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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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안 보이는 통장 만들기
“감사함으로 마음통장 채워요”

손해보는 장사

“뭐요? 월세 오십요?” 부동산 전화를 받고 윤씨는 어이가 없었다. 그 동네 월세는 다 올라서 60만원 된지가 언제인데. 어떤 집주인들은 70만원까지 받고 있었다. 윤씨도 이번부터는 얼마라도 더 올려 받으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10만원을 내려 50만원이라니. “말도 안 돼요!” 하려다 다음 말에 멈칫했다. “글쎄, 안 되는 줄 아는데요, 보니까 젊은 엄마가 혼자 애를 키운다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보여요. 갑자기 남편이 죽었대요. 남편 빚이 많아 일년만 오십으로 해 주면 어떻게 해보겠다고 사정하는 거요.” 갑자기 윤씨는 “돈이 원수다” 라고 하던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하필이면 나랑 똑같지. 나도 어려서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빚 남겨놓고 간 것도 똑같네. 가슴이 아려왔다. 단칸방에서 몇 식구가 시달리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잠시 망설이다 에이 모르겠다, 하고 “그럼 힘드실 텐데, 아예 40만원으로 하라고 하세요” 해버렸다. 말하고 보니 자신이 바보 같기도 했다. 세를 올리기는커녕 손해 보게 것이다. 그것도 그쪽이 부른 것보다도 더 내려주다니.

돈 만이 내 편이다

예전 같으면 어림없었다. 아무리 사정이 어려운 사람을 만나도 “나부터 살고 봐야지. 흥, 고생 안한 사람 어디 있어”하며 이 악물고 살아온 윤씨였다.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와 우리가 힘들 때 누가 도와줬냐고요?” 친척들은 자기들도 어렵다며 모른 척 했다. 아빠 빚 걱정에 시달리며 일하는 엄마를 보며 자랐다. 그래서 윤씨는 돈 있어야 산다고 악착같이 일해서 모으고 또 모았다. 그러다보니 남들에게 박정해졌다. 구두쇠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나 힘들면 내 인생 누가 도와 주냐고. 통장의 돈만이 내 편이야.
그런데 몇 년 전, 금쪽같은 삼천만원을 도둑맞고 말았다. 분하고 억울해서 잠이 안 왔다. 그 돈 생각에 한 달이 넘어도 밥을 잘 못 넘겼다. 옆집 엄마가 “그러다 병나시겠어요. 저랑 시간 좀 내요” 하며 끌고 가다시피 해서 가보니 절이었다.
스님은 “정말 고생 많으셨군요. 그런데 보살님, 화를 내시면 그 돈을 다시 찾을 수 있나요?” 하고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화낸다고 어디서 나오나요?” 스님은 “바로 그거예요. 돈 잃은 것도 힘든데 그걸로 그치셔야지요. 거기다 이제 건강까지 상하시려고요. 어차피 찾을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잘 사십시오.” “말씀이야 맞지만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잘 안되지요. 그래서 같이 마음공부하며 서로 돕는 겁니다.”

마음의 통장 잔고가 얼마인가요?

스님은 “보살님, 돈을 잘 모으신다고 했는데요. 안 보이는 통장에는 잔고가 얼마나 있으세요?”하고 물었다. “네? 안 보이는 통장이라니, 그게 뭐예요? 새로 나온 금융상품인가요?” 스님은 웃으며 “삼천만원이 있다가도 사라진 것처럼 물질적인 돈은 영원히 내 것이 없어요. 있다 없다 하지요. 그러나 안 보이는 통장에 드는 적금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세세생생 자기 거예요.” 바로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 하는 업식만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몸이 죽어도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마음의 통장에는 오로지 나만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입금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남에게 베풀고 보시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없애려는 마음, 서로 돕고 위하는 마음, 자비와 용서 등으로 적금을 들라고 했다. “보살님, 이제 진짜 부자가 되셔야지요!” 그 때는 그 뜻이 얼른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너무 돈에 한 맺혀 있으니까 스님이 통장 이야기로 달래시려는 건가.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부동산이었다. “애기엄마가 좀 바꿔달라고 하네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무 감사해서요. 제가 원래 염치없는 사람이 아닌데 정말 살기가 힘들다 보니 죄송해요. 그런데 사십만원으로 내려주시다니,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정말 복 받을 분이세요” 하며 흐느꼈다.
윤씨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왜 이리 내 마음이 뿌듯하고 밝아지는 거지? 돈은 매달 몇 십 만 원씩 손해 나게 된 마당에. 아, 그 때 스님이 말씀하신 안 보이는 통장, 이거구나. 남을 도왔는데 내가 좋고 감사한 이 마음. 물질 통장은 손해지만 마음통장은 기쁨과 감사함이 가득 차고 있다. 결국 이익이구나!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젠 저, 과거의 인색한 구두쇠가 아니에요. 마음통장에 입금을 시작했다고요. 진짜 부자가 될 거예요. 넉넉한 마음 부자 한번 될 테니, 절대 보증은 부처님께서 해주시는 거죠.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09-23 오전 10: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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