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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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제1장 구연(具緣)
二者如迦葉常受頭陀法 但畜糞掃三衣 不畜餘長
두 번째로 중근기가 두타수행을 하면서 입는 의복문제 등을 설명하고 있다.
가섭존자는 세존의 제자로 한문으로 번역하면 음광(飮光)이라고 한다. 그 빛이 일체광명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름을 음광이라고 한다.
출가이전에 그의 집안은 상당히 부자였다. 그러나 출가 후엔 두타(頭陀)수행을 했는데 그것을 번역하면 고행을 한다는 의미이다. 범어의 두타는 한문으로 두수( )라고 하는데 번뇌를 털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타수행법은 열두 가지가 있는데 의식주 세 종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음식과 관련해 두타수행을 하는 데는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는 걸식인데, 다른 사람에게서 음식을 구걸해서 먹고 스스로 음식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는 이유는 구걸을 행함으로써 아만을 조복받기 때문이다. 이는 불법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 때문에 스님을 걸사(乞士)라고 한다.
구걸을 하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밖으로 음식을 구걸하여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적으로 법식을 구걸하여 혜명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걸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걸식을 할 때에는 빈부를 가리지 말고 반드시 차례로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빈부를 가리면 평등심을 잃기 때문이다.
대가섭은 오로지 가난한 집만을 찾아서 걸식을 했는데 그 이유는 가난한 자가 보시를 행함으로써 복을 얻게 함 때문이었고, 수보리는 오로지 부귀한 집에서만 걸식을 했는데 부귀한 사람은 죄를 지어 쉽게 타락하기 때문에 일부러 부귀한 집에 가서 걸식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계속 복을 구해서 재앙을 면케 하려했기 때문이었다.
이 두 사람은 각자 분별심이 있었는데 수보리는 가난한 사람은 버리고 부귀한 사람을 좋아했다는 혐의가 있고, 가섭은 부귀한 사람은 버리고 가난한 사람만을 구제했다는 혐의가 있어 그 걸식이 차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마거사는 이 둘을 모두 꾸짖었다. 때문에 걸식은 반드시 빈부를 가리지 말고 차례대로 해야만 한다.
두 번째는 항상 거르지 말고 걸식법을 행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염부제 중생들은 용맹심이 쉽게 일어나 일정한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은 걸식을 하고 다음 날은 걸식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와 서로 일치하겠는가.
세 번째는 정오에 하루 한 번씩만 음식을 먹어야만 된다.
네 번째는 양식을 절약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본다면 한번 구걸해온 음식을 네 번 나누어서 먹기도 하고 또는 세 번 혹은 두 번 나누어 먹어야 만이 음식을 조절해서 먹는 것이 된다. 이것도 역시 두타행 가운데 하나이다. 배부르게 음식을 먹으면 욕심이 증가하기 쉽고 음식을 적게 먹으면 지혜가 쉽게 열린다.
다섯 번째는 오후에는 음료수도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시가 지난 이후에는 쌀밥이나 국수 등의 음식을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두유 등 모든 음료수까지도 마셔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두타행으로 머무는 처소도 역시 다섯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항상 앉아서 눕지 않아야만 한다. 즉 종일토록 결가부좌를 하고 단지 자신의 마음을 관찰할 뿐 육진경계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나무아래서 좌선을 해야 된다. 큰 나무아래는 바람이 불고 그늘이 지는데 시원한 곳에서 고요히 앉아 마음의 번뇌를 씻어야 만이 이익을 얻기가 매우 쉽다.
세 번째는 평편한 땅위에 앉아야만 된다. 밤이 깊고 인적이 고요할 때 전체가 드러나는 노지에서 앉아있으면 하늘에서는 달과 별이 빛나고 내 마음도 텅 비고 정신도 화기로워 수행하기에 좋다.
네 번째는 무덤사이에 앉아야 한다. 무덤사이는 죽은 사람의 처소이므로 가서 앉아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이미 죽었다면 난들 어찌 죽지 않겠는가. 이러한 마음으로 제법무상관을 닦아야만 한다.
다섯 번째는 고요한 처소를 찾아야 하는데, 고요한 처소는 바로 청정한 곳이다. 따라서 티끌세상과 서로 떨어져 있는 이곳이 머물면서 수행하는 적합한 처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타행을 하는데 있어서 의복에도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분소의(糞掃衣)인데, 이 분소의는 다른 사람이 버린 더러운 베를 주워서 깨끗이 일곱 차례 세탁을 하고 바늘로 꿰매서 옷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옷을 세 벌만 지녀야만 하는데, 이는 오조가사ㆍ칠조가사ㆍ이십오조가사를 말한다.
오조가사는 평상시에 입는 옷인데 다섯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칠조가사는 경전을 독송하거나 예배를 하거나 불사를 할 때에 착용한다. 이 가사는 일곱 조각으로 이루어진 옷이다. 이십오조 대가사는 범어로 승가리(僧伽黎)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조의(祖衣)라고도 하는데 법상에 올라 설법할 때에 착용한다. 이 조의는 스물다섯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가지의 의복은 잠시도 몸을 떠나서는 안 되며 그 나머지 의복은 절대로 축적해서는 안 된다. 가섭존자는 단지 이 세 가지 옷만을 축적하고 스스로 도를 이루었는데 이를 두고 두 번째 중근기인이 착용하는 옷이라고 한다.
인간세간에는 모두 생활이 있다. 그 생활내용은 의식주에 국한한다. 때문에 이 세 종류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의복과 음식이 없다면 생활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초연하게 물질욕을 벗어나 의복과 음식이 크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바라고 구하는 바가 없다. 그 때문에 의복과 음식을 구하려고 종일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비교를 한다면 그 경지가 아득히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출가한 비구ㆍ비구니와 재가인인 우바새ㆍ우바이는 마땅히 생사의 일이 크다는 것은 뼈아프게 깨닫고 이것을 모범으로 삼아 의식을 담박하게 한다면 도의 성취가 멀지 않을 것이다.
■중앙승가대 교수
cafe.buddhapia.com/community/song
2008-09-08 오후 2: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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