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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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징자 (칼럼니스트)
절약정신과 세금인하
에너지 원료의 중심축인 석유류 값이 장기적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 석유자원은 한정돼있고, 그럼에도 세계경제는 호황으로 치달아 세계적으로 흥청망청 분위기가 역력하니 값이 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계 3위의 유류 수입국에 원유소비량 세계 7위국인 한국. 거기에 추운 겨울이 눈앞에 있다. 상식적으로도 누구나 알고 있을 이런 당연한 일에 대비도 없었던지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걱정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온다.
석유가 어디 난방이나 운송 연료로만 쓰이는 것인가? 나일론 폴리에스텔 등 섬유는 물론 플라스틱 등 수많은 석유화학 제품은 이제 생활필수품이다. 기름값과 함께 당장은 아니더라도 2, 3년 안으로 값이 오를 터인데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자원고갈이란 측면을 들여다보면 밀림의 감소, 물 부족 등 유류에 버금가는 수많은 문제가 심각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는 과소비의 결과이며, 대책은 단 하나. 욕망을 줄이고 절제 절약 하는 길뿐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 속에 여론은 절제, 절약 보다 ‘유류 세를 내려야한다’는 첫 반응을 보인다. ‘아껴 쓰겠다’는 의욕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절제 절약, 말은 참 쉽다. 문제점이 노출될 때마다 쉽게 등장하는 구호 아닌가. 하지만 욕망의 절제와 절약습관이 어디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인가. 일생을 ‘소비가 미덕’이란 꼬드김을 받으며 살아온 현대인의 훈습된 그 소비습관에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된 현실이다. 현대는 옛날의 ‘귀한 말씀들’이 이처럼 상업적으로 패러디되는 시대다. 전래되어온 금언이나 미덕은 그의 실천이 아주 어려움에도 쉬운 것처럼 말해진다. 정말 마음만 먹으면 절제가 쉽게 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지름신’이 횡행하는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금언들은 이런 패러디들로 비틀린다.
욕망의 절제를 위한 현대적 자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세기에 “과소비가 유한자원을 고갈시키므로 정기적으로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정해 지키자”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 캐나다 등지에서 탄생하기도 했고, 한국에도 ‘아껴 쓰자’는 아나바다 운동 등이 일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위기에 대한 자각이 모자라는 것인지 결과적으로 한국은 서구에 비해 이런 운동의 지속성이 약하다. 누군가 ‘욕망의 유혹에 대한 적당한 대응은 여럿 있지만 제일 확실한 방법은 겁쟁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겁쟁이로 살면 도덕적 평가를 받을 수도 있으며 겁(怯)은 생명보존의 방어 장비이므로 부정부패 퇴폐 낭비의 유혹 등에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해 준다. 어쩌면 여러 종교들이 제시해온 지옥도가 이런 ‘겁쟁이 만들기’ 방편은 아니었을까?
환경위기를 약간 과장해서 보여주는 영화 같은 것도 이런 범주에 들 것이다. 하지만 순진하지 않은 현대인들은 쉽게 겁쟁이가 되지도 않는다.
절제 절약을 위한 자상한 세칙까지 만들어 캠페인을 벌인 적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지난 캠페인들이 흐지부지되고만 실적에서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한다. 절제 절약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게’ 체화(體化)시켜야 하는 것이다.
욕망의 절제라는 문제에서 시대를 통틀어 연기법의 체득과 그 체득을 위한 수행으로서의 두타행만큼 분명하고 확실한 해법은 없다. 불자들은 정말 부처님의 좋은 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 유산을 스스로 체화시키고 그 ‘저절로의 경지’를 이웃에,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저절로’의 새로운 씨앗을 위기의 지구에 심는 일을 벌여볼 수는 없을까.
2008-09-08 오전 10: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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