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 종합 > 기사보기
<13> 제1장 구연(具緣)
九者常念十方諸佛
아홉 번째로는 항상 시방제불을 생각해야만 된다. 그 방법으로는 염불이 바로 성불할 수 있는 길이다. 이와는 반대로 부처의 모습을 생각하면 바로 부처가 되고 중생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바로 중생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미 불자가 되었으므로 반드시 부처님의 행동을 배워야만 한다. 따라서 염불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방제불은 한량이 없고 그에 따른 명호도 역시 무량하다. 그 가운데서 간략함을 취하여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서방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만한 것이 없다. 이는 “시방삼세 모든 부처님가운데 아미타부처님이 제일이다”고 한 경우에 해당된다.
중생이 아미타불 명호를 지니고 염불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방제불의 명호를 일시에 염불하는 공덕과 같다. 따라서 아미타불 염불하는 한 마디의 소리는 팔십 억겁동안 받을 무거운 생사 죄업을 소멸할 수 있으며 일체죄업의 장애까지도 참회할 수 있다.
十者觀罪性無生
열 번째로는 죄의 성질은 본래 무생이라는 것을 관찰해야 된다. 여기에서 관이라 하는 것은 지은 죄업이 모두 자신의 분별심을 따라 일어나는 것임을 관찰한다는 의미이다. 이미 모든 죄업이 자신의 분별심을 따라 일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 마음으로 참회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험 삼아 죄업의 모습이 어디로부터 일어났는가를 관찰한다면 그 죄업이 일어난 실체적 모습은 끝내 얻지를 못한다. 그 죄업은 독자적으로 일어나지도 않았으며, 상대방을 의지해서 일어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신과 타인이 공동으로 합작하여 일어나지도 않았고, 더욱이 아무런 원인 없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 네 가지 성질에서 추구해보았더니 그 죄업의 당체는 본래 일어난 곳이 없다. 이를 두고 죄업의 성질은 본래 공적하다고 말을 한다.
옛날에 사조 도신 대사가 삼조 승찬 대사의 처소에 당도하여 애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기를 간구했더니 삼조대사는 말하였다.
“네가 지은 죄업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참회를 시켜주리라”고 하였더니 사조대사가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관찰해보았으나 죄업의 모습을 끝내 찾지 못하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죄의 모습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얻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삼조대사는 말하였다.
“나는 너에게 이미 참회를 끝냈느니라.”
이것이 대승 이참(理懺)에 해당되고 앞에서 열거한 아홉 종류의 참회법은 모두가 사참(事懺)이다. 그러므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이참법이야말로 그 공덕이 가장 광대하다는 점이다.
일체죄악의 성질을 관찰해보았더니 그 당체가 본래 일어난 곳이 없다. 따라서 망상심이 소멸하면 죄업도 따라서 공적해진다. 이를 두고 진실한 참회라고 한다. 그러나 또 하나 반드시 알아야할 점은 사참은 이참을 동시에 구비해야만 하고 이참도 사참을 의지해서 이(理)와 사(事)가 원융해야만 진실한 참회라는 것이다.

若能成就如此十法 莊嚴道場 洗浣淸淨 著淨潔衣 燒香散花於三寶前 如法修行一七 三七日 或一月 三月 乃至經年 專心懺悔所犯重罪 取滅方止
참회법을 수행하는 시간과 방법을 말하고 있다. 설사 위에서 열거한 열 가지 종류의 참회하는 방법을 빠짐없이 갖췄다 할지라도 참회하는 도량을 장엄하게 꾸며야 한다. 그리고는 내적으로 몸을 깨끗이 목욕을 하고 외적으로는 의복을 청결하게 세탁해야만 한다.
청정한 몸에 깨끗한 의복을 입은 뒤에 참회당으로 들어가 최상으로 오묘하고 좋은 향인 침수향이나 전단향, 말향 등 모든 향들을 사르어야 한다. 아울러 모든 미묘한 보배 꽃으로 공양을 올리고 삼보전에서 십종 참회법을 의지하여 정성껏 예배하고 애절한 마음으로 참회를 해야 한다.
이를 의지해 여법하게 수행을 해야 하는데 칠일을 해도 이익을 얻지 못하면 사십구일을 해야 되며 그래도 이익을 얻지 못하면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다섯 달 내지는 일 년이 지나도록 전일한 마음으로 종전에 범했던 무거운 죄업을 참회해야 하는데 시간의 많고 적음을 논하지 말고 오직 죄업을 소멸한 후에 참회의식을 그쳐야 한다.

云何知重罪滅相 若行者如是至心懺悔時 自覺身心輕利 得好瑞夢 或復睹諸靈瑞異相 或覺善心開發 或者於坐中 覺身如雲如影 因是漸證得諸禪境界 或復豁解悟心生 善識法相 隨所聞經卽知義趣 因是法喜 心無優悔 如是等種種因緣 當知卽是破戒障道罪滅之相
여기에서는 죄업을 소멸하는 모습을 밝히고 있는데 여법하게 참회할 수 있다면 무거운 죄업도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의 무거운 죄업을 소멸시키는 모습을 알 수 있는가.
가령 수행자가 이와 같이 지극 정성으로 참회할 때에 스스로 자기의 몸과 마음에서 편안하고 경쾌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며 야간에 상서로운 좋은 꿈을 꾸기도 한다. 꿈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방광을 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며 혹은 부처님이 찾아와 정수리를 어루만져주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혹은 모든 신령하고 상서롭고 특이한 모습을 보기도 하며 꿈을 깨고 나서도 직접 스스로 보기도 하는데 그 예를 든다면 모든 부처님이 광명을 발현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며 혹은 여래삼십이상 팔십종호와 기타 갖가지 기이하고 미묘하고 수승한 모습을 보기도 한다.
혹은 선심이 개발되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혹은 좌선 중에 자기의 몸이 구름과 같고 그림자와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 경지는 욕계선정(欲界定)에 해당된다.
혹은 다시 활연하게 해오심(解悟心)이 일어나 모든 법의 명칭과 모습을 훌륭하게 알아 툭 트이게 관통하기도 하며 해오심이 일어나면 수행자가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해 용맹하게 참회정진을 하여 더 이상 참회할 것이 없을 때까지의 경지에 이르면 몸과 마음이 하루아침에 일체를 분명하게 깨닫는다. 이때에 이르면 세간ㆍ출세간의 일체 모든 법상을 훌륭하게 알아차리는데 그것은 마치 손안에 쥐고 있는 과일을 알듯 환하게 알 수 있다.
이 경지를 두고 고인은 말하기를 “물이 다하고 산이 끝나는 곳에 당도해서 머리를 돌이켜보았더니 좋은 풍광이 보이더라”라고 했던 경우가 바로 이 의미에 해당된다. 동시에 일종의 수승하고 오묘한 견해가 일어나 일체 불경을 듣는 대로 매우 심오하고 미묘한 이치와 그 귀결점까지도 명료하게 깨닫는데 이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열을 들으면 백가지를 안다고 한 경우와 같다.
이로 인해 법열이 충만한데 이미 법열이 충만하면 자기 마음에 근심과 후회가 없어진다. 과거에 자기 몸에 있던 죄업의 장애 때문에 마음속으로 우려하고 회한했던 일들이 갖가지 참회인연으로 해서 바로 이와 같은 등등의 뛰어난 경계가 나타난다.
마땅히 알아야 될 것은 이와 같이 참회하는 일이 바로 죄업의 장애를 소멸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이다.
■중앙승가대 교수
cafe.buddhapia.com/community/song
2008-09-08 오후 12:04:28
 
 
   
   
2024. 5.1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