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에 서 있다. 끝이라는 말에는 새로운 시작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시작도 끝도 없다(無始無終)는 불교적 시각에서 보면 한 해가 끝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그저 인간이 규정해 둔 시간의 분절체가 새로운 이름을 갖는 것일 뿐. 그러나 유상(有相)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해가 가고 또 새로운 해가 온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준다.
2007년 한 해 동안 불교계는 정말 분주했다. 온 나라를 들었다 놓은 신정아 사건이 조계종립 동국대학에서 비롯되었고 그 덕분에 동국대학의 인사채용 시스템이나 각종 검증 시스템이 사회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거기 개입된 스님들의 권력싸움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스님들의 권력싸움은 제주 관음사의 주지인사로 인한 대치 국면과 마곡사 주지의 비행으로 극에 달하기도 했다. 일반 국민들은 “그게 정말 불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냐?” “요즘 스님들은 정말 그러하냐?”며 불교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그런 가운데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기리며 자정과 성찰의 다짐도 있었다. 비록 그 다짐이 성실하게 비쳐지진 않았지만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국민의 눈초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깨우치고 새로운 승가상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값진 것이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불교계의 행보도 분주하고 어수선 했다. 그러나 불교계는 대선 구도에서 크게 중심을 잃지 않았다. 일부 단체가 ‘줄대기’ 행보를 보여주긴 했지만 불자후보가 없는 가운데 치러진 대선에서 불교계는 대체로 제자리 지키기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 해를 돌아보면 보람된 일보다 아쉬운 것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야 발전도 있을 것이다. 불교계의 2007년 한 해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잃은 것이 많은가를 따져 봐야 한다. 탐욕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 탐욕이다. 그 탐욕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정진하는 집단이 불교계라고 본다면 자못 숙연한 마음으로 현실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불교계가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몇몇 스님의 이름이 모든 뉴스를 도배하는 상황은 분명 헛된 탐욕의 끈을 끊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무시한데 따른 과보였다. 몇 사람의 원인 제공으로 인해 전체의 불자들이 과보를 받는 일은 참으로 황망했다. 한 사람의 학력위조에 줄줄이 엮여 있던 탐욕의 사슬들이 드러나는 동안 참불자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받은 상처는 오죽했겠는가?
이제 조용히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들끓는 욕망을 억제할 이성의 힘을 기르기 위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시간은 흐르는 물이어서 가벼운 것은 둥둥 띄워서 데려가고 무거운 것은 바닥에 가라앉히고 지나간다. 2007년이라는 시간에 떠 있는 것과 가라앉은 모든 것을 조용히 응시하며 탐욕으로 빚어진 악한 인연들을 하나하나 성찰하고 선한 인연의 고리로 환치하는 지혜를 길러보자. 그래야 행복이라는 이름의 내일이 올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