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명절이다 하면 가족 친척과의 반가운 만남을 생각하겠지만 그럴 때 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태어나서 한번도 가정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가정에 대해 온갖 부정적인 기억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20대의 한 법우는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절망하여 한 때는 교도소 안에서도 자살을 시도하였었다. 그 후 부처님법을 만나 어두운 마음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키워가고 있다.
선생님께
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가을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날씨입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많이 바쁘시죠. 바쁘셔서 쉬실 시간도 없겠네요. 그래도 선생님 마음은 하나도 힘 안 드시고 기쁘실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일이 많아 하루 종일 가방을 접어도 일을 다 못 끝낼 정도예요. 방으로 돌아오면 책이라도 보려고 해도 펴고 있으면 잠이 와서 금방 덮고 자 버려요. 선생님께서는 더 힘드셔도 노력하시는데 저는 잘 되지가 않네요. 요즘도 가끔씩 분에 못 이기는 제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 모습을 느낄 때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아세요. 사실 겁이 나요. 아직도 변하지 못한 것 같아서요.
이런 모습 버리지 못하고 나가면 선생님들 실망시켜 드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침 저녁으로 오늘은 나를 버리자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자기 전 과연 오늘은 얼마 만큼 버릴 수 있었는지 생각하고 내일은 마저 버리자 하면서 하루를 지내는데 이것 또한 생각처럼 잘 되지가 않네요. 더욱 더 노력해야 겠습니다.
오늘 형에게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띄워 보냈습니다. 힘드신데도 저희 형제를 잊지 않고 지켜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희 형도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릅니다. 일을 하다가도 형 생각에 웃음이 나고 그래요. 저희는 어릴 때부터 웃음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어요. 매일 저녁마다 술 마시고 들어오시는 아버지가 무서워서요. 아버지는 엄마하고 하루도 싸우지 않은 날이 없는 것 같아요. 매일 엄마를 심하게 때리셨어요. 그러면 저희 둘은 너무 무서워 떨면서 울고요, 엄마를 지키려고 말리다가 대신 또 맞고요. 하루하루가 지옥같이 너무 싫었어요. 학교에 가기도 싫었고요. 학교 가서도 저녁에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 모습을 생각하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도망가고만 싶었지만, 우리 엄마니까 또 집에 가서 말려야 하고, 저도 맞고요.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제가 중학생이 되자 엄마는 어디로 가버리셨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도 차라리 그게 나았어요. 매 맞는 엄마 모습은 너무 불쌍하고 저같아도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그 후 저희 형제는 집을 나와 먹고 살려고 애를 썼는데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결국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젠 나가서 열심히 살 생각을 하니 형이나 저나 웃음이 나와요. 웃을 날도 있었구나 생각하니 신기해요. 이 웃음을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인 것 같습니다. 나가서 인정받기가 쉽지만은 않겠지요. 오히려 전과자라는 이름이 붙어 더 힘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어차피 인생은 고라고 했잖아요. 저는 고에서 웃음을 찾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해 선생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 모든 게 부처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인 것 같습니다. 불쌍한 우리 형제를 죄악의 구렁에서 건져내 주시기 위해 선생님같이 좋으신 분들을 보내 주셨으니 이보다 큰 인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욕심을 버려서 나가 아닌 모두를 위한 삶으로 지난 날의 죄악으로 쌓은 업을 조금씩 줄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여러 선생님들께 받은 따뜻한 사랑이 저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거예요.
빨리 나가서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경도 배우고 부처님 말씀도 배우고요.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냥 보내지 않고 뭐라도 깨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몸 건강하시고 아프시면 안 돼요. 항상 부처님께서 지켜주실 거예요.
항상 행복하시길 기도할게요.
00올림
부처님, 그를 보면 ‘인과니 업보니 붙이지 마라. 고정돼 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하신 말씀에 매달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부디 그를 업으로부터 지켜주세요! 그가 이 험한 세상에서 참다운 불자로서 마음의 웃음을 찾을 수 있도록 지켜주시길 자성부처님께 간절히 기원 올립니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