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조건형성이든 조작적 조건형성이든 조건형성 실험에서는 유기체가 학습할 반응을 직접 수행함으로써 배우게 된다. 개가 먹이를 보고 침을 흘리지 않으면 종소리에 대해 침 흘리는 반응이 학습될 수 없으며, 비둘기가 탁구공을 굴리지 않으면 먹이가 주어지지 않으므로 탁구치기가 학습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모든 행동을 실제 수행을 통해 학습해야 한다면 커다란 문제가 생긴다. 다행히 인간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훨씬 더 빨리 학습한다. 즉 무시행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관찰학습, 또는 대리학습이라고 한다.
관찰학습을 주장한 반두라(Bandura, 1962)는 인간이 사회적 환경 속에서 모방을 통하여 많은 것을 학습함을 강조하였다. 이는 인지적인 면이 포함된 것으로,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만 관심을 쏟던 학습이론이 반두라의 주장을 통해 내적인 인지 변인을 포함하게 되었다.
인간은 관찰을 통해서 새로운 행동을 시도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지를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강화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대리적 강화라고 한다. 대리적 강화 역시 하나의 인지 과정이다.
관찰학습의 수행과 획득에는 다음과 같은 구성 요소가 있다. 모델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주의과정’, 모델의 행동을 상징적인 형태로 기억하는 ‘파지과정’, 행동을 정확하게 재생하는 ‘운동재생과정’, 모델의 행동을 관찰한 뒤 수행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되는 ‘강화와 동기적 과정’, 외적인 보상이나 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자기에게 보상과 벌을 주는 ‘자기강화’, 그리고 인지과정을 통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적 통제’ 등이다.
반두라는 학습에서 관찰과 모방의 역할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하였다. 어린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어른들이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영화를, 다른 그룹에는 비공격적으로 행동하는 영화를 보여 주었다. 이후 두 그룹의 어린이들을 같은 방에서 놀게 하자 공격적인 모델을 본 어린이들이 다른 그룹 아이들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행동을 했다.
불경에도 관찰학습의 예가 있다. 부처님의 위의감화(威儀感化)가 그것이다. <아함경>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고 계셨다. 그때에 어떤 비구는 마음을 한곳에 두지 못함으로써 마음이 미혹하고 어지러워 모든 감관을 휘잡지 못하였다. 그때 멀리서 걸식하는 세존을 뵈옵고는 모든 감관을 휘잡고 단정히 보면서 걸어갔다.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찰학습의 모델링이 된 것이다.
행동주의는 관찰학습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강화, 인지적 통제 등 인지과정과 내적인 의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그 의지에 따른 행동, 그리고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불교와 조금 가까워진 것이다. 하지만 관찰학습도 ‘학습되는’ 경향이 더 많다. 반면에 불교는 인간의 의지로 좋은 행동은 본받고 나쁜 행동을 멀리 하여 선업을 쌓으라고 가르친다. 즉 선한 행동을 ‘학습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