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씨의 딸들은 둘 다 대학생이다. 어느 날 퇴근하여 집에 들어온 P씨는 깜짝 놀랐다. 딸 둘이 거실 밖 베란다에 앉아서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P씨를 보더니 거실로 들어오며 “아빠, 다녀오셨어요?”하고 인사하였다. P씨는 놀라서 “아니, 너희들 방금 담배 피웠니?”하고 물었다.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네”하고 대답하였다. “뭐야? 아니, 젊은 애들이, 그것도 여자가 무슨 담배야?” “왜요, 아빠도 피우시잖아요! 아빠는 집 안 아무데서나 피우시지만 저희는 베란다에 나가서 피우는걸요.” 당당한 딸들의 대답에 P씨는 어이가 없었다.
방에 들어와 아내를 나무랐다. “당신 도대체 애들이 담배 피는 걸 놔두고 어떻게 된 거야!” 아내는 “글쎄, 처음에 뭐라 했더니 아빠도 하시는데 왜 안 되느냐는 거예요. 사실 당신이 보통 골초인가요. 솔직히 온 집안이 담배냄새에 절어 있는데.” “아니 내가 담배 피운다고 자기들도 핀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아내는 자기 힘으로는 딸들을 못 당한다며 P씨에게 말려보라고 했다. 아침에 딸들에게 “너희들 담배가 얼마나 건강에 나쁜지 아니?” “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조금밖에 피우지 않아요”하면서 아빠는 평생 담배를 피워왔는데 자기들은 잠시 해보는 정도를 가지고 왜 못하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마침내 P씨는 “좋다! 그럼 내가 담배를 끊는다면 너희도 그만 둘 거냐?”하고 말해버렸다. 딸들은 놀라면서 잠시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글쎄요, 만일 아빠가 안 피신다면 저희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더니 “하지만 설마 그러실 리가요. 아빤 담배 없인 못사시면서” 하였다. 사실 그랬다. P씨는 18세 때부터 담배를 피워 40년이 되어간다. 하루 두 갑, 완전 중독이었다. 아무리 건강에 해롭다 해도 단 한 번도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오직 딸들 때문이다. 그날 P씨는 단단히 맹세를 하였다. “앞으로 아빠는 완전히 담배를 끊을 것이다! 한번이라도 어기면 그 때는 너희가 어떻게 하든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하였다. 딸들도 절대로 안 피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빠가 다시 피우시면 자기들도 피우겠다는 것이다. 아내는 놀라서 “당신 정말 할 수 있어요?” 한다. 평생 애연가인 P씨,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다.
그 날부터 그는 담배를 끊었다. 며칠이 지나자 “아빠, 혹시 낮에 몰래 피우시는 건 아니시죠?” 한다. “무슨 소리야! 아빠의 명예와 양심을 걸고 깨끗해.” 정말이었다. 힘들다가도 딸들 얼굴만 생각하면 질색하게 되었다. 내가 피면, 얘들도 핀다, 안 돼! 앞으로 시집도 가고 아이도 낳아야할 텐데, 임신 중 흡연이 얼마나 위험한데, 절대 안 될 말이었다.
금연 몇 개월이 넘었다. 아내는 집안에서 담배 냄새가 가셨다고 좋아한다. 제사가 있어 친척들이 모인 적이 있었다. 담배를 끊었다고 하니 아무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만큼 소문난 골초였었다. 형은 웃으며 “이제 환갑 바라보는 나이에 벌써 죽을 때가 되어 가는가? 나 원 참,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더니 네가 담배 안 핀다는 것만은 못 믿겠다”고 할 정도였다. 딸들은 힘차게 “저희가 증인이에요!”하며 미소 지었다. P씨는 ‘아유, 저 애물단지들, 쟤들 때문에 내가….’
“이제 1년이 넘었어요. 금단 현상이고 뭐고 전 몰라요. 어떡합니까. 내 새끼들하고 한 약속인데요.” 사실 전에는 폐암 유발 등 담배가 해악인 줄 알면서도 도저히 끊질 못했었다면서 오히려 딸들에게 고맙다고 한다. 그가 자신만을 생각했다면 과연 해낼 수 있었을까. 딸들에 대해 지극하게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힘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남을 위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된다”라는 법어가 떠오른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