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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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맛을 알려면 내가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꼭 둘 아님을 알아야

이 옷을 벗고
이 옷 속에 있는 그 곤충의 세계까지
다 벗어 버리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마음공부의 관점에서 추석의 의미
질문: 한 달 전에 칠석과 백종을 지냈는데도 또 추석날 선원에서 조상님 천도재로 해서 행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원에서는 모든 것을 마음 하나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서 너무 재사에 치우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추석은 제가 아는 짧은 지식으로는 신라 유리왕 때 궁녀들을 두 패로 나누어 배 짜기 시합을 시킨 것이 기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농경사회도 아니고 더군다나 살기도 어려운데 이 마음공부의 관점에서 추석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이 마음공부 하는 도리는요, 한번 인연을 만나는 게 천 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렵습니다, 이 마음공부 하는 게. 이 옷을 벗고 이 옷 속에 있는 그 곤충의 세계까지 다 벗어 버리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이런 말입니다. 그 보기 흉하고 그런 곤충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헤어나지 못해야 합니까? 부처는 못 된다 하더라도, 비천상 보셨죠? 날아다니면서 하는 거, 그런 것처럼 그저 이것도 이 모습으로도 됐다가 저 모습으로도 됐다가, 이거를 건지려면 이 모습으로도 되고 저거를 건지려면 저 모습으로도 되고 이렇게 해 가지고선 다 건지고 가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다 보면 지나간 과거고 또 앞으로 올 미래고 현재에 살아가는 이 현실도 다 무효가 되는 겁니다. 그게 이름이 과거 미래 현재 이러지 이 지구가 돌아가는 자체에 이름은 없습니다. 이름은 없어요. 항상 끊어지지 않고 돌아가기 때문에 이름도 없죠. 그런데 사람은 가르치기 위해서 과거니 미래니 현실이니 하고 이렇게 해 놓고, 질서를 지키고 살기 위해서 또 이러니저러니 말을 해 놓고….
그래서 ‘불교'''' 하면 그냥그냥 발기발기 뜯어서 그냥 쫙 늘어놓으니까 여러분이 더 공부를 못하는 거예요. 몸뚱이 하나 가지고 얼마나 말씀을 많이 했고 그 말씀을 또 덧붙여 가지고 얼마나 많이 불려 놨습니까, 지금.
하여튼 제가 말씀드린 거는 제일 중요한 게, 우리가 이 몸속에 들어 있는 곤충들도 자기 모습이니까 모든 거를 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꼭 둘이 아니라는 것만 아셔야 됩니다. 귀신이 나온다 하더라도 둘이 아니에요. 나는 귀신이 나온다 이러면 그 참, 보이지 않는 데 어떠한 귀신이다 어떠한 신장이다 어떠한 뭐다 하더라도 겁 안 나는 게 뭐냐 하면 산 사람도 산 귀신이에요. 죽은 사람은 죽은 귀신이고요. 그런데 산 귀신이 더 하지 그래 죽은 귀신이 더 하겠습니까? 그럼 죽은 귀신이나 산 귀신이나 둘이 아니에요. 그러니깐 그 귀신은 귀신끼리 해결을 하는 거죠. 그러니깐 항상 둘이 아니에요. 그래서 주인공에다 모든 걸 맡겨라 이런 거예요.
공에다가 그냥 모두 집어넣으면, 공을 집어넣으면 뭐가 남습니까, 거기. 공에다 공을 집어넣는데 그 얼마나 빨라요, 글쎄. 사람들이 그냥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가지고 괜히들 그러는 거예요. 그냥 그까짓 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느냐. 너 있으면 나 있고 나 있으면 너 있고 모두가 둘이 아닌데. 세울 것도 없고, 찾을 것도 없고, 볼 것도 없고, 알 것도 없고 모든 게 그런데 뭐가, 모두가 둘이 아닌데 이 컵과 컵이 둘이 아니라면 한 컵이, 자기 컵 하나가 자기 컵을 깨트리겠습니까? 마주쳐야 깨트려지지. 그걸 명심하세요.
조상의 어떠한 문제들도 그 사람의 마음이 배척하는 마음으로 하지 말고 끌어안는 마음으로,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셔야 합니다. 때로는 어떤 분들은 총에 맞아 죽은 분들도 계시고 물에 빠져 죽은 분도 계시고 맞아 죽은 사람도 있고, 옛날 분들은 그런 분들이 참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을 오히려 무섭게 생각을 하고 자기네들을 해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면 안 되죠.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하고 잘 모셔 드린다면, 백중 때나 정월 때나 팔월 추석 때나 자기 조상이라면, 바로 자기네들 조상이라면 자기 뿌리나 똑같은데 그걸 은혜롭게 생각하고 이렇게 받들어 모시는 마음을 갖는다면 서로가 서로를 돕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둘 아니게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갈라요, 그냥. 시아버진 이랬고 시어머닌 이랬고 이렇게, 뭐 어떻고 저떻고 이렇게 다 갈라놓으니깐 갈라놓은 대로 갈라지는 거죠. 그렇다면 그 집안이 뭐가 되겠어요. 자손들도 싸움박질들이나 하고 나가서 일이나 저지르고 이렇게 하다 보면 집안이 편안치 못한 거죠.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자식들을 낳아 가지고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냐고 한탄을 하지만, 그거 한탄을 해도 소용없는 소리예요. 자기네들 생각에 의해서 모두가 그렇게 되는 거니까요. 마음으로 짓는 거 천 냥 빚은 못 갚겠습니까? 마음으로 하는 거 얼마든지 자비하고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건데도 그걸 못해요.
그래, 추석을 쇨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추석을 쇠었나? 추석은 추석이니만큼, 물론 하루도 삼천 년 전이나 삼천 년 후나 어떤 하루밖엔 더 없지만 추석이다 하면 뭐든 하루를, 하루를 봐서 모든 지·수·화·풍과 일체 중생을 만물과 더불어 같이 감사하고, 하나도 감사하지 않은 게 없지요.
일차적으로는 그러면서, 이차는 일체 조상님들 얘긴데, 법의 조상이나 육의 조상이나 모든 조상님들, 일체제불에게 또는 일체 중생들에게, 일체 권속들에게, 그래 가지고 나중에 회향을 할 때, 마음의 회향을 할 때 한데 합쳐서 회향을 하게 되지요. 이것이 생각이라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아무 생각 안 한 거 하고, 아무 생각 안 해 가지고, 아무 생각 안 해도 생각이 한 게 되고, 한 것이 바로 한 사이가 없이 되어야 되는 거지, 그 생각도 안 하면 발전이 없어요. 생각을 함으로써 발전이 이루어지고 창조력이 길러지고 창조를 해낼 수 있는 그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추석은 상당히 의의가 깊은 날이다 그런 거지요.

인식하는 주체가 사라진 경계란
질문: 한 선사가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경계(境界)를 인식하는 주체가 남아 있는 한 인식된 모든 것은 속임수다.”라고 하셨습니다. 인식하는 주체가 사라진 경지란 어떤 경지일까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그때는 주인공만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제 나름대로 헤아려 봅니다만 이에 대해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항상 제가 얘기했죠. 물맛을 알려면 내가 직접 먹어 봐야 안다고요. 정말 뜨거운지 미지근한 건지, 따뜻한 건지 찬 건지 그거는 먹어 보는 사람이나 알겠죠. 그러니까 내가 먹어 보지 않는 이상에는 모두 거짓말이라는 얘깁니다. 아시겠습니까? 얼른 쉽게 말을 하는 겁니다, 지금.
그러니까 말로만 듣고 책을 보고 경전을 보고, 모두 봐도 말로만 이론적으로만 해 나가면 모두 거짓말이 되고 모두 헛것이 됩니다. 그래서 물을 딱 마셔 보고 그 물을 그냥 “야, 이건 먹으니까 시원하더라.” 하고 주는 것이 바로 이게 약사가 감로수를 주는 거와 같은 겁니다. 이걸 먹어 보지도 않고 저 물맛이 어떻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주는 게 아닙니다. 이 어디고 누구든지 나 아님이 없고 이럴 때는 물도 바로 내가 물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맛을 아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물을 줘도 그때는 아주 독톡한 맛이 나고 그게 감로수가 되는 거죠. 그러니깐 그 지혜를 얻으려면요, 나부터 먼저 알아야 지혜가 자꾸 늘어 가요, 나부터 알아야.
그러니 이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셔야 됩니다. 내 마음이 트여야 남도 이끌어 갈 수 있지, 내가 눈을 뜨지 않고, 내가 귀를 뜨지 않고 남을 이끌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열심히 해서 남에게 진짜로 보시해라 하는 거, 금(金) 한 덩어릴 주고서 늘려라 이랬더니 그걸 늘리지 않고 그 금이 없어질까 봐 늘리지 않았다 이런 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거기다 놓고 체험하고 가면서 남들한테 그 마음공부를 전달해 주게 되면요, 그만큼 공덕이 큰 겁니다. 이건 세세생생에 공덕입니다, 올바로만 관법을 일러 준다면. 한 사람을 이끌었는데 수십억의 중생들을 이끈 셈입니다. 그건 왜냐하면, 집합소 하나를 포교했는데 집합소 안에 들어 있는 중생이 얼마나 많은지 말입니다, 그 집합소 안에 있는 자생중생들이 전부 바뀌어서, 화(化)해서 보살로 화했으니 얼마나 그게 공덕이 되겠습니까? 지금 뭔 말을 하다가 이렇게 됐죠?
그런데 말입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질문을 할 때는 그냥 주먹을 번쩍 들거나 내리치거나 이런 등등 문제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 가지고 지금은 여러분을 이끌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귀띔을 해 줘 가면서 이렇게 해야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겁니다. 산이 물이 되고 물이 산이 되는 도리를 어찌 알아서 산은 산대로 있고 물은 물대로 있는 도리를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틔워 주면서, 귀를 틔워 주면서 해야죠.

풍수나 지리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질문: 사람이 사는 집이나 죽은 사람의 산소를 잘못 쓰면 나쁜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것이 왜 그런 것인지요? 저희처럼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풍수나 지리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요?
답변: 신라 때에 한 가난한 집이 있었는데 아주 선비 중의 선비가 있었답니다. 그랬는데 가난한데다 등과도 못하다 보니까, 사람이 지금도 살려면 그런 수가 많지마는 여간 힘들지가 않았고, 부모가 돌아가셔도 풍수(風水)를 봐서 좋은 자리를 찾을 형편이 못되었더랍니다.
가난하니깐 돈을 들여서 풍수에 좋은 걸 살 수도 없고 그런 관계상 고구려로 넘어가서 조언을 받기 위해서 어느 스님, 예전에도 선지식 되시는 분들이 아마 몇 분이 거기서 은거하셨던 모양입니다. 거길 찾아가서 “제가 이러이러해서 부모를 모셔야 될 텐데 저희는 오형제나 되고 여자 동생들이 셋이고 그래서 팔남매나 됩니다. 그랬는데 팔남매 중에서 하나도 사람 노릇을 못하고, 각자 그저 각성(各姓)바지처럼 이리 뜯고 저리 뜯고 그러니, 부자도 싫고 권위도 싫고, 단 하나 있다면 화목하게, 형제들이 화목한 거를 바라겠습니다." 하고 화목하려면 묘지를 어떻게 써야만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니 스님께서, 산 부처가 생각을 하니까 참 기특하거든요. 사람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어, 그 말 한마디에. 그래서 생각을 하기를 ‘너희 형제들이 화목하려면 관록을 가져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 해 주신 겁니다. 금에다가 빛을 내게 하고 이자를 더 붙여 준 겁니다, 한생각이.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부모를 가매장한 것을 그냥 두고, 이 고구려에만 좋은 땅이 있는 게 아니다. 모두 눈들이 멀고 귀가 뜨이질 못해서 그러한 것이다. 오혈(五血)을 쥐고 있는 관계를, 오혈맥(五血脈)이 한 손에 들어 있느니라. 그러니 네가 가다가 발끝이 그냥 멈추었을 때, 즉 말하자면 멈춰서 가지 않을 때 그 자리에다 묻어라." 했거든요. 가다가 발이 멈춰질 때에 그 자리가 좋은 줄 알고 묻어라 그랬거든요.
그랬으니 이 선비는 그 뜻도 모르지만 하여튼 믿었죠. 그 당시 신라의 땅은, 저 왜 지붕 위에 있는 거 뭡니까? 굼뱅이 있죠? 굼뱅이 이렇게 둥글게 우그러진 것같이, 신라 땅이 그렇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고구려 땅은 네 각이 지면서 아래로 펑퍼짐했던 그때 당시였단 말입니다. 지금은 다 변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좋은 땅을 찾아서 다니려고 했는데 그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그걸 믿고 어느 산모퉁이를 오다가 들르려니까, 길이 있고 개골창이 있고 그러는데 아! 하필이면 말입니다, 거길 가는데 딱 멈춰졌단 말입니다. 이걸 어떡합니까? 자기가 봐서는 도무지 여기다 묻어서는 안 되겠는데. 그 자리에는 바위도 있고 바위 밑에 물이 흐르고 그러는 자리인데 아, 가다가 딱 멈춰 가지고는 영 발이 떼지질 않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분한테 아마 내가 그렇게 하랬으면 그대로 하겠습니까? 물도 질척질척하고 그런데 누가 거기다 묻습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죠. 그러나 그분은 믿었습니다. ‘좋다! 스님께서 이렇게 해 주셨으니까 여기다 묻자.’ 그러고 거기다가 표시를 해 놓곤 부지런히 가서 동생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거길 팠습니다. 파니까 웬걸요, 파니까 그 위만 질척질척하지 밑은 금빛이 나면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묻으려고 파는데 나중엔 다각다각거려서 보니까 돌로다가 아예 장식이 됐더랍니다. 밑바닥이 돌로다가 장식이 돼 있고, 옆으로는 돌이 천연적으로 아주, 그 옛날에 하얀 돌 있죠? 그런 것이 펑퍼짐하게 자연석으로 그렇게 돼 있더랍니다. 그래서 거기다가 모시고서 그 집안을 일으켰더랍니다. 한 술 더 떠서 관운을 갖게 됐고 이름을 갖게 됐고 또 화목을 갖게 됐고 재산을 갖게 됐어요. 재산은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밥은 굶지 않게 됐다 이 소립니다.
그렇게 됐는데 어느 대갓집에서 정승으로서의 권위가 당당한 분이 풍수를 봤는데 도대체 그 산 거기밖에는 그렇게 좋은 데가 없더라 이겁니다. 그 선비가 묘지 쓴 데 거기 말입니다. 그러니 그 권위 있는 사람이 몰래 돈을 많이 주고 사람을 사 가지곤 그걸 파 버리고 말입니다, 거기다가 또 묻었단 말입니다, 유골을. 딴 산소에 있는 걸 파다가 남의 묘지에다가 묻고선 그 묘지에 있는 뼈는 그냥 다 팽개친 겁니다.
그랬는데 선비 꿈에 말입니다, “얘들아, 너희는 내 집이 이렇게 없어진 것도 모르느냐? 모르느냐?” 하고 자꾸 와서 그래요. 그래서 형제가 가 보니까 산소가 자기네들이 해 놓은 것 같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스님한테 또 갔습니다. 가니까 하는 소리가 “그거를 또 뺏으려면 싸움이 나. 그러니 내버려둬라.” 그러고선 “요 개천 너머로 넘어가면 너희 아버님 뼈가 전부 널려져 있느니라. 그러니 그거를 하얀 백지에다가 전부 주워서 상자에 담아 놨다가, 네가 또 발 닿는 데로 갖다가 묻어라.” 이러거든요. 그러니 싸움을 시키지 않고 그냥 했는데 그 정승은 정승의 자리도 떨어지고 집이 폭삭 망했어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 생각을 해 보세요. 왜 그럴까요? 그 스님이 괘씸하게 생각을 했던 거지마는, 그 사람 자체가 그렇게 욕심이 많고 나쁘니까, 그 스님이 그렇게 만들려고 만든 게 아니라 그렇게 됐던 겁니다. 그러니 판사가 얄밉게 보면 한 번 더 긋는단 말입니다. 한 번 더 그어서 십 년 받을 거 이십 년 받게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죄목만 한 번 더 넣으면 되니까. 그래서 당연히 그 업을 받을 건데도 거기다 덧붙여서 스님께서 ‘참, 이놈 나쁜 놈이구나!'''' 했겠죠. 그러니 얼마나 업이 거기에 덧붙여졌겠습니까? 그래서 그 집이 망하고 나니까 거기다 묘지를 써서 그렇게 됐다고 그걸 또 다 캐 갔답니다. 다 캐 가니까 그 스님이 있다 하시는 소리가 “저기다가 또 써도 되느니라.” 그러거든요. 그리고 이다음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걸랑 거기다 또 묻어라. 괜찮다.” 그랬거든요. 그리고 삼형제가 관록을 먹고 다 잘됐다고 합니다.
그게 왜 그러냐? 이 산맥(山脈)이라는 것이 토질에 따라서, 혈맥(血脈)에 따라서 무정물이나 식물이나 생물의 생태도 변질이 됩니다. 이것이 따지고 보면 거기 토질과 혈맥에 의해서 부패가 될 수도 있고, 이것이 잘 다져질 수도 있고, 즉 말하자면 알칼리성, 산성이 한데 혼합이 된 땅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분산된 땅이 있단 얘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합일돼서 혈맥이 다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자리에다가, 그것도 혈맥 위에다가 묻어서는 안 되고 그것을 돌아가게는 하되, 그 영향이 자기한테 에너지로 오게끔 만들어서 그 묘지를 쓰는 겁니다. 그렇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백혈 즉, 백호라고도 그럽니다. 또 청혈·황혈 이게 쌍방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홍혈·석혈 또 수혈 이런 것이, 즉 말하자면 다섯 가지의 혈을, 혈맥을 그것을 백호에서 주재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마음 심(心)이 전부 이 몸을 이끌어 가지고 가듯 말입니다. 그것을 한데 합친 것을, 다섯 가지가 한데 합친 것을 오혈맥(五血脈)이라고 하죠.
이것은 내가 책을 보고 얘기하는 게 아니니 이해해 주세요. 그냥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혈(五血)이 한데, 혈이 한데 모아졌다가 다시 분산돼서 나가듯이 여러 혈이 한데 모아졌다가 다시 모아지는 반면에 다시 분산돼서 전체를 다 통하게끔, 무전통신이 통하게끔 돼 있는 혈이 있습니다. 그 혈에는 사람의 머리, 정수리, 그러니까 백두혈이라고 말을 해도 되는데 그러면 그 혈에서 모든 것이 머리로 인해 오관을 통해서 발끝까지 다 통하듯이, 여러분이 이해를 잘 해서 들으세요. 발끝까지 다 통해서 그렇게 하듯이, 이 무르팍 뼈, 손목 뼈 중요하죠. 팔뒤꿈치, 옆 겨드랑이 뼈, 발 이것도 다 중요한 자립니다. 그렇듯이 산도 그렇게 중요한 자리가 있습니다. 없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러한 오혈맥을 다 쥘 수 있어서 내가 자유권을 가졌을 때는 지리도, 마음공부를 해서 자유롭게 가졌을 때는 내가 나를 자각해서 내가 마음대로 오온(五蘊)을 다, ‘오온’ 하면은 벌써 거기는 오신통(五神通)이 들어가죠. 다섯 개의 그 주(珠)가 들어가죠. 그거를 한데 합쳐서 동시에 스스로 굴릴 수 있는 자동적인 자기 자성(自性)이라면, 그것조차도 똑같이 돌아갑니다. 그것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아까 그랬던 것처럼, 왜 똑같은 자리에다 묻어서 잘되는 사람이 있고 묻어서 안되는 사람이 있었던가요? 그건 여러분의 마음에 달린 겁니다.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죠. 그래서 여기에 오실 때는 ‘그저 그렇지.’ 하고 오면 그르치고, 마음을 다지고 정돈을 잘해서 오시면 그분은 정돈을 잘해서 가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혈맥도 우리 인간의 몸의 혈맥과 같이 돼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우주의 섭리나 지리나, 산, 물, 한울, 삼위일체가 다 이 손 안에서 구른다면 오혈맥(五血脈)이 다 이 손 안에서, 한생각 안에서 다 구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자동적으로 말입니다. 내가 가면 가는 대로,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여기 좋구나!'''' 하면 좋은 겁니다. 내가 생각하고 ‘아, 우리는 화목해야겠다. 또 뭐를 어떻게 해야겠다. 난 관록(官祿)을 좀 가져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먹고 묻는다면 그 자리가 그대로 좋은 겁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한국의 땅 형편으로 봐서 그런 산 자리나 보러 다니게끔 돼 있질 않습니다. 또 그렇게 산 자리를 봐서 좋다 하더라도 묻지 못하게끔 돼 있습니다. 예전같이 그렇게 돼 있질 않죠. 그렇기 때문에 이 공부를 해서 어디에나 묻어도 좋고, 또 예전부터 불가에서는 화장(火葬)을 합니다. 다비식(茶毘式) 하는 것이 바로 화장이죠. 화장을 했어도 육은, 즉 말하자면 구더기가 파리가 되고 난 뒤의 껍데기와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옷이 더러우면 옷 벗어 버리듯이 우리는 영원한 겁니다. 그래서 ‘나오지 않았다면 갈 곳도 없는 것을…’ 하는 얘기가 있는 것처럼 그냥 태워 버리는 거죠.
몸에다 착을 두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는 이유는 내가 옷 벗어 버릴 때에 수월하게 벗어 버리기 위해섭니다. 여러분, 생각을 깊이 하셔야 됩니다. 콩 껍질을 벗길 때 덜 익었으면 콩 속살이 붙어 가지고 까기가 상당히 나쁩니다. 그와 같은 겁니다. 그게 안 떨어지니까. 아픈 지 삼 년이다 오 년이다 온통 고생을 하고 이렇게 죽습니다. 그게 익은 거라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탁 벌어집니다. 그와 같은 겁니다. 우리는 몸에다 착을 두지 않아도 싱그럽게 실상으로서의 그대로 삼위일체로 회전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여여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지금 이 혈(血)을 볼 때, 어디는 어떻고 어디는 어떻고 이렇게 따진다면 우리가 지금 각본대로, 운명대로 좋으면 좋은 거, 언짢으면 언짢은 거, 자기가 한 거만치 그대로 받게 됩니다. 또 토질·혈·맥(脈)이 나쁜 것만치 생태들이 나빠지고 나무들이 나빠져서 열매가 작아지는 수도 있고 커지는 수도 있습니다. 또 같은 자리에다 묘를 써도 그 마음에 따라 잘되고 잘못되고 그렇듯이 그렇게 돼 있는 것처럼 인간도 그렇게 각본대로 받게 돼 있거든요. 팔자 운명 이런 것이 말입니다. 각본대로 나오는 걸 나오는 그 자리에다가 다시 놓아라 그 소리입니다. 다시 놓으면 테이프에 감긴 것이 다 지워집니다. 이걸 비교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과거의 업보대로, 각본대로 나오지만 다 녹아서 지금 현상에서 영원토록 참자유인이 돼서 살면 영원토록 미래 과거도 없이 자유권을 얻게 되는 겁니다.
2008-09-23 오전 10: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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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