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한마음이 돼서 같이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마음이 밝고 신심이 돈독한 데 대하여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난번에 뉴욕, 산호세, 시카고, L.A. 등지를 가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도 이 마음공부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미국 분들도 많거니와 한국 분들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이 불법이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불교가 쇠퇴하던 시절에 기복으로 편집이 돼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기복으로 따르고 그렇게 믿고 가게 되었던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적 특징을 살려서 지금 현시점에 맞고 우리가 가는 길에 맞게끔 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가 그러하니 우리가 마음을 계발해서 내 몸이나 내 가정, 사회나 국가, 세계적으로 모든 걸 조화롭고 화목하게 돌릴 수 있는 원심력을 길러야 된다고 봅니다. 이것이 그르다면 나중에 질문도 하시고 또 나를 탓해도 좋습니다. 그럼 왜 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하는 것을 재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의적으로 생각한다면 우주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것이 그렇지마는, 지금 살림하는 현시점에서 보면 우리 몸이 혹성이 될 수도 있고 그 혹성 속에 별성이 수십억 마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수화풍이 바탕이 돼서, 그것이 근원이 됨으로써 거기에서 수없는 생명이 창조가 되고 모습을 바꿔 가면서 진화돼서 여기까지 이르게 됐다고 보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도 참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됐어도 정법 만나기가 어렵다고 그럽니다. 인간으로 어렵게 나왔는데 부처가 어디 있는지,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것조차도 모르고 그냥 간대서야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된다는 문제가 나옵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이 제일 근본적인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있어서 우주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우주도 있다는 걸 아는 그 시점으로부터 벌어진 겁니다. 즉, 바로 자기 마음에 우주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어서 한생각에 수억 마리의 분신을 만들 수도 있고 분신을 없앨 수도 있고, 악을 만들 수도 있고 선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 자유스런 무한의 마음을 여러분이 다 가지고 계신 겁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그걸 알 수 있느냐는 얘깁니다. 자기가 있는 데에 자기 주인공의 안테나가 있는 거지 자기가 없는데 어떻게 자기 본래자성불 자체의 안테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영원한 생명과 생각 낼 수 있는 법신, 그리고 움죽거리는 화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삼위일체로서 회전하면서 자기가 바로 안내인처럼 또 선장처럼 이렇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데 그건 자기 몸뚱이가 아닙니다. 웬 줄 아십니까? 여러분 몸뚱이 속의 간세포만 하더라도 수십억 마리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몸뚱이에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내 집입니까? 그것이 내 몸이라고요? 이게 나라고요? 어떻게 나만 됩니까? 수십억 마리가 같이 소임을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간절하게 ‘우리가 당신을 선장으로 뽑아 놓았으니 당신 마음 한번 잘 먹어서 우리들을 잘 이끌고 가신다면 우리도 성불하고 우리도 각(覺)을 이룰 수 있고 우리도 이 미생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각자 자기의 선장한테 기원하는 겁니다. 만약에 선장이 코치를 잘못하는 길잡이가 된다면 그 배에 탄 중생들은 다 소멸되고 악으로 떨어지고 죽습니다. 그런 거를 여러분은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불법이라는 것은 부처님한테만, 어떠한 장소에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살고 있는 데는 다 있는 것입니다. 일체 만물만생, 즉 말하자면 태로 낳는 거, 알로 낳는 거, 질척한 데서 낳는 거, 화해서 낳는 사생이 사는 데는 다 불법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 절을 하고 밥을 해다 놓고 빌고 타의에서 구하고, 이러는 게 불법이 아니에요. 사생이 다 생명이 있으니 바로 ‘불(佛)’인 것이고, 그것이 생각을 하고 움죽거리니 ‘법(法)’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불법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그대로 살아나가는 그 생활이 불법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여러분이 불법을 잘못 알고 계신다면 바로 귀신, 미신의 행위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 스님이 된 것도 아니요, 호화롭게 남이 가져오는 거 먹고 살 양으로 스님이 된 것도 아닙니다. 스님 노릇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분은 아마 그 실천을 해 보지 못해서 모르실 겁니다. 무(無)의 법, 유(有)의 법을 한데 합쳐서 여러분한테 전달하는 그 자체를 말입니다. 여러분은 때에 따라서 “맛있는 것도 좀 먹으러 가자!” 이러겠지마는 평소에 스님들은 배가 부르면 마음이 해태해지고, 또 기름진 쌀밥을 먹고 배가 불러도 남이 배고픈 줄 모른다고 해서 일종식을 하거나 그렇습니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만 본래 내 몸이 습관이 돼서 그런지 지금도 하루에 먹는 것이 보리밥 한 공기도 안 돼요.
내가 거짓말을 한다면 이 우주간 법계에서 나를 용서치 않을 거예요. 누구도 내 행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내 행동과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요. 바로 여러분의 양심이 부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남 보지 않는 데서 무슨 일을 하고서는 아무리 안 한 척해도 자기가 알고 있는 이상 우주간 법계에서 다 알게 되는 거죠. 즉 말하자면 천체통신기 있잖아요? 무전기. 무전통신기가 벌써 모든 법계를 싹 덮고도 남음이 있어요. 그러니 어찌 한 치라도 우연이 있고 거짓이 있고 그렇겠습니까?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에 우연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진실하고 필연적인 겁니다.
그래서 나는 그 한마음의 안테나를 세우라고 하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오신통이 한마음의 안테나에 붙어 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지난번에도 얘기했죠? 축이 있음으로써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프로펠러가 있기 때문에 축이 있다는 것을요. 축은 본래 자기 자성불이요, 움죽거리지 않고 들이고 낸다 이겁니다. 움죽거리지 않는 자성불을 중심으로 프로펠러 돌아가듯 하는 건 여러분의 마음과 육체입니다. 그러니 그 움죽거리지 않으면서 하늘을 받치는 안테나 기둥이 서야 모든 일체, 삼천대천세계에서 일체 만물만생이 서로 살아나가면서 전달하는 그 이치가 거기 안테나에 잡히거든요. 이것을 세우지 않는다면 모두가 막혀요. 나한테서 지혜가 나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연결이 되지도 않고요. 본래 연결이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끊어서 태질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생각을 해 볼 점이 있지 않느냐 이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육신으로다가 아무리 뜨고 날고, 만약에 한 사람이 백 명을 밀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봅시다. 그런데 말이에요, 밀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현대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잘 아시고 계십니까. 배움도 있고 상식, 교양, 학식이 있어서 모두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는 그전에 산에 있을 때에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축지법을 하고 수없이 육신 무예를 했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느냐.’ 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막대기 하나를 짚고서 시도를 해 봤죠. 그랬는데 그 후에 잠깐 사이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이런 얘기를 하죠. 여러분이 잘 아시니까 얘깁니다만, 여자가 하는 일 있죠? 그냥 그 추운 데 앉아 있었더니 말이에요, 돌하고 나하고 옷하고 그냥 붙어 버린 겁니다. 그래서 춥기는 하고 그래서, 아주 까마득하게 보이는 저 너머 집에서 불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내가 축지법을 한다면 저 건너 집을 갈 수 있을 텐데…’ 하고요. 그러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 생각이 나자마자 뒤따르는 마음이 ‘어허, 이것은 내 육신 하나에 관한 건이지 육신이 아무리 축지법을 해서 저 집을 간다 하더라도 지금 시대에는 몸으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시점을 한번 넓혀 보아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야, 한생각에 의해서 컴퓨터를 쓰고 있고 한생각에 의해서 지금 공중으로 날아다니는데 한 개인의 축지법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몇백 년 전으로 돌아가는 거와 같죠. 그래서 ‘아차! 나의 이 생각이 이 시점에서는 참 잘못된 생각이로구나! 앞으로는 못 갈망정 뒤로 물러선다면 말이 되나?’ 하고선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물을 찾으니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 골짜기 골짜기를 다니며 겨우 물을 찾았는데 물이 거죽에는 얼어붙고 그래서 흙을 파내고 파내서 요만한 돌 하나를 캐서 얼음을 깨어, 아무것도 없는데 그 옷을 싹 벗고선 빨아서 꼭 짜서 입으니 그게 그냥 얼어붙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는 게 아니거든요. 어차피 버린 몸, 하하하…. 여러분도 좋은 옷을 입고 조심조심 가다가도 뭐 흙이 튀거나 비를 맞거나 그런다면 ‘에이그, 어차피 버린 옷, 버린 몸!’ 하고 그냥 맞고 가시죠? 그와 마찬가지로 ‘어차피 버린 몸!’ 하고서 있었더니 부처님께서 불쌍하게 보셨던지 양지에 있는 산소로 끌고 가서 그 밑에서 하루를 지내면서 그렇게 잘 말렸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해서 안됐습니다마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 그런 것도 참고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조그마한 일로 인해서 싸움을 하고 나는 못 산다, 산다 하고 애쓸 때에 그러한 뜻이 참고가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제일 조건은 뭐냐? 내 주인공의 안테나. ‘주인’이라는 건 축을 말하고 ‘공’이라는 것은 프로펠러와 같이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루 24시간 살아나가시는 데에 고정관념과 고정된 행과 고정된 말과, 고정되게 듣는 거와 고정되게 만나는 거와 고정되게 가고 오는 거와 고정되게 먹는 거와 그렇게, 고정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고정된 것이 있다고 본다면 그렇다고 말씀하십시오. 모든 게 고정됨이 없습니다. 왜 공이 색이고 색이 공이라고 했을까? 한번 생각해 볼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루 온종일 그렇게 놓고 가면서도, 고정됨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공했다는 걸 알면서도 여러분은 그것이 도대체 뭐기에 주인공이라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여러분이 주인이자 공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혜능 선사가 이런 말을 했죠? 오조 홍인 선사가 밤중에, 삼경에 들어오라고 그래서, 들어오라는 말이나 했나요? 주장자를 탕 탕 탕, 세 번 쳤었죠. 그러니까 벌써 알고서 삼경에 들어갔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얘깁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느냐 하면, 『금강경』을 강설하시는데 육조 스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죠. 네 가지 조건 말입니다. ‘본래자성불이 청정함을 어떻게 알았으리까.’ 이런 말이요. 이 중에 청정이라는 자체가, 바다가 깊어서 모든 물이 바닷물로 다 모이는 거! 더러운 거 깨끗한 거, 구정물 깨끗한 물 뭐, 고름물 핏물 다 한데 합쳐서 거기에 모이는 거! 모이는 그것도 아니라고 해서 젖는 거! 허허, 똥물에도 젖고 핏물에도 젖지 않습니까? 그걸 청정이라고 했거든요. 네! 그러면 ‘어찌 본래자성불이 청정함을 알았으리까. 본래자성불이 생멸이 없는 줄 어찌 알았으리까. 본래자성불이 일체 갖추어 가지고 있는 줄 어찌 알았으리까. 본래자성불이 움죽거림이 없이 들이고 내는 줄 어찌 알았으리까.’ 이 네 가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고정관념도 없고 어떤 것도 없이 여러분은 그대로 본래 자성, 바로 신이며 본래자성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본래자성불인데 그 본래자성불 가운데에 바로 중생들이 수없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여자 남자가 둘이 아니요 동서가 둘이 아니요 세상이 전부 둘이 아니다’라고 한 겁니다. 그 뜻을 아신다면 내 몸속에 있는 중생들의 마음을 한마음으로 돌리면서, 깔보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고 아상 부리지 말고, 살생을 일부러 하려고 애를 쓰지 말고 실천해 가십시오. 그러면 이런 계율들을 일부러 지키려고 하지 않아도 그 지혜롭고 자비스러운 마음으로써,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회사에서나 사회에서나 위로는 충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통솔력이 있어서 잘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손을 쩍 벌려서 다 안아 줄 수 있는 지혜와 자비를 가져야만이 우리 이 마음이, 요 지금 마음속에 있는 중생들이 다 회전을 해 줍니다. 그러면서 ‘아, 당신이시여! 당신도 나고 나도 당신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하면서 화목하게, 즉 말하자면 파워를 일으키지 않고 회전을 해 줄 때에 내 몸도 건강하게 되고, 건강한 몸을 가졌으니 마음도 건강해져서 일하는 것도 능률이 나고 가정에서도 화목하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또 능력이 있어서 위로는, 부모 조상들한테는 묵은 빚을 갚을 수 있고 아래로는 햇빛을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 비로소 원심력이라고 하는 겁니다.
원심력은, 보는 것만도 도가 아니고 남의 속을 아는 것도 도가 아니고, 과거의 일을 잘 아는 것도 도가 아니고 오고 가는 것이 없이 오고 가는 것도 도가 아닙니다. 그 오신통도 놓고 나와야 바로 원통력을 굴릴 수 있다 이겁니다.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면 굴릴 수가 없어요!
지금 여러분이 타의에서 구하는 그 기복! 그것은 이익을 하나도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만, 요 몸뚱이가 있을 때 요것만이 나라고 하지 마세요. 한 나무로 비유한다면, 저 가랑잎이 가을에 단풍이 들어서 떨어진다고 해서 그 나무가 죽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생멸은 없는 겁니다. 그러니 그 이파리가 떨어진다고 해서 바로 내가 죽는 게 아니요, 그 많은 이파리가 바로 내 형제 내 부모, 모두가 나 아님이 없는 한 나무의 한 이파리들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서로 싸운다면 한 나무에 한 이파리들이 싸우고 있는 겁니다.
불법이라는 거대하고 광대무변한 우리의 이 마음 하나가, 수억을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있고 수억을 살리려 해도 살릴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의 도법이, 바로 중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여러분한테 다 주어져 있으니까 여러분이 한생각을 잘하셔서 실천할 수 있어야 됩니다. 배울 때는 자기 내면세계에 주인공 안테나를 탁 세워 놓고 ‘보고 듣고 하는 오신통이 모두 여기에 관련이 되어 있구나!’ 하는 거를 아셔야 합니다. 이 안테나를 세우지 않으면 세균이나 유전성이나 영계가 들어와서 내 집이 빈집인 줄 알고 맘대로 왕래를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안테나는 바로 자동적으로 버릴 건 버리고 들일 건 들이게끔 해서 내 몸과 내 가정과 사회를 튼튼히 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안테나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금 현시대를 잘 내다보십시오. 텔레비전이나 전화나 모든 게 안테나를 세우지 않고는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럼으로써 보이지 않는 이 허공에도 길이 있고 생명들이 꽉 차 있습니다. 여러분, 비행기가 왜 그냥 뜨지 못하는 줄 아십니까? 이 허공에 생명이 많기 때문에 비행기가 그냥 뜰 수가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셔야 할 겁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그러는 것도, 또는 그 뭡니까? 저, 불 일어나는 거 뭐죠? 물어봐야지.
대중 가운데서: 화산요.
스님: 네, 화산! 화산이 일어나는 것도 그런 생명체들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이것은 일체가 지수화풍의 바탕으로 인해서 미생물에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조성됐고, 그 조성된 생명들로 인해서 우리까지 이렇게 등장을 했다는 그 사실을 아셔야 하며,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몸뚱이가 나왔으면 칼을 뺀 거와 같습니다. 그냥 갈 수는 없죠?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와서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거를 모르고 그냥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이것을 깨치지 않았어도 주인공의, 즉 말하자면 한마음의 안테나를…, 몸뚱이로 봐서도 한마음입니다. 한마음의 여래의 집이에요. 내 집만이 아닙니다. 한마음의 집이죠, 이게. 여러분 몸뚱이가 한마음의 집입니다. 그래 한마음의 집에서 그 한마음으로 한번 내디딜 수 있는 패기와 물러서지 않는 믿음과 그런 것이 있다면 역력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얻는다는 얘깁니다.
그럼으로써 내 몸에도 만약에 간이 아프다 그러면 소장이 대장더러 하는 소리가 ‘여기가 이렇게 파워가 일어나고 고장이 났습니다’ 하고 누진으로 신호를 올리는 거라고요. 신호를 올려서 나를 알게 하는 거죠. 내가 그걸 알았으면 조치를 해야죠. 대장이, 선장이 말입니다. 그런데 선장이 아픈 걸 알면서도 금방 대치를 못해요. 왜? 모르니까요. 이것은 의학이라도 심성의학입니다. 사람들이 과학적인 것을 찾아도 심성 없이는 과학도 의학도 없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없이 무엇이 있나요? 여러분의 마음이 있으니까 여기 몸뚱이도 움죽거려서 왔죠? 마음이 있으니까 차도 끌고 다니지요? 마음이 있으니까 일체 만법을 응용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모든 것은 누구의 짓이냐? 잘못하든 잘하든 자기의 짓이라 이거예요. 남이 잘못한다고 남을 증오하고 미워하고 그러지 말고 내 탓이라고 생각해서 하셔야 될 겁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남편이 그렇더라도 만날 말로 잘못했다고 긁적거리면 집안이 화목하지를 못해요. 그리고 진실로 이끌어지질 않아요. 여자가 그렇더라도 그렇고, 또 자식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인공에 모든 것을 맡겨 놓고 당신밖엔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이치라고 믿었을 때, 바로 그 천체무전통신기와 에너지는 거기로 속사포같이 그냥 한 찰나에 가서 전달이 된단 말입니다. 전기 가설이 되었기 때문에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불이 저쪽에도 들어오고 이쪽에도 들어오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 살아나가는 것이 심성과학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하셔야 될 겁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