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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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1장 구연(具緣)
若人犯重禁已 恐障禪定 雖不依諸經修諸行法 但生重懺愧 於三寶前 發露先罪 斷相續心 端身常坐 觀罪性空 念十方佛
여기에서는 대승이참의 이익을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승사참법의 편에서 이참까지 갖추고 있었는데 가령 열 번째 참회법에서 죄의 성품이 본래 일어남이 없다는 점을 밝힌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대승무상이참법의 편에서 역시 사참법까지도 갖추고 있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선정삼매에서 나왔을 때 부처님께 향을 사르고 예배하고 계율과 경전 등을 독송하는 것이 사참에 해당된다. 가령 사중금계를 범하고 나서 선정에 장애가 될까 염려하고 계율이 청정하지 못하여 삼매가 현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알았다고 하자. 이럴 경우 모든 경전에 의지해서 참회법을 닦지 말고 단지 무겁게 참회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어 불법승 삼보전에 자기가 지은 죄를 모두 드러내어 전에 지었던 무거운 죄업을 지극정성으로 참회하고, 아울러 죄업이 상속하는 마음까지 단절한 뒤에 몸과 마음을 거두어 단정한 몸으로 고요히 앉아서 죄의 성품을 은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죄업은 본성이 없어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을 염불하여 죄업을 참회하면서 그 생각이 항상 일정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데, 모든 부처님의 큰 공덕을 염불하기도 하고 혹은 홑으로 아미타불 성호만을 염불만 하여도 된다.

若出禪時 卽須至心燒香禮拜 懺悔誦戒 及誦大乘經典 障道重罪 自當漸漸消滅 因此尸羅淸淨 禪定開發
가령 고요한 선정에서 나왔을 땐 즉시 지극한 마음으로 향을 사르고 예배하고 참회해야만 하는데 <범망경>이나 보살계를 독송하기도 하고 <법화경><능엄경> 등 일체 대승경전을 독송하면서 도를 장애하는 지중한 죄업의 참뜻을 인식하고 참회를 구해야 한다.
이와 같이 참회한다면 죄업이 점진적으로 소멸하고 악업까지 단절하여 계율이 다시 이를 따라서 청정해지면 여기에 이르러서 선정과 지혜가 다시 계발된다. 이것도 죄업을 참회로 소멸하는 하나의 간단한 방법이다.

故妙勝定經云 若人犯重罪已 心生怖畏 欲求除滅 若除禪定 餘無能滅 是人應當在空閑處 攝心常坐及誦大乘經 一切重罪悉皆消滅 諸禪三昧自然現前
여기에서는 경전에서 인용하고 증명하였다. <묘승정경(妙僧定經)>은 오로지 선정의 이치만을 설명하고 있다. ‘묘승’이라는 것은 선정이 가장 뛰어나고 미묘하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오묘하고 뛰어난 선정삼매라는 의미에서 ‘묘승정’이라고 말한다.
이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무거운 죄업을 범하고 나서 마음속으로 두려움과 공포심을 내어 그 죄업을 소멸하고 싶어 할 경우 선정을 제외하면 그 죄업을 소멸할 다른 방도가 없다. 이 사람은 반드시 고요하고 한가한 처소에서 마음을 거두고 항상 단정히 앉아 좌선을 하거나 대승방등경전(大乘方等經典)을 수지 독송해야만 일체 무거운 죄업이 모두 소멸하고 모든 선정삼매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범어로 ‘삼매(三昧)’는 정정(正定) 또는 정수(正受) 또는 조직정(調直定)이라고 번역한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들이 종일토록 어지러운 망상으로 육진경계를 반연하는 것은 내 마음이 조화롭고 곧지 못하기 때문인데, 가령 선정을 수행한다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정도로 귀결하여 조화롭고 곧은 상태로 되기 때문이다. 이를 비유하면 뱀이 가는 길이 구불구불하다가도 곧은 대나무 통으로 들어가면 반듯하기를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반듯해지는 이치와도 같다.
경전을 듣거나 외우거나 염불을 하면서 지관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그 모든 수행은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는 일이 제일 첫 번째 기본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계율을 지니는 문제는 천태종에서 수행하는 스물다섯가지 방편가운데 제일 첫 번째 과목에 해당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는 것만이 지관을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요긴한 방편이라는 점이다.

第二衣食具足者 衣法有三種 一者如雪山大士 隨得一衣蔽形卽足 以不遊人間 堪忍力成故
위에서는 지계의 방편문제를 총론적으로 이야기했다. 지계의 문제가 끝나면 다시 의식의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지관을 수습하려는 자라면 첫째 계율을 청정하게 지녀야 하고 두 번째로는 의식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의복과 음식은 도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보조적인 양식이다. 가령 의식이 부족하다면 몸이 메마르고 불안정한데 어떻게 수행을 하여 도를 이룰 수 있겠는가. 그 때문에 옛사람이 말하기를 “몸이 안정돼야만 도가 높아진다”고 하였고 또 “설법을 하기 이전에 음식이 우선이다”라고도 하였다.
따라서 지관수행을 하는데 있어서는 음식과 의복이 보조적인 방편이라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의식은 지나치게 사치스럽거나 화려한 것을 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음식과 의복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면 탐욕만 증가하여 그것이 반대로 도를 닦는데 장애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의복과 음식 이 두 가지 법을 수용하는 문제도 각자 상·중·하 삼품의 종류로 나뉜다. 왜냐하면 수행하는 사람의 근기가 삼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 두 가지 문제 가운데서 의복부터 삼품으로 분류해서 설명해보기로 한다.
첫째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설산에서 수행할 때 중생을 제도하려는 목적 때문에 육년간을 고행했으며 또 과거 전생에 보살도를 실천할 때 일찍이 보살의 신분으로 설산에 거처하셨다.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을 ‘설산대사(雪山大士)’라고도 부른다.
여기에서 말하는 설산은 그 산세가 극도로 높아 차가운 기운이 매우 심하고 일년 내내 얼음과 눈이 녹아내리지 않고 만년설로 항상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그 산을 설산이라고 부른다.
설산대사께서 전생에 고행을 하실 때 의복 한 벌만을 가지고 몸의 형체를 가리면 그것으로 만족하였다고 한다. 한 벌의 의복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옷을 말하기도 하며 혹은 풀을 엮어서 의복을 대신하기도 했는데 그 목적은 따뜻함을 구하지 않고 티끌세상을 멀리 여의고 인간세계에 다시는 유람하지 않으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비록 매섭게 추운 겨울이라 할지라도 한 벌의 의복만 착복했으며 피부에 동상이 걸린다 해도 그것을 인내하고 옷을 더 입지 않았는데 이는 오로지 외부환경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수행력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옷을 입는다면 이를 두고 최상근기의 의복이라고 한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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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오후 2: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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