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종합 > 기사보기
<45> 목숨을 구한 자비의 종소리
김씨는 연말만 되면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몇 년 전 그날이 떠올라서이다. 김씨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매우 가난하게 지내왔다.
그러다가 서른이 넘어 어느 음식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여성과 마음이 맞게 되었다. 그녀는 자상하게 마음을 써 주어 부모 사랑을 모르던 김씨는 푹 빠져들었다. 그녀는 “돈이 없으면 어때요. 당신만 있으면 되지요”하면서 김씨를 정말 사랑한다고 하였다. 곧 그녀와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위해주는 여성에게 최소한 전세방에서 신혼살림을 하게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다 보니 외국에 가서 노동일을 하면 꽤 돈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나타났다. 고되고 힘든 일이라고 했다. 1년만 하기로 했다. 현재까지 모은 돈에 외국 가서 벌게 될 돈을 합치면 대충 전세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도 처음엔 반대하더니 “그래요, 곧 애기도 가져야 할 텐데 우리 애는 전세에서 키워야지요”하며 찬성하였다.

그렇게 김씨는 외국에 갔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죽어라고 일했다. 유일한 낙은 한국의 약혼녀와 편지하는 일이었다. 전화는 비싸서 거의 못 했다. 안 쓰고 안 입고 월급 전부를 꼬박꼬박 그녀에게 보냈다. 그녀와 찍은 사진을 보면서 고된 일과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었다. 마침내 11개월째가 되자 그녀는 전세를 한 칸 마련하게 되었다고 했다. 김씨는 날아갈 듯 기뻤다. 다음 달이면 귀국이다! 연말엔 결혼해야지 하고 생각하니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공항에 마중 나온다던 그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기다리다 지쳐 휴대전화를 걸자 없는 번호였다. 너무 놀라 편지했던 주소로 찾아갔다. “바로 2주 전에 이사갔어요. 그런데 그 사귀던 남자가 같이 와서 짐 정리해 주던데.” 김씨는 귀를 의심했다. “네에? 남자라니요?” “아, 몇 달 전부터 만나던 걸요. 곧 결혼할 사이라던가?” 은행에 가서 자기 계좌를 알아보니 그녀가 자신이 맡겼던 통장과 도장으로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찾아간 것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수소문해서 한 달 만에 있는 곳을 알아냈다.
약혼녀는 어떤 남자와 도망가 시골에서 전세를 얻어 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김씨가 피땀으로 벌어 보내준 돈으로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린 것이었다. 김씨는 배신감과 분노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속일 수가 있느냐. 어떻게 번 돈인데 전부 가로채서. 너희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죽이려고 칼을 준비했다.
집을 미리 확인해 두고 근처 여관에 가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새벽에 곤하게 잘 때 몰래 들어가려고 결정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지난 일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온 몸이 떨렸다. 두 사람에게 복수하고 자기도 죽을 생각이었다. 이렇게 외롭고 힘든 세상, 더 살고 싶지가 않았다. “12월엔 결혼하려고 했었는데. 대신 장례를 치르게 되는군”하고 생각하니 너무나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새벽 세시가 되어 길을 나섰다. 차가운 바람이 몰려오는 거리는 적막에 잠겨 있었다. 그 때였다. “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소리였다. 살기로 가득 찼던 김씨는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뎅~뎅~” 종소리는 계속되었다. 저 멀리 산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새벽에?” 그제야 그 곳이 절이 많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종소리는 계속되더니 점점 더 커지는 것이었다. 마침내 김씨는 두 귀에서 터질 듯이 울리는 종소리에 그만 발이 얼어붙고 말았다.
자기도 모르게 방향을 바꿨다. 종소리를 좇아 절을 향해 가고 있었다. 종소리가 나는 법당에 가서 문을 열었다. 새벽 예불하시는 스님을 보자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 날로 부처님께 귀의했어요. 용서요? 모든 게 인과응보란 걸 알게 됐지요. 그런데 그날 밤, 정말 뭐에 홀렸던 건지 어떻게 절로 가게 되느냐 말입니다. 그 때의 종소리가 아니었으면 지금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
그 종소리는 김씨를 살리려고 그의 마음에 나투신 관세음보살의 간절한 부르심이 아닐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비의 소리에 응했던 것이다. 내 한마음 그대로 관세음이시니 내 한마음에 귀의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09-05 오후 7:46:38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