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에 진리가 있는거야!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요.”
P씨는 영어학원 강사로 일한 지 거의 십년이 되어 간다. 대학 졸업 후 여기저기 무역회사에 다녀 보았으나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일도 적성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월급만 가지고 저축해서는 집하나 장만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를 만나 신세 한탄을 하니 “야, 넌 영어 하나는 잘 하는 편이잖아. 영어 강사 안 해볼래?”하며 학원을 추천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솔깃해졌다. 무엇보다 잘 가르쳐 수강생만 많으면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P씨는 아내와 의논하고 용기를 내었다. “그래요, 돈을 많이 벌수만 있다면” 하고 아내도 찬성한 것이다.
그 때부터 학원에 뛰어들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정말 열심히 했다. 매달 등록하는 수강생 숫자에 따라 받는 액수가 달라지니 저절로 성의를 다하게 되었다. 1년이 지나자 회사 때 월급의 몇 배가 넘는 수입이 생기게 되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가르쳤다. 갈수록 소위 잘나가는 강사가 되어갔다. 집도 큰 집으로 옮기고 차도 장만했다. 이제 친구들을 만나도 누구 못지않은 수입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제 수강생이 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매사에 오만한 마음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을 끌려고 광고 문구를 과잉으로 내게 되고 버젓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처럼 말하게 되었다. P씨는 영어를 좋아하고 잘 했을 뿐이지 영문학과는 거리가 먼과를 졸업했다. 그래도 강의할 때 수강생들에게 마치 영문과를 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없는 이야기까지 꾸며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셰익스피어를 번역하면서 애를 먹었고…” 등등이었다. 어느 날은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 이런 거짓말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수강생만 많이 끌면 어떠랴 싶었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점점 늘어갔고 P씨 통장의 돈도 늘어갔다. 이제 강의에 대한 성의보다도 자기 자랑과 오만함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의를 시작하며 영어로 “다 같이 책을 봅시다!”라고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왼편에 있는 문을 보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생각해 보니 책(book)이라는 말 대신 문(door)이라고 해버린 것이었다. 그 말은 수백 번도 더 한 것인데. 그리고 가르칠 내용을 칠판에 쓰려는데 이번에는 문장이 생각나지 않았다. 멈칫거리다가 책을 열고 찾아서 썼다. 학생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아. 오늘 제가 좀 피곤해서 생각이 잘 안 나네요” 하고 얼버무렸지만 눈앞이 하얘졌다. 강의 후 ‘피곤해서인가. 좀 쉬자’하고 집에 가서 잠까지 자고 나왔다. 그런데 다음 시간에도 계속 어이없는 실수가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가자 P씨는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그 쉬운 말과 문장, 수없이 반복했는데 도대체 왜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거나 기억이 안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정신 차려도 같은 일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하루는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저 선생님 이상해졌어, 다음엔 듣지 말아야지”하는 한 학생의 음성이 들렸다. 순간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두 달이 넘자 학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P씨는 당황하며 절망감을 느꼈다.
그 때부터 친구를 따라 절에 나가게 되었다. 스님이 “진심을 잃어버리셨군요.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찾으세요”라고 하자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오만해지고 돈 생각만 하게 되고 거짓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게 되었나. 꾸준히 법회에 참석하고 기도하게 되면서 다시 실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부처님이 오만해진 저를 위해 일부러 실수하게 만드신 것 같아요. 이젠 아침 마다 꼭 기도를 합니다. 나와 인연된 수강생들이 실력도 늘고 마음도 밝아지기를요.” 덕분에 불법을 알게 되고 내 안의 부처님 마음을 찾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가끔 불안해지면 수업 시작 전에 <반야심경>을 독송한다. “나의 근본 마음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다”는 말씀을 새기면서 오늘도 마음을 관하며 수업을 하고 있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