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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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향련
경의 뜻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 참 독경

경전 읽고 외우는 간경·독경 훌륭한 수행방편
10세부터 ‘관음경’ 줄줄 … “심등은 어디 있나?”

신라시대 서라벌에 남편 박신(朴信)과 부인 설씨(薛氏)가 왕성 밖에서 조그마한 상점인 연꽃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십 초반이 되도록 아이가 없어서 애 태우던 이 부부는 어느 날 관음사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 눈길에 쓰러진 걸인행색의 노파를 구해주었다.
사십에 과부가 되고 오십에 두 눈 마저 멀게 된 이 노파는 떠돌이 생활 가운데서도 <관음경>(<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항상 외워서, 거꾸로도 외울 정도로 통달한 상태였다. 박씨 부부는 의지할 데 없는 노파를 양어머니로 모시고 살면서 <관음경>을 가르쳐 주기를 청했고, 날마다 밤이면 셋이서 <관음경>을 외우며 뜻을 새겼다.
그렇게 삼년이 흐른 어느 봄날, 노파는 설씨부인에게 “주인댁 뱃속에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다음날 아침 자기 방에서 <관음경>을 앞에 놓고 요위에 단정히 좌선자세로 앉아 숨을 거두었다.
노파가 죽고 나서부터 설씨의 몸에 태기가 왔다. 부부는 열달만에 천금과 같은 딸을 얻었고, 이름을 향련(香蓮)이라고 지었다. 향련은 커갈수록 선녀와 같은 미모와 총기를 보였다. <관음경>을 외우는 것은 물론이요, 열살 때부터는 대장경을 혼자서 읽고 이해했다. 글방의 선생이 놀랐고, 효심이 깊어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어느 날, 길에서 향련이 대각 선사를 만나 선문답을 펼쳤다.
“법화경에 ‘용녀성도(龍女成道)’이야기에 의하면, 용녀는 8세 때 부처님께 보주(寶珠)를 바치고 득도하였다는데, 저는 지금 열 살 나이로서 보주가 없습니다. 그래도 성불할 수 있습니까?”
대각 선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것을 물으려면 선방으로 오너라.”
“승속(僧俗), 산천이 도량 아닌 곳이 없사오니 제 질문에 어서 대답해주세요.”
어물어물하는 대각 선사를 본 향련은 날카롭게 할(喝)을 하고, 선사가 수하고 있는 가사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한 번은 향련의 나이 열 여섯, 사월 초파일 때 일이었다. 절에 올라가니 한 스님이 신도들에게 등(燈) 시주를 청하고 있었다. 향련은 그 스님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스님, 이 절에 장식한 무수한 등에서 어떤 등이 제일 밝나요?”
“불전에 걸어 놓은 비싸고 큰 등이 제일 밝지.”
“불등(佛燈)은 많은데 심등(心燈)은 어디 있나요?”
“…….”
향련은 그 스님의 머리를 주먹으로 두 대 갈겼다.
뜻밖의 봉변에 스님이 화를 내는데, 이를 지켜본 대각 선사는 미소지을 뿐이었다.
향련의 나이 열일곱이 되던 해 양친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향련은 양친을 위해 불전에 지성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그후 아름다운 향련에게 지체 높은 집에서 혼담이 무수히 들어왔지만, 그녀는 결혼에 뜻이 없었다.
어느 화창한 봄 날, 향련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방안에서 <관음경>을 앞에 놓고 단정한 좌선자세로 숨을 거두었다. 향련의 치마폭에는 게송이 적혀 있었다.
“나는 본래 속세 떠난 임천(林泉)의 벗이었는데/ 인연 따라 홍진(紅塵)을 밟았네/ 이제 속세에 더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하여/ 십일면관음보살로 돌아가려네.”
향련의 시신은 대각 선사가 정중히 거두어 다비했다. 불이 활활 타오르자 한 줄기 서광(瑞光)이 하늘을 찌를듯 하더니, 그 빛줄기는 관음사 쪽으로 사라졌다. 향련의 몸에서는 오색의 사리가 무수히 쏟아졌다.
이상은 <관음경>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일심으로 경전을 읽고 외우는 간경(看經)과 독경(讀經) 역시 훌륭한 수행방편임을 보여준다.
육조 선사는 제자 법달이 문구 외우는데만 급급해 헐떡거릴 뿐 번뇌망상의 분별심을 쉬지 못함을 보고, “참 독경이란 경의 뜻이 마음 가운데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을 말하며 이렇게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는 것을 보살”이라 하였다. 지식을 좇아 헐떡이는 마음을 쉬고 게송 하나라도 깊이 새기고 몸소 실천해 깊은 뜻을 스스로 체득해야 참다운 수행이라 할 것이다.
김성우 기자
2008-09-23 오전 10: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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