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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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장 구연(具緣)
第三得閑居靜處 閒者 不作衆事 名之爲閒 無 요 故 名之爲靜 有三處可修禪定
이상으로 다섯 가지 인연을 갖추는 가운데 의복과 음식에 대한 문제는 이미 끝났으므로 이제는 고요히 안주하는 처소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고요히 안주하는 처소는 물가나 숲 아래 또는 산 바위나 석굴 등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홀로 공부를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경계가 고요하면 마음도 쉽게 공적해지기 때문이다. 한가하다 하는 것은 청정함을 말하는데 이는 세간의 일체 유위법과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시끄러움이 없다 하는 것은 일체 번뇌를 멀리 떠남을 말하며 이러한 조건하에서 좌선을 닦는 것을 고요하고 안정된 처소라고 말한다.
이 문제도 요약하면 세 종류의 처소에서 선정을 닦을 수 있다.

一者深山絶人之處
마음이 한결같아서 혼란하지 않는 상태를 선정이라고 한다. 가령 몸이 심산유곡에 앉아있다 해도 마음이 원숭이나 말처럼 날뛴다면 세속과 다를 바가 없다.
수행하는 사람이 반드시 공적하고 한가한 처소를 찾는 이유는 처음 발심한 사람은 시끄러운 환경을 떠나야 만이 이익을 쉽게 얻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깊은 숲, 높은 산중에 멀리 떨어져 거처하면서 의복과 음식을 사람들에게서 직접 구하지 않아야 하고 또한 시끄러움도 없어야 한다.
이는 인간세상과 단절해야만 육근이 육진과 마주했을 때 집착심을 일으키지 않고 도와 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설산에서 고행했던 것도 바로 인간세상과 단절한 경우였는데, 이것을 최상근인이 고요한 처소에 한가롭게 거처하는 것이라고 한다.
二者 頭陀蘭若之處 離於聚落極近三四里 此則 放牧聲絶 無諸 요
두 번째는 두타행을 수행하는 고요한 처소인데, 두타행에는 열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은 이미 설명했던 바와 같다.
청정하고 한가한 처소는 촌락마을과 떨어져 있는 곳이며, 마을과 가장 가깝다 해도 삼리 사리 혹은 십리 이 십리 간격으로 떨어져야만 한다. 이런 곳이어야만 짐승을 방목하는 소리가 단절되고 방목하는 사람까지도 찾아오기가 힘들다. 목동이나 땔나무꾼이 찾아오지 않고 닭 우는 소리, 개짓는 소리까지도 멀리 단절해야만 한다. 그 때문에 “모든 심란하고 시끄러움이 없다”라고 말하였다. 이를 중근인이 한가롭게 거처하는 고요한 처소라고 말한다.
그 옛날 부처님이 세간에 계실 때 다섯 비구가 산에서 수행하면서 공양할 때가 되면 마을로 내려가 탁발을 하고 교화를 하였는데, 마을까지 오고가는 거리가 무려 백리나 되었기 때문에 수행을 못한 채 하루종일 길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와 같이 십 여년 수행을 했는데도 공부에 털 끌만큼도 진보가 없자 다섯 비구는 크게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세존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한 수도인을 교화해서 그들에게 공양을 공급하게 해주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심히 행하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마을과의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시간은 한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야 어느 세월에 공부를 성취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마을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처소를 선택해서 머물러야만 공부를 할 수가 있고 이익이 없는 헛된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三者 遠白衣住處 淸淨伽藍中 皆名閒居靜處
세 번째로는 총림사원 가운데 안주하면서 종일토록 대중과 함께 생활한다면 도를 얻기가 매우 쉽다. 그러나 이때 주의할 점은 일반신도를 멀리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스님 대중이 입는 옷은 먹물 옷이므로 세속인의 의복과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정한 가람은 대중이 화합하여 모여 사는 곳이다. 그 때문에 청정한 가람을 모두 한가하고 고요한 처소라고 한다.
여의주를 찾으려면 파랑이 고요해야만 하고 물이 맑아야만 나타난다는 것이 일정한 이치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종일 번뇌 경계의 바람에 마음이 요동을 치면서 내 자성 청정한 실상 보배 여의주를 구하려 한다면 여의주는 구할 수 없을 것이다.

第四息諸緣務有四意
다섯 인연 가운데 세 가지 인연에 대한 설명은 모두 끝났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지고 나면 네 번째로 세속 일을 반드시 물리쳐야만 도업으로 진수할 수 있다. 가령 몸은 띠집 암자에 머문다 해도 집안일을 하고 있다면 고요한 처소가 분주하고 바쁘기만 하기 때문에 비록 처소는 고요하다 할지라도 고요한 실제내용이 없으므로 역시 도에 이익이 없다.
세속적인 생활에 핍박받거나 또는 세간 사무에 얽매인다면 산속의 고요한 처소에 있다 할지라도 인간세상과 다를 바 없지만 모든 잡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시끄러운 세속에 있다 할지라도 고요한 산속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을 쉬는 데는 네 가지 의미가 있다.

一息治生緣務 不作有爲事業
세간에서는 사농공상 등을 모두 살아가기 위한 생업이라고 하는데, 그 모두는 유위사업에 소속된다. 지관을 수행하는 자라면 유위사업을 멀리 여의고 아울러 세간적인 생산업도 쉬어야만 한다.

二息人間緣務 不追尋俗人朋友親戚知識 斷絶人事往還
앞에 했던 말은 자신을 상대해서 한 말이고 여기에서는 상대방에 대해서 논하는 말이다.
“추구하지 않는다 함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친구들과 교제하고 친척과 왕래하는 것은 본래 세간법이다. 때문에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행해야만 한다. 인간의 이익이란 본래 공하고 생사의 일이 크다는 것을 명료하게 통달하여 서로 교제를 맺고 왕래를 한다는 것은 그 모두가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라는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때문에 반드시 세속과의 교제를 단절해야만 한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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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6 오전 7: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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