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대 입구에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다면 마산에는 내가 운영하는 ‘커피시니어 1호점’이 있다”고 당당하게 소개하는 김승희 할머니(69)는 바리스타다. 자신이 만든 커피를 맛있게, 또 멋있게 마시는 손님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주인공 직업이 바리스타였다. 바리스타는 커피를 추출하는 사람을 뜻한다. 생소한 직업은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을 깬 곳이 있다.
2007년 3월 문을 연 마산 금강노인복지관의 ‘아리카페 1호점’에서는 어르신들이 서빙부터 바리스타까지 모두 직접하고 있다. 현재 총 10명의 실버바리스타가 2인 1조로 팀을 구성해 하루 4개조씩 교대로 근무한다.
이 카페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의 다정다감한 사랑방이 됐다. 이런 이곳만의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는 모두 어르신들의 넉넉한 웃음과 경륜 덕분이다.
실버바리스타 김분식 할머니(69)는 수많은 커피 중에서 카페라테를 만들 때 가장 행복해진다. “라테 위에 하얀 우유거품으로 하트를 그려서 커피를 내어주면 손님들이 환하게 웃는데 그 순간이 너무 뿌듯하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손자들의 재롱에 편히 쉴 나이이지만 여기 모인 할머니들에게는 배움과 도전이 삶의 가장 큰 행복이다.
김분식 할머니의 동갑내기 실버바리스타 전복임 할머니(69)는 항상 맛있는 커피가게로 입소문이 난 탓에 손님들로 북적이지만 발길이 뜸한 시간이면 괜시리 몸도 마음도 울적해진다. “손님은 아무리 많아도 피곤한 줄 모르고 커피를 만든다”며 “커피를 만들다보면 가끔 예쁘게 못 담아낼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서로 웃어넘겨 힘들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실버바리스타라는 직업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당찬 실버들을 이끄는 것은 바로 자부심이다. 실버바리스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홍봉미 할머니(72)의 꿈은 오래오래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이 나이에 꿈이라는 단어를 쓰기 민망하지만,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커피를 맛보게 하는 게 내 마지막 꿈”이라고 한다.
9월 6일 실버 바리스타 필기시험이 실시됐다. 이날 10명의 어르신이 바리스타가 되기 위한 1차 관문을 거쳐, 한 달 후인 10월 4일 아리카페에서 실기 시험을 통해 정식 바리스타로 자격증을 교부받게 된다.
최연장자 실버바리스타 홍봉미 할머니는 앞으로 탄생할 후배바리스타들에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또 해낼 수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멋지게 배우라”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10월은 노인의 달이다. ‘인생은 60부터’라고 외치며 멋진 제2의 삶을 개척하는 어르신들의 당당함이 멋지다. 박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