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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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허공을 노니는, 함허당
옛날에는 환인과 콧구멍을 쌓더니 昔與桓因築鼻空
오늘은 산승과 허공을 치네
今伴山僧解打空
쳐가고 쳐올 때 허공의 탄식
打去打來空自噫
‘휴’할 때마다 방에 가득한 바람 一噓噓出滿堂風

위의 선시 작가는 조선 초 무학(無學) 대사의 상족인 함허당(涵虛堂) 기화(己和)다. 일반적으로 함허 득통(得通)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함허는 당호이고 기화는 법명이며 득통은 호다.
그의 제자 야부가 쓴 행장에 의하면 세종 2년(1420) 가을, 오대산에 들어가 여러 암자에 들려 참배하고 영감암에서 나옹선사 영정에 공양을 드리면서 이틀 간 머물렀다. 하루 저녁 꿈에 한 신령스런 이인이 나타나 스님에게 말하기를, 그대 이름은 기화이고 호는 득통이라 말했다. 절을 하고 이름을 받고 꿈에서 깨어보니 몸이 가벼워 마치 허공에 노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월정사에 내려와 한 방에 머물며 평생을 받쳤다 한다.
함허당은 조선 초기의 배불하는 국시에 맞서 호불(護佛)하려는 염원에서 <현정론>,<유석질의론>을 저술하였고, 또 함허가 설의한<금강경오가해>는 제방에 오늘날 까지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수자들의 지침서다. 그러나 함허당의 간절한 불법의 참뜻을 이해시키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대의 대세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한 수의 게송으로 자기의 심정과 아울러 암울한 불교의 앞길을 한탄한다.
여기 저기 불사 헌다는 소식 듣고
聞說諸方壞佛廟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두 눈의 눈물
無端兩眼淚潛然
우리들 덕 없음이 부끄러울 뿐
但慙我輩都無德
감히 합장하고 정성껏 하늘에 고하네
合掌傾誠敢告天
<유감(有感)>이라는 제가 붙은 시다.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여러 측면에서 불교가 폄하되고, 절이 헐리는 상항을 맞는다. 그러나 이 울분을, 스스로 부덕의 소치로 돌려야 하는 현실을 부끄러이 여길 수밖에 없음을 노래한다.
앞 모두의 게송은 <부채>를 주제로 한 선시다. 1행과 2행에의 대구가 절묘하다. ‘전에는 하느님의 콧구멍을 막더니/오늘은 산승의 손에 들려 허공을 친다.’ 1행과 2행 사이에 상상되는 거리는 하늘과 땅만큼 현격하다. 그 만큼 우리를 현묘한 세계로 틈입시켜 많은 상상력을 주고 이미지를 파생케 한다. ‘하느님/부채’, ‘부채/허공’, ‘허공/산승’, 이 가운데 반 쯤 졸며 ‘끄덕이는 노승의 머리/힘없이 떨어뜨리는 부채’, 이쯤 되면 허공의 탄식이 아니라 노승마음의 딸꾹질이다. 이들이 인연이 되어 방안은 어느덧 바람으로 일렁인다.
이것은 바로 선시가 오랜 세월을 두고 발전시켜온 선시의 모순어법적인 표현이며 반상합도 된 세계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다. 중중무진화엄법계(重重無盡華嚴法界)로 정립되는 선시가 그리는 무한실상(無限實相)의 세계이니, 곧 ‘하느님=부채’, ‘부채=허공’, ‘허공=산승’, ‘끄덕이는 노승의 머리=힘없이 떨어뜨리는 부채’가 모두 반상합도 되어 한 빼어난 세계를 연출한다.
3행과 4행에서 “쳐가고 쳐올 때 허공의 탄식/‘휴’할 때마다 방에 가득한 바람”이 ‘어느덧 방안에 일렁이는 바람이 된다.’ 놀라운 세계다. 자성이 무자성의 세계, 곧 ‘하느님은 하느님이 아니므로 하느님이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일체의 성현이 상대의 세계를 뛰어난 무위의 절대법 가운데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一切賢聖 皆而無爲法 而有差別-<금강경>제7 ‘無得無說分’)”라고 설하신 바와 같이 일체만물이 스스로 고유의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비로소 그 이름을 갖게 된다. <금강경> 도처에 “이른바 불법이란 불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불법입니다(所謂 佛法者 卽非佛法 是名佛法 -<금강경>제8 ‘依法出生分’)”라고 표현하고 있다.
2008-09-08 오후 1: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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