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 조주 스님이 신발을 머리에 이고
문 밖으로 나간 뜻이 무엇입니까?
한암, 부처와 조사가 손을 꽂고 돌아간
곳이다
1931년 가을, 55세의 한암(漢岩, 1876~1951) 스님이 극락암 위에 있는 비로암을 찾아오니 40세의 경봉(鏡峰, 1892~1982) 스님은 한암 스님을 모시고 차를 마시며 ‘남전참묘(南泉斬猫: 남전 스님이 고양이를 베다)’ 공안으로 문답을 나누었다.
먼저, 경봉 스님이 한암 스님에게 물었다. “조주 스님이 신발을 머리에 이고 문 밖으로 나간 뜻이 무엇입니까?”
“부처와 조사가 손을 꽂고 돌아간 곳이다.”
“만약 형님이 그 당시 남전이 고양이를 칼로 벨 때 있었으면 무어라고 답을 하였겠습니까?”
“남전이 본래 고양이를 벤 사실이 없었다.”
“누가 그런 말을 전합디까?”
“본래 고양이를 벤 사실이 없으니 전한 말이 없노라.”
“이제 들었습니까?”
“이제 들은 것도 없노라.”
“이제 들음이 없다고 하는 이는 누굽니까?”
“말이 많음은 법을 희론함이니라.”
“형이 오히려 법을 희론함에 걸려 있습니다.”
한암 스님이 잠시 침묵한 뒤, 물었다. “조주 스님이 신을 이고 나간 의지(義旨)가 무엇인가?”
“가로 누우니 발이 하늘을 가리킵니다.”
“요즈음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고 있는가?”
“한 티끌이 눈에 들어가니 헛것이 어지러이 떨어집니다.”
“한 티끌이 눈에 들어가니 헛것이 어지러이 떨어지는 의지가 무엇인가?”
“형께선 내일 아침에 맛있는 차를 마십시오.”
한암 스님이 묵묵히 있었다.
한암 스님은 경봉 스님의 은사 성해화상의 사제(師弟)인 석담(石潭) 스님에게 법을 받았으므로, 사촌 사형제 관계가 되었다. 이런 친근함이 있어서인지 경봉-한암 스님은 유독 많은 편지로 문답을 나누는 교류가 깊었다. 한암은 오대산, 경봉은 영축산에 머물러 직접 법거량을 나눌 기회가 적었기에, 경봉 스님이 <삼소굴 일지>에 기록한 위의 선문답은 매우 귀중한 기록이다. ‘남전참묘’ 공안의 유래는 이러하다.
어느 날 남전 스님이 동당과 서당의 승방 승려들이 고양이 한 마리를 놓고 시비하는 것을 보고는 고양이를 잡아 쳐들고 말했다.
“일러라. 맞히면 베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자 남전 스님은 고양이를 베어 두 동강이를 내버렸다. 뒤에 남전 스님이 이 사실을 제자인 조주 스님에게 말하니, 조주는 신발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다. 그러자 남전 스님이 말했다.
“그때 만일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을!”
경봉 스님은 훗날 제자들에게 남전이 말한 “그때 만일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을!”이란 말보다, 조주가 짚신을 머리에 이고 나간 것이 훨씬 더 무서운 뜻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남전참묘’ 화두를 든 수행자들은 두 도인의 법문답을 참구하며, 각자의 공부단계를 점검해 보자. 김성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