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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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선근발상(善根發相) ③
三慈心善根發相 行者因修止觀故 若得欲界未到地定 於此定中 忽然發心慈念衆生 或緣親人得樂之相 卽發深定 內心悅樂淸淨 不可爲喩 中人怨人 乃至十方五道衆生 亦復如是 從禪定起 其心悅樂 隨所見人 顔色常和 是爲慈心善根發相 悲喜捨心發相 類此可知也
세 종류로 자애로운 마음으로 관찰하는 가운데 선근이 일어나는 모습에 대해 밝혀보자. 우리 중생들은 무량겁이래로 지관공부와 대자대비, 대희대사, 사무량심(四無量心) 등의 수행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 문제를 두고 옛사람은 “가사를 입기 쉽다고 말하지를 말라. 이것은 전생에 보리의 종자를 심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수행자가 과거 전생에 자비희사(慈悲喜捨) 사무량심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단지 그 공부가 아직 성취되지 않았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 지관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생에 자비희사 선근을 심은 인연에다 금생에 지관을 수행한 것으로 인해 미도지정을 얻으면 홀연히 과거 전생의 선근이 발동하여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염려하는 마음이 일어나며 가까운 사람들이 즐거움을 얻는 모습을 따라서 자신도 즐거움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은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가장 친한 사람으로 부모와 스승이고, 두 번째는 중간쯤 친한 사람으로 형제와 자매이고, 세 번째는 조금 친한 사람으로 친구와 지인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 종류의 친한 사람들이 즐거움을 얻는 것도 역시 세 종류로 차별이 난다.
가장 친한 사람들이 모든 부처님의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보기도 하고, 중간쯤 친한 사람이 보살 나한의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보기도 하고, 최하로 친한 사람이 하늘나라의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심오한 선정에서 갖가지 쾌락의 모습이 일어나 마음이 쾌락하고 청정해지는데, 그 즐거움이 세간 오욕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친하지도 않지만 소원하지도 않는 중간쯤 친한 사람과 원수 같은 사람을 연유해서 일어나는 쾌락상도 역시 세 종류가 있다.
최하로 친한 사람을 해칠 경우 그것은 최하의 원한이 되고, 중간쯤 친한 사람을 해치는 것은 중간쯤 원한이 되고, 최상으로 해치는 사람은 최상의 원한이 된다.
그러나 원한이 있는 사람이나 중간쯤 친한 사람을 논할 것 없이 그들이 즐거움을 얻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와 같이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까지도 즐거움을 얻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선정에 들면 시방육도의 일체 중생가운데 친함과 원한을 논할 것 없이 낱낱이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연민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다. 따라서 원한과 친함이 평등하고 아상과 인상이 동시에 공적하여 선정가운데서 자애로움을 일으키게 된다.
선정으로부터 일어나는 마음이 기쁘고 쾌락하여 한 생각이라도 상대방에게 염증과 원한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안색은 항상 부드럽고 화색이 돌게 된다. 이것을 두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관찰하는 데서 일어난 선근의 모습이라고 한다.
사무량심 가운데 자애로운 마음이 이와 같다면 나머지 비(悲), 희(喜), 사(捨)의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그 나머지 세 가지 마음도 이를 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四因緣觀善根發相 行者因修止觀故 若得欲界未到地身心靜定 忽然覺悟心生 推尋三世無明行等諸因緣中 不見人我 卽離斷當 破諸執見 得定安穩 解慧開發 心生法喜 不念世間之事 乃至五陰十二處十八界中 分別亦如是 是爲因緣觀善根發相
네 번째로 인연관을 닦아 일어난 선근의 모습이다. ‘인’은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은 인을 보조하는 조건을 말한다.
인은 삼세 십이인연이다.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에서는 십이인연을 세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첫 번째는 삼세십이인연(三世十二因緣)이다. 과거 무명(無明)과 행(行)의 이지인(二支因)이 현재의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의 오지과(五支果)를 부르고, 애(愛) 취(取) 유(有)의 현재 삼지인(三支因)이 미래 생(生) 노사(老死)의 이지과(二支果)를 부르는데 이것이 삼세십이인연이다.
두 번째는 이세십이인연(二世 十二因緣)이다. 무명과 행으로부터 애 취 유에 이르기까지 현재 십지인(十支因)이 되어서 생 노사의 이지과를 불러들인다. 그 때문에 이세십이인연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는 일념십이인연(一念 十二因緣)이다. 이는 현재 한 찰나에 일어나는 생각에 십이인연을 동시에 갖추었음을 말한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한 생각은 극도로 촉박한 한 찰나의 일념이 아니며 선업과 악업이 일어나서 성취되기까지 일념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일념무명을 일으켜 한 마리의 닭을 살생하려 할 때 살생하고 나서야 그 업이 이뤄지는 것까지를 일념이라고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일념은 삼세십이인연과 이세십이인연이 시간적으로 연이어 속박하는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삼세인연은 단견과 상견을 타파하고, 이세인연은 아상의 집착을 타파하고, 일념인연은 실제 성품이 있다는 것을 타파한다.
중생들은 무시이래로 이 세 가지 인연관을 닦았으나 단지 오음의 집착 때문에 부모의 태속으로 들어가면서 그 수행했던 마음이 미혹해진 것이다. 그 때문에 현생에 그러한 이치를 모르는 것이다.
금생에 지관을 수행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안정되어 홀연히 깨달은 마음이 일어나 삼세 무명 행 등의 모든 인연을 추리해 보면 그 가운데는 인상과 아상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통해 단견과 상견을 떠나 모든 집착을 타파하게 된다.
최초로 무명은 행을 깔고, 행은 식을 깔고, 유는 생을 깔고, 생은 노사를 깔고 있기 때문에 혹업고(或業苦)의 생사인과를 이루게 된다.
이를 역으로 추리해서 지금 노사는 어디로 부터서 왔는가. 그것은 생으로 부터서 왔으며, 생은 취로부터 왔고, 식은 행으로부터 왔으며, 행은 무명으로부터 왔고, 무명은 망상전도로부터 온 것이다.
그 전도된 망상을 추구해 보면 와도 온 것이 없고, 가도 간 것이 없어 그 자체는 원래 허망한 무명으로서 끝내 실체를 얻지 못한다.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며 노사까지도 소멸한다.
삼세인연이 단견과 상견을 타파한다는 것은 삼세는 끝없이 교대로 뒤바뀌기 때문에 상주도 아니고 상주도 아닌 가운데서 삼세는 끝없이 상속하기 때문에 단멸도 아니다.
또 과거는 이미 흘러가 없음으로 상견을 타파하고, 미래는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단견을 타파하며,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간단없이 소멸하고 이어지기 때문에 단견과 상견을 쌍으로 타파하는 것이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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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오후 3: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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