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곡, 어째서 정상철가를 벗지 못합니까?
경봉, 절을 하고 묻게나
(향곡 스님이 절을 하자, 경봉 스님은 한 대 때렸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과 여러 선승들이 차담을 나누는 가운데 벌어진 선문답이다.
먼저, 향곡(香谷, 1912~1978) 스님이 물었다.
“어째서 정상철가(頂上鐵枷: 정수리 위의 쇠로 된 형틀)를 벗지 못합니까?”
“절을 하고 묻게나.”
향곡 스님이 절을 하자, 경봉 스님은 한 대 때렸다.
그러자 덩치 큰 향곡 스님도 경봉 스님을 한 대 치며 응수했다.
“그것은 죽은 사자입니다. 어떤 것이 정상철가입니까.”
“눈이 열리지 못하였군. 손으로 잡아서 밀고 끌어 앞에 놔 둘 테니 보거라.”
향곡 스님은 계속 같은 질문으로 맞섰다.
“어떤 것이 정상철가입니까?”
“그렇다면 손으로 잡아서 끌고 밀어 뒤에 둘 테니 보거라.”
“설봉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바람이 소슬하게 불고 물이 차디차게 흐른다.”
이번에는 경봉 스님이 향곡 스님에게 물었다.
“어째서 정상철가를 벗어 버리지 못하는가.”
“땅을 파고 들어가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차나 한 잔 하게. 석가여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동서남북!”
경봉 스님은 솔가지를 들어 보이며 다시 물었다.
“여기에 조사의 뜻이 있는가, 없는가?”
이에 향곡 스님은 침묵하였다.
향곡 스님은 1947년 어느 날, 문경 봉암사에서 도반 스님이,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 산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 비로소 죽은 사람을 볼 것이다’ 하는 법문의 뜻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몰록 화두일념삼매에 들었다가, 21일 만에 화두를 타파하고 오도송을 읊었다. 위의 문답은 3년 후 20년 연상인 경봉 스님을 만나 탁마하는 장면이다.
향곡 스님이 거량에 있어 공격 무기로 택한 ‘정상철가’란 <무문관>에 나온 말로써, ‘철가’란 철가무공(鐵枷無孔)의 준말로 구멍이 뚫리지 않은 철로 된 칼(형틀)을 말한다. 죄인은 구멍이 뚫린 칼을 쓰고 있는 법인데, 구멍이 뚫리지 않은 칼을 쓰고 있으니 사량 분별로 헤아릴 수 없는 화두인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을 받은 경봉 스님은 가볍게 받아넘긴다. “절을 하고 묻게나”라고 말하거나, 한 대 때리는 지혜작용이 ‘정상철가’ 화두에 대한 답 아닌 답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향곡 스님은 물러서지 않고, “설봉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라며 두 번째 펀치를 날린다. 여기서 ‘설봉 선사의 본래면목’을 묻는 질문은 모든 사람이 가진 불성을 상징한다. 경봉 스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참마음(眞心)은 ‘바람이 소슬하게 불고 물이 차디차게 흐르는’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과 다름없음을 암시한다.
이번에는 경봉 스님이 “석가여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고 역시 본래면목을 묻는 질문을 던지자, 향곡 스님은 “동서남북!”이라고 답한다. 솔가지를 들어 보이며 “여기에 조사의 뜻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에는 한참 동안 말이 없는 양구(良久)로써 답을 대신한다.
김성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