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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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열애/신달자|민음사, 2007| 값 7000원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도 ‘수행’
1943년 경남 거창 출생인 신달자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 <열애>에도 불교적 상상력이 풍부하다. 시집의 첫 시 ‘소’에서 “사나운 소”는 시인 자신이다. 이런 자신이 지금은 늙어서 살이 늘어지고 졸린 눈을 끔뻑이는, 죽음이 가까운 운명에 처해있다.
포장마차를 암자에 비유한 절창인 ‘저 거리의 암자’는 2007년도 현대불교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도시노동자들은 포장마차에서 “잡다한 번뇌를 싣고 내리고/ 구슬픈 노래를 잔마다 채우고/ 빗된 농담도 잔으로 나눈다.” 포장마차에서 “거리의 어둠이 짙을수록/ 진탕으로 울화가 짙은 사내들이/ 해고된 직장을 마시고 단칸방의 갈증을 마신다.” 시행에서 “젓가락으로 집던 산 낙지가 상 위에 떨어져/ 온 몸으로 문자를” 쓴다는 감각적 묘사가 탁월하다. 시인은 “비워진 소주병이 놓인 플라스틱 작은 상이 휘청”거리는 이곳을 “한 채의 묵묵한 암자”로 비유한다.

조금씩 비워지는
잘 익은 포장마차는 한 채의 묵묵한 암자입니다
새벽이 오면
포장마차 주인은 밤새 지은 암자를 거둬냅니다
손님이나 주인 모두 하룻밤의 수행이 끝났습니다
잠을 설치며 속을 졸이던 대모산의 조바심도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거리의 암자를 가슴으로 옮기는 데
속을 후려치는 하룻밤이 걸렸습니다
금강경 한 페이지가 겨우 넘어갑니다.
- ‘저 거리의 암자’ 부분
시 ‘여명’에서는 밝아가는 새벽의 모습을 “점점 사라지는 옷자락이 허공을 닦는” 것으로 묘사되며, “새벽을 데려오는 일에/ 몸을 구부리는 예불이 삼천 배로 지나갔다”고 한다.
시인은 ‘범종친다’에서 어떤 한계로 상징되는 ‘벽’을 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범종을 치는 것으로 비유한다. 여기서 벽은 여성이 갖는 “맺힌” 무엇을 상징한다.
화자는 결국 맺힌 무엇인 고비를 넘기 위해 차라리 벽과 눕는 것을 배워야겠다고 한다. ‘사막의 성찬’에서 화자는 속초 바다와 저녁 겸상을 하면 밥상에 바다의 속사정이 올라오고, 설악산과 저녁 겸상을 하면 밥상에 구구절절한 산 속의 사연들이 올라오는데, 백담사와 저녁 겸상을 했더니 상이 비었다고 한다. 기발한 상상이다.
‘사리’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몸”에 사리를 두 개쯤 가지고 있다고 진술한다. 물론 하나는 몸을 태웠을 때 생성되는 사리이겠고, 시인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사리는 태우면 사라지는 ‘눈’인 것이다.
‘천 년 느티나무’는 내소사 대웅전 앞에 있는 느티니무인데, 이는 “내소사 앞들의 부처”와 “내 어머니 부처”로 비유한다. 대구 영천 거조암 오백나한을 구경한 경험을 시로 구성한 ‘운수좋은 날’은 화자와 나한, 그리고 나와 M 시인 사이의 대화식 구성을 통해 재미를 준다. 봄날 부석사 여행에서 얻은 감흥을 진술한 ‘부석사’에서는 “부석사를 본 것이 아니고/ 내내 나를 보았다”는 인식에 이른다.
시 ‘만해사’는 실제 인물인 무산 스님의 인상을 시화하고 있다. 시인은 봄날에 피는 개나리꽃을 순금으로 만든 아기부처로 비유하기도 한다.
2008-08-12 오후 7: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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