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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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불심…’ 이란 표현부터 왜곡됐다
새 정부 들어 공인이나 공공기관에 의해 일어난 27건 정도의 종교편향적 사건에 대해 전 불교도가 8.27 범불교대회에서 한 목소리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이를 두고 각종 언론매체의 머리글에서 ‘성난 불심…’ 운운하는 제목으로 그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해도 괜찮을까?
하찮은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이 말속에서 우리는 심각한 왜곡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미 알다시피 부처님이 지상과제로 삼았던 해탈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으로부터의 벗어남이다. 따라서 불심은 ‘성냄’으로부터 벗어난 완전히 평화로운 마음상태를 의미한다. 당연히 불심에 ‘성냄’이 있을 수는 없다. 이것은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정신과 기본적인 교리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말이다. 일시적으로 왜곡된 말이 상용화가 되어버릴 때 예기치 못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늘 접하는 단어들 중에 ‘소란’을 뜻하는 ‘야단법석’이나 ‘끝장’의 뜻으로 변해버린 ‘이판사판’ 등은 불교용어였으나 일상적으로 쓰이면서 본래 뜻이 변화한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에 대한 과잉 검문검색이 불법승 삼보 중에서 승가에 대한 모독이라고 한다면 ‘성난 불심’ 운운은 불심(佛心)에 대한 모독에 해당된다. 만약 불심에 성이 나는 일이 있다면 불교계는 최후의 보루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얼마 전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면서 유혈사태가 일어났던 티베트의 경우에도 그 단서는 승려에 대한 폭력사태로부터 시발되었다. 그 와중에서도 언론에서는 티베트망명정부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의 매우 이성적이고 사려깊은 태도를 소개함으로써 그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되었다. 비록 우리 불교계가 현재 위기적 상황을 맞고 있다 하더라도 감정적 대응태도로 비춰지는 ‘성난 불심’ 등과 같은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문구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하고 이성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당연한 주권 행사를 하고 있음을 널리 알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촛불시위나 범불교도대회 그 자체가 결코 감정적인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소통을 위한 이성적 태도의 마지막 수단임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9월 9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 복무규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도 “불교계의 마음이 상한 것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유감표명에 그친 것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공직자나 공공기관의 종교편향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인내하고 있던 불교계가 범불교도대회를 통해 나선 근본적인 이유는 공직자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중립적 태도와 품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직분을 이용하거나 직무와 연관시켜 공개적으로 자신이 믿는 종교를 선양하고자 하는 등의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하는 것이나, 또는 직무상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도 특정종교와 관련되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의혹에 있다. 범불교도대회는 전적으로 감정적인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공직자의 자질과 제도적 측면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라는 것을 명백히 강조해야 한다.
만약 정부의 방침대로 종교편향금지법을 입법화하더라도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뒤로 하고서 ‘종교편향’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이 단순히 포괄적으로 법제화한다면 불교계의 본래 뜻과는 달리 오히려 불교계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불교계는 타종교에 비해서 월등히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유형적으로나 무형적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있으므로 어느 종단이나 종파를 떠나서 더욱 세심한 지원과 관심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것을 종교편향이라는 억지를 부린다면 그 혼란은 말할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종교편향금지법의 입법화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잘 파악하여 그 핵심적인 문제점을 시정하는 방향으로 제정되어야 하며, 불교계에서도 입법화 과정에 대해 예의주시하며 냉철하고 이성적인 입장에서 엄정하게 대응해나가야 한다.
결코 큰 일은 갑자기 닥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먼 미래의 결과는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008-09-23 오전 11: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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