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마른 지혜’ 벗어나자
지난해 12월 19일 선거 결과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는 진보를 표방하는 정권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 일을 살펴보면, 자신이 내건 이념과 사뭇 어긋난 일이 적지 않았다.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한 것도 그렇고, 농민들의 성난 반대를 무릅쓰고 에프티에이(FTA)를 강행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물론 국익을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했겠지만, 그런 일이야 보수적인 정권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집권기간 동안 집값은 더 뛰었으며, 비정규직의 문제가 사회전체의 이슈가 되었다. 청년실업이 백만을 넘어섰고,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 지난 10년간 진보적인 이념을 내세운 정권이 도리어 신자유주의를 충실히 따랐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당선자는 서울시장으로 일할 때, 청계천을 복원했으며, 버스광역제를 시행했다. 그 결과 청계천은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서민들이 큰 돈 들이지 않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원이 되었고, 광역탑승제는 서민들의 교통비를 획기적으로 줄여 주었다. 이명박씨를 옹호하려는 것은 이 글의 뜻이 아니다. 이번 선거결과를 보면서 이념과 실제 결과가 서로 다른 그 동안의 모순을 국민이 심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론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과가 달리 나타난다면, 자신을 겸허하게 반성하는 일이 앞서야 할 것이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크릭(Willow Creek)교회는 2006년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50개 교회 중 1위를 차지한 교회이다. 교회성장을 꿈꾸는 전 세계 개신교 지도자들이 이 교회를 방문하고 있다. 최근 이 교회는 지난 32년 동안 자신들이 행한 목회활동의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결과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 동안의 사목활동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한 것이다. 수많은 영성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교회의 환경을 개선하여 신도들의 수가 획기적으로 늘었지만, 정작 교회 신도들의 의식을 조사해본 결과 진정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밖에서는 최고의 교회라고 세상이 평가해주었지만, 참다운 신앙과 거리가 먼 신도들의 실상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이념과 현실의 괴리를 발견하고 그 모순을 스스로 인정할 줄 아는 이 교회의 지성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우리 불자들도 이런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절이 크고 신도가 많다고 해서 포교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사실 지와 행이 일치하는 삶은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이 예로부터 한 결 같이 강조해온 가르침이다. 특히 행이 없는 앎을 마른 지혜라고 경계했다. 법을 전할 때도 바른 안목과 행실을 으뜸으로 여겼다. 사홍서원의 첫 번째는 중생을 끝없이 제도하는 것이지만, 두 번째는 자신의 욕망과 집착 끊기를 다짐하는 서원이다. 이런 훌륭한 가르침 속에 살면서도 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 불자로서 부끄러운 점이 많다. 수행이나 봉사가 자기만족에 그치는 때가 많고, 때로는 인연이 없다는 구실로 좌절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 속에는 나와 남을 둘로 보는 어두운 인식이 숨어있다.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 남과 북 어디에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탈북자들이 힘들게 살고 있는가 하면, 금년에 길에서 얼어 죽은 노숙자가 300여명이나 된다. 노인들이나 학생들의 자살이 해마다 늘고 있다. 새해에도 우리 단체가 이들을 위해 마음 나누는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바란다. 우리가 하는 일이 비록 작지만,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마음속에 자비와 신뢰의 등불이 이어지길 바란다. 아울러 이를 통해 앎과 삶을 함께 되돌아보는 지성이 우리 수행의 한 축이 되기를 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