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명박 당선자는 대선개표가 진행 중이던 12월 19일 밤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발표한 담화에서 “매우 겸손한 자세로, 매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국립현충원을 찾은 이명박 당선자는 방명록에 “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 마음이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이명박 당선자가 품은 초발심(初發心)이다.
사실 이명박 당선자가 2위보다 530여만 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 5년간 노무현 대통령의 오만과 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명박 당선자는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의 지지를 잃고 고립되었던 이유는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국민의 여망에 역행하는 일들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21세기 세계질서는 탈냉전의 과정을 거쳐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실리보다는 이념에 집착하였다. 역사 바로 세우기나 과거사 청산이라는 생산성 없는 각종 진상규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잊고 살던 아픈 기억들만 다시 상기시켜주는 역할만 하였다. 세계의 시대적 흐름에 함께 편승하지 못하고 과거 회귀적 사고에 매몰된 형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또 다른 문제는 이른바 코드인사였다. 즉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자신의 지지자들만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또 그들이 좋아할 정책만을 펴다보니 일반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당선자도 2위 후보보다 530여만 표의 차로 압승하였다고는 하나, 과반수 득표에는 실패하였다.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은 이명박 당선자가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에 따라 지지자가 될 수도 있고, 또 반대자가 될 수도 있다. 대선이 끝나자 어느새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명박 당선자의 정부도 당선자와 같은 동향출신, 동문출신, 그리고 같은 종교인들로 구성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들린다.
코드인사나 논공행상보다는 능력 있는 인재를 널리 골라 적재적소에 잘 써야 노무현 정부와 차별이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적절치 못한 잦은 언행으로 정치적 구설수에 휩싸여 왔다. 이명박 당선자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기간 중 “애를 낳아 보아야 보육을 안다”고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또 서울시장 시절에는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정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한국에는 기독교신자도 있지만 불교신자도 있고, 또 타종교신자들도 있다. 따라서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종교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일이다. 이러한 작은 말실수가 자칫 대통령의 인격과 품성에 흠집을 내고 권력의 누수현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이다.
권력은 무서운 힘을 갖고 있는 괴물이다. 그것은 권력자를 변화시키는 마력도 갖고 있다. 그래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도덕이나 인(仁)을 요구하는 것이다. 권력이 법이나 제도에서 나올 때 그 권력은 제한받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는 무제한으로 사유화되고 포악해질 수 있다. 법은 도덕이나 인(仁)보다 지키기가 쉬운 편이다. 법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덕이나 인(仁)을 요구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법치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박 후보는 당선자가 된 후 “두렵다”는 표현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국민을 섬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의 앞에는 당장 BBK사건 관련 ‘이명박 특검’이 기다리고 있고, 그에게 바라는 많은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 등 산적한 난제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은 “매우 겸손한 자세로, 매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초발심만 지킨다면 해결할 수 있다. 초발심만 지킨다면 떠날 때 박수 받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