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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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정수행(正修行) ⑪
五作者 若作時應作是念 我今爲何等事欲如此作 若爲不善無記等事 卽不應作 若爲善利益事 卽應作 云何名作中修止 若於作時 卽當了知因於作故 則有一切善惡等法 而無一法可得 則妄念不起 是名修止 云何名作時修觀 應作是念 由心運於身手造作諸事 因此則有一切善惡等法 故名爲作 反觀作心 不見相貌 當知作者 及作中一切法 畢竟空寂 是名修觀
다섯 번째는 ‘일’을 하며 닦는 지관에 대해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물을 길고 나무를 나를 때나 손님을 맞이하고 보낼 때 등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도 지관수행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작(作)이라는 것은 일의 조작을 의미한다. ‘작’이라는 한 글자는 실로 모든 선을 할 수 있는 으뜸이 되기도 하고, 만 가지 악을 일으키는 괴수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알아야만 된다.
따라서 수행자는 일을 하기 이전에 반드시 미세하게 추구하여 지금 현재 하려는 일이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인지, 이익이 되는 일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 일이 남에게 유익하면 용맹 정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고 손해를 끼친다면 해서는 안 된다.
일을 하는 마음은 내적으로 육근에 있지도 않고, 중간으로 육식에 있지도 않고, 밖으로 육진에 있지도 않아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일을 하는 주체와 마음과 하는 일의 대상이 필경 공적하다고 여겨야 한다. 그 때문에 이를 관 수행이라고 한다.
또 마땅히 알아야할 것은 ‘조작’이라는 말은 그 세력이 매우 커서 인간 천상의 인과를 조작으로 인해서 이룰 뿐만 아니라 출세간으로서 사성(四聖)의 인과까지도 조작으로 인해서 생긴다는 점이다.
만일 조작이 아니라면 끝내 한 물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마음이 지옥을 만들고 부처도 만들기도 하며, 생사로 유전하기도 하고 안락하고 오묘하고 상주하게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조작으로 이루어지며 다른 물건이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선과 악이 마음으로서 근본을 삼고, 마음은 조작의 근본이라는 점이다.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몸도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기 때문에 경계도 따라서 움직인다. 만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경계도 역시 움직이지 않는다.
옛날에 쇠를 다루는 장인이 있었는데, 그는 평생 쇠를 두들겨 병기를 만들면서 생활을 하였다. 이를 본 도인이 그를 민망히 여겨 “쇠를 한번 두들길 때마다 거기에 맞춰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라”고 권하였다.
장인은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염불수행을 실천하여 오래토록 수행이 쌓여 공부가 성숙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물이 모이면 도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임종할 때 “탕탕 쇠를 두드렸더니 쇠는 강철이 되었고 천하가 태평하니 나는 서방으로 가노라”라고 말하였다.
이로써 관찰해보면 염불하며 쇠를 두드리는 것이 즉시 지관을 수행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이치를 경솔하게 여기지 말아야만 한다.

六語者 若於語時 應作是念 我今爲何等事欲語 若隨諸煩惱 爲論說不善無記事而語 卽不應語 若爲善利益事 卽應語 云何名語中修止 若於語時 卽知因此語故 則有一切煩惱善惡等法 了知語心 及語中一切煩惱善不善法 皆不可得 則妄念心息 是外修止
여섯 번째로 말을 할 때 지관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말해보겠다. 이른바 거친 말이나 미세한 말 등 이 모든 것이 제일의제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체 세간을 다스리는 언어와 희로애락은 실상의 이치와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
때문에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돌이켜 관조하여야만 이익이 매우 크다.
하지 않아야 할 말은 병 입처럼 입을 지켜 하지 말아야하고, 한마디의 말이라도 나라를 일으키고 백성들에게 복이 될 만한 말을 해야만 한다. 한마디의 말이 나라와 집안을 망치고 내 몸을 상하게 하고 생명을 잃게 한다면 하지 말아야만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한마디의 말이 나라를 일으킬 수도 있고 한마디의 말이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라고 하였다. 또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오고 병은 입을 따라서 들어간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 가운데 지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언어가운데서 지를 닦는 사람은 반드시 이치를 추구하여 말 때문에 일체 번뇌와 선악 등의 법이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일체 번뇌라고 하는 것은 어둡고 번거로운 법으로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뇌란시키는 것을 말한다.
번뇌가 많기는 하지만 세 가지 종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첫 번째는 견사(見思)번뇌인데, 이는 진여의 이치를 미혹해서 분별의 견해를 일으키고 경계를 맞이해서는 탐애의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진사(塵沙)번뇌인데, 이는 중생 마음속에 망념습기가 허공에 떠도는 먼지와 같고 강가의 모래처럼 많은 것을 말한다.
세 번째는 무명(塵沙)번뇌인데, 이는 명료함이 없어 어두운 것을 말한다.
여러분이 알아야만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은 본래 청정한 유일대광명장(唯一大光明藏)으로써 이 세계의 이치를 남김없이 철저하게 관조하고 있는데, 중생이 전도망상 때문에 깨달음을 등지고 육진으로 합하여 본래 지니고 있는 실상의 오묘한 지혜가 변하여 무명 흑암의 번뇌가 되어 자기마음의 오묘한 이성이 매몰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말을 할 때마다 지관을 수습해야만 한다.
대체로 지 수행은 미혹을 조복 받고, 관 수행은 좀 더 적극적으로 미혹을 타파한다. 삼지(三止)로서 미혹을 정지시키고, 삼관(三觀)의 지혜로서 공가중 삼제에 대한 미혹을 관조하여 타파한다. 근본삼지를 발현하여 자성삼제를 나타낸다면 본지 풍광이 철저하게 드러난다.
그러면 말하는 가운데서 지 수행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말을 할 때 상대방을 관찰하지 말고 말하는 자신을 돌이켜 관찰하여 말을 하는 마음은 끝내 얻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말하는 가운데 일체 선악 등의 법을 모두 얻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다.
말하는 나의 주관을 떠나면 객관도 동시에 사라지게 되는데, 이와 같이 주관과 객관을 모두 얻지 못한다면 허망한 마음이 쉬게 된다. 이를 말하는 가운데 지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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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오후 3: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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