을 받고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해산시키고 이러는 바람에 스님네들을 그냥 놔두지를 않았기 때문에 산속으로 들어가서 그 모든 방편을 쓰고 이랬던 그 습이 아직까지도 그냥 내려오고 있는 것뿐이지, 지금은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고쳐야 될 거고 개선해야 될 건데도 불구하고 지금 그대로 할 뿐이지, 다른 게 없어요.
나는 이거고 저거고 이 종교 저 종교를 다 다르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다르게 찾으니까 내 할 말이 없는 거죠, 뭐. 아, 자기부터 자기 마음속에 주님이 있고 그 이름이 모두,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이 있고 어머니의 이름이 있고 할머니의 이름이 있듯이 그렇게 이름만 달랐다 뿐이지 근본은 다 똑같아요. 그래서 예수께서도 “나를 믿고 나를 찾아라.” 이런 거지, 자기 몸뚱이를, 그 고깃덩어리를 찾고 믿으라는 게 아니었거든요, 본래는. 각자 너를, 진짜로 네 주인을 믿어라 이런 거지. 그런 건데 편집을 잘못했든가 뭐가 잘못됐던 게 있었겠죠. 그러니 구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로부터 그 구원도 있는 것이지 누가 딴 데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려면
질문: 제가 아는 분 중의 한 분이 교통사고가 났는데 의식을 잃어 눈을 떠 보니 법당 탱화에서 보아 왔던 오간지옥이 보이면서 그곳의 사자가 아직 이곳에 올 때가 되지 않았다고 다시 살아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저희들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지켜봐도 죽어서만이 오간지옥고가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과정 또한 지옥고 아닌 지옥고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삶이 힘이 듭니다. 죽어서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살면서 겪는 이러한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요?
답변: 지옥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지고 지금 다닙니다. 카세트 하나에 감긴 거를 지금 짊어지고 다닙니다. 지금도 솔솔 풀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속이 상해서 막 펄펄 뛸 때는 보살의 행으로, 보살은 지옥에 들어가도 그 펄펄 끓는 기름 도가니를 녹여 버린다고 그랬습니다. 없어진다고 그랬어요. 칼산지옥이나 화탕지옥이나 그냥 다 없어진다고 그랬거든요. 오간지옥이 무너지고 말입니다.
왜 그런 소리를 했나? 여러분이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맡겨 놓는다면 그냥 딱 가라앉습니다. 전자로부터 나오는 거니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거거든요. 자기가 해 놓고 자기가 받는 거니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냥 그 자리에다가 되놔 버리는 겁니다. 그럭하면 지옥도 무너지죠, 자기는 보살이 되죠. 그러나 지옥이 한두 가집니까? 아수라지옥도 있죠? 술 먹고 들어와서 막 주정을 부리는데 그런 것도 술을 마시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자기도 어쩔 수가 없어요, 그거는. 마음에서 그렇게 분기가 일어나고 조금만 보면 그냥 속상하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나오는 대로 그냥 발산이 되는 거죠.
그 발산이 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 “길이는 팔십 리요, 넓이는 오십 리니라. 그렇게 큰 솥의 펄펄 끓는 기름 속에 들어가서 지옥고(地獄苦)를 받으니….” 이러셨거든요. 이렇게 얘기가 돼 돌아갑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는 팔십 리라는 것은 유(有), 무(無)를 말합니다. 저승, 즉 말하자면 내가 나기 이전으로부터 좇아 나온 사무! 좇아 나온 사유! 이렇게 해서 사(四)·사(四), 팔(八). 팔십 리. 그래 십(十)이 들어가면 이게 동일하게 묶어집니다. 같이 돌아갑니다.
그러니 같이 돌아가서 우리한테 그렇게 고가 자꾸자꾸 다가오는 거를 거기다가 놓게 되면 고가 다 없어지는 겁니다. 여러분이 고가 있다고 팔자 운명을 타령하지 말고 어떠한 지경에 이르렀다, 집안에 어떠한 자식들이 그렇다, 부부가 서로 맞지 않는다 하는 문제가 있더라도 모든 것은 거기다 맡겨 놓고 생각을 깊이깊이 다잡고 ‘이거는 전자에서부터 좇아 나온 지옥이다. 이거를 무너뜨려야지. 이거는 내 주인공밖에는 없다.’ 하곤 거기다가 놨을 때에 지옥고가 다 무너집니다. 해 보십시오, 거짓말인가 정말인가.
여러 가지 일체를 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세상 살아나가는 데에 무시할 수 없는 국내의 문제들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대기업이든지 소기업이든지 또는 경제면에서라든지, 또는 남북이 갈려져서 있는 거라든지 말입니다. 또는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해야만 앞으로 자라나는 자식들한테 그 보배를 맡겨 줄 수 있고, 길을 인도해 줄 수 있고, 뿌리를 싱싱하게 잘 해 줘서 역사를 좋게 가져올 수 있게끔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여러분한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이것은 지금 세상에 앉아서 할 수 있는 무역도 될 수 있고, 앉아서 호국불교도 할 수 있고, 앉아서 마음의 조절도 할 수 있고, 앉아서 모든 스위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스위치를 올리고, 중구난방으로 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직 여러분이 잘되고 못되는 거는 사량으로 해서는 아니 되니까 주인공에 맡겨서, 주인공이 적절하게 하게끔 맡겨 놓으시란 얘깁니다. 그래야 틀림없거든요, 그게. 어느 것이든, 경제, 국방, 통일되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을 우리가 마음부터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울’ 하는 거는 전체 통신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한마음’ 하는 것도 마음입니다마는 ‘하늘’ 하는 것은 지혜로도 돌아갑니다. ‘한울’ 하는 거는, 즉 말하자면 통신을 말하고, ‘하나님’ 하는 거는 내가 있기 때문에 모두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 자체로서 세계, 우주의 섭리와 항상 하나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내가 항상 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게 들어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눈 하나 깜짝거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거는 여러분이 한생각 그냥 그 자리에 맡겨서 이렇게 하시되 맡기기만 하면 되느냐. 무조건 스위치만 눌러도 안 된단 말입니다. 스위치 올려놓고서도 뭐 갖다 놓고 하질 않으면 그거는 빈 가스만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무엇이 잘못돼서 돌아가니까 거기에서 다 적절히, 당신은 할 거라고 믿고 놨을 때 나라도 적절히 돌아갑니다. 나라뿐만 아니라 우주의 근본과 더불어 섭리가 같이 돌아가거든요. 다른 혹성들도 다 같이 돌아갑니다.
우리가 단면적으로 요 부분만 생각하는데, 세계가 있다면 우주가 있어요. 대천세계(大千世界)가 있고 소천세계(小千世界)가 있고 중천세계(中千世界)가 있어요. 전체가 돌아갑니다. 전체가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한생각 내는 게 그게 요지라 이겁니다. 보배라 이겁니다. 여러분이 깨닫고 못 깨닫고 간에 우선적으로는 여러분이 시급한 거를 막을 수 있다 이 소립니다. 아무리 강을 막아서 뭐를 한다 하더라도 그건 새 발의 피입니다. 그거는 어디로 빼든지 전체, 보이지 않는 데서 마음이 돕는다면 그까짓 게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 위력이, 도도하고 당당한 위력이 여러분한테 있다는 사실을 꼭 아셔야 합니다. 놓고 빌고, 나한테 그냥 묻고 이러는 이게 불법이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여러분이 그렇게 당당히 가지고 있다는 그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현실에서 적응하게 만들면서, 지금 웃고 묵묵히 가면서도 주장자 하나를 탁 들면 우주를 받쳐 들 수 있는 그러한 문제가 여여하게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놓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인지
질문: 놓는 게 뭡니까? 이 세상 일이 놓기만 하면 다 되는 건가요?
답변: ‘모두 공(空)해서 찰나찰나 돌아가는 거니까 그냥 놔라. 이게 공해서 돌아가니까 거기다 놔라.’ 이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놓으라면 놓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럽니다. 놓는 게 뭐냐! 왜 어떤 스님은 방하착(放下着)을 하라 그러고 어떤 스님은 놓으라 그러느냐?
무전통신기도 눌러야 통신이 되죠? 불을 켜려 해도 스위치를 올려야 켜지지요? 가설이 돼서 불이 켜질 수 있는 건데도 자비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라는 게 아닙니다. 불을 켤 때는 켜고 끌 때는 끄고, 자유 아니겠느냐! 만약에 그러한 마음으로 ‘자비하니까, 부처님은 자비하기 때문에 스위치를 올릴 것도 없고 내릴 것도 없다.’ 이런다면 여러분의 몸은 어떡하고 여러분의 가정은 어떡하며 세상 돌아가는 거를 어떻게 똑바로 관(觀)해 봅니까? 똑바로 관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국내에도 그렇고, 세계를 똑바로 보지 못해서 우리 국내를 살릴 수도 없고 발전시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스님네 역시 머리만 깎고 목탁이나 치고 경(經)이나 읽어서 그렇게 살라는 게 아닙니다. 들어가나 나가나 한번 관해서,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봐서 ‘이건 이렇게 돼야 되겠구나.’ 하고선 점을 딱 찍고 넘어간다면 그건 그대로 통과예요, 그대로. 그대로 실천에 옮겨지는 법칙이에요. 그런데 내 몸 하나 처단 못하고 내 가정 하나 처단 못한대서야 어찌 귀중한, 아주 이 세상에 이름 없는 이름의 법칙을 어떻게 부처님 법이라고 하겠습니까? 참으로 이 부처님 법은 너무도 신비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 마음은 체가 없어서 뛰어넘으려면 시공도 없는 것이 찰나찰나 돌아가니 공(空)해서 돌아가는 이 자체를 색(色)이 공(空)이요, 공이 색이니 그 자체를 뛰어넘어라 한 겁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옛날에도 나라에 이러한 도리를 증득한 분이 있으면 그 나라를 치질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모습으로 서로 싸워서 이기고 지는 것은 고사하고 그런 데를 치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거를 아는 자는 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도 가끔 있었죠. 공부하는 인간이 살다 살다가 어떻게 참, 독사지옥으로 떨어져서 큰 뱀이 돼 가지고 공부를 하는데 사람을 해치지 않고 일편단심 공부를 했더랍니다. 공부를 하는 도중 얼마 안 남았는데 아, 군인들이 주둔을 해 가지고 그 동네를 그냥 싹 모두 깨트려 버리고 쳐 버리고 그러다 보니까 몸뚱이가 동강동강 났죠. 즉 그로 인해 그 동네가 망했다는 얘깁니다. 자손들이 전부 미치고 병들고, 다 흩어지고 죽고 그러니까 그냥 망한 거죠. 그만큼 이거는 미신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미신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우리가 모르면 당하고 알면 대처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첫째 진실히 자기 자성(自性), 자체 불성을 믿어야 하고 둘째는 물러서지 않아야 하고 셋째는 그대로 믿고 활용을 하고 밀고 넘어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게 아닙니다.
도둑이 침입을 한다면
질문: 저는 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집 안에 도둑이 침입을 했다면 어떻게 놓고 어떻게 마음을 내야 하는지요? 그냥 다 가져가도록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지요? 아니면 때려잡는 것도 주인공인가요?
답변: 옛날에 그런 얘기 했죠. 어느 도승이 계신데, 마적 떼들이 “야! 도승이라는데 도대체 내가 볼 때 껍데기로 봐서는 도승 같지 않아. 그래 네가 도승이라면 어디 내 칼이 안 들어가겠느냐? 네 가슴에는 철판을 대서 안 들어가겠느냐?” 하고선 오는 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아니 자기 죽을 줄 모르고 자꾸 앞으로 다가오거든요. 그래서 딱 다가오니까 ‘저 죽을 줄 모르고 오는구나!’ 하면서 ‘도인은 무슨 놈의 도인이냐!’ 하면서 칼을 들고 “네 가슴에 이 칼이 안 들어가겠느냐? 진짜로 도인이라면 내놔 봐라.” 그렇게 했습니다. 칼로 찔러 버리겠다고.
“네 가슴을 찔러서 네 가슴속에 뭐가 들었나 내가 보겠다.” 이랬습니다. 그랬더니 껄껄 웃으시면서 하는 소리가 “아주 추운 동절에 고목을 잘라 봤던들 거기서 꽃이 나오더냐?” 그러곤 물었습니다. 꽃이 나오더냐고. “고목만 잘라질 뿐 꽃은 나오지 않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그만 “스스로서 네 마음에 봄이 온다면 꽃이 필 수도 있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칼을 던지고 정말 그 사람의 마음에 봄이 와서 마음에서 향기가 나고 따르던 모든 사람이 전부 그 스님의 제자가 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렇듯이 내 집에 강도가 들어왔다 할지라도 그렇고 도둑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이런 공부를 안 하는 사람은 “도둑이야!” 하고 “강도야!” 이럴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공부 하는 사람들은 침착하게 거기 맡겨 놓으면 스스로서 몸뚱이의 모든 게 보살로 화하니까 오고 감이 없이 그쪽에 가서 그 사람이 되면 그 사람 마음은 봄이 돼서 그 칼로 사람을 찌르지 못한다는 이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한 찰나에 그 사람 마음에 봄이 오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여러분이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는 거지만 그거 한 가지뿐만 아니라, 어떤 분은 돈을 받으러 갔는데 돈이 있는데도 안 준다 이겁니다. 그래서 “모든 건 놓고 살아, 착하게. 악담하지 말고. 그 사람이 잘돼야, 그 사람의 마음이 돌아서야 당신 돈 줄 거 아니야? 그러니 항상 착한 마음으로써 다 놓게 되면 스스로 돈을 갖다 주게 돼 있어.” 그랬습니다. 착하게 놓으니까 스스로서 그 사람이 돈을 갖다 주더랍니다, 정말. 그랬다는 셈으로 우리는 무술도 고수가 되려면 그렇고, 태권도도 마음을 놓지 않고 모든 잡념을 버리지 않고는 못합니다. 여러분, 아시겠죠? 자유인이 되시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