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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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사자빈신 비구니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힌 다음 일을 시작하곤 한다. 그렇듯이 부처님께서는 감로법문을 열 때마다 삼매(三昧)에 들곤 하셨다. 부처님께서 삼매에 드시면 법문을 듣는 제자들은 저절로 심신의 안정을 얻고 마음의 문을 열어 설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을 설하시기 전에는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에, <화엄경>‘입법계품’을 설하시기 전에는 ‘사자빈신삼매(獅子頻伸三昧)’에 드셨다고 한다. 이 중 사자빈신삼매라는 뜻은 ‘사자가 기지개를 켜는 삼매’라는 뜻이다. 산하대지(山河大地)와 하나 되어 진리자체로 살아가시는 부처님께서 백수의 왕처럼 당당하고 걸림없는 삼매를 누리신다는 의미다.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사자빈신 비구니는 사자빈신삼매에 든 당당한 모습으로 53선지식을 찾아 구법여행 중인 선재동자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선지식으로 등장한다.
선재동자는 수나(輸那)라고 하는 나라의 가릉가(訶陵迦) 숲의 성에 이르러 사자빈신 비구니를 찾아갔다. 그녀가 승광왕(勝光王)이 보시한 일광(日光)동산에서 법을 설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동산을 찾아간 것이다.
그 동산에서 선재동자는 그녀가 모든 보배나무 아래 놓인 사자좌에 두루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낱낱 사자좌에 모인 대중도 같지 않고 말하는 법문도 각각 달랐다. 그녀는 그들의 욕망과 이해 정도가 서로 다른 차별에 따라서 법을 설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지 않게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계를 보고 또 불가사의한 법문을 듣고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게 된 선재동자가 합장하고 서서 보살도를 닦는 법을 가르쳐 주기를 청하자, 그녀는 이렇게 설했다.
“선남자여, 나는 온갖 지혜를 성취하는 해탈을 얻었다. 이 지혜의 광명은 잠깐 동안에 삼세(三世)의 모든 법의 장엄을 두루 나타나게 한다. 나는 이 지혜의 광명문에 들어가서 모든 법을 내는 삼매왕(三昧王)을 얻었고, 이 삼매로 인하여 뜻대로 태어나는 몸을 얻게 되어 시방 모든 세계의 도솔천궁에 있는 일생보처보살의 처소에 나아갈 수 있었다.”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모든 중생을 보아도 중생이라는 분별을 내지 않았으니, 지혜눈으로 보는 까닭이다. 모든 말을 들어도 말이라는 분별을 내지 않으니 마음에 집착이 없는 까닭이다. 모든 여래를 뵈어도 여래라는 분별을 내지 않으니 ‘법의 몸(法身)’에 대해서 통달한 까닭이다. 모든 법륜을 머물러 가지면서도 법륜이라는 분별을 내지 않으니 법의 성품을 깨달은 까닭이다. 한 생각에 모든 법을 두루 알면서도 모든 법이라는 분별을 내지 않으니 법이 환술과 같음을 아는 까닭이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온갖 지혜를 성취하는 해탈을 알 뿐이다.”
사자빈신 비구니가 다양한 중생들의 욕망과 이해력에도 불구하고 각기 알맞은 법을 설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일체의 분별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분별심이 없어야 한다(至道無難 唯嫌揀擇)”고 한 3조 승찬 대사의 <신심명> 법문과 다름이 없다. 선수행의 처음과 끝이 시비ㆍ분별하고 취사ㆍ선택하고 조작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데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살이를 하려면 분별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대상과 일을 또렷이 알아차리되 거기에 집착하거나 애증(愛憎)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수행의 요체다. 즉 승찬 대사가 설한 “미워하고 사랑하는 이 두 가지 마음만 없으면 무상대도(無上大道)는 툭트여 명백하다(但莫憎愛 洞然明白)”는 법문이 이것이다.
선수행의 핵심은 <신심명>의 첫구절 ‘지도무난 유혐간택’에 있음을 깊이 믿고 받아지녀야 한다. 중생과 부처, 번뇌와 보리, 생사와 열반, 차안과 피안 등등 일체의 대립ㆍ고정관념을 단박에 내려놓을 수 있다면 화두니, 묵조니, 위빠사나니 하는 말이 어디에 붙을 것인가.
김성우 기자
2008-09-09 오전 10: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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