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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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실제 비구니
당나라 때,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의 법을 계승한 제자 중에 실제(實際)라는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은 ‘일지선(一指禪)’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친 구지 선사를 발심시켜 깨달음에 이르도록 이끈 선지식으로 어록에 등장한다. 〈조당집〉 ‘구지화상전’에는 두 선사의 기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구지 화상은 천룡(天龍) 선사의 법을 이었고 경안주(敬安州)에 살았다. 그 밖의 행적은 알 수가 없어 기록하지 못한다. 선사가 암자에 살고 있을 때에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와서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선사의 선상을 세 바퀴 돌고는 주장자를 우뚝 선사 앞에 세우고 서서 말했다.
‘화상이여! 어떤가. 한 마디 이를 수가 있는가? 만약 한 마디 이를 수 있다면 삿갓을 벗지 않겠소.’
똑 같은 말을 우렁차게 세 번이나 거듭했지만 선사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비구니는 그냥 떠나려고 했다. 이에 선사는 말했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하루 저녁 묵어가도록 하시오.’
이에 비구니는 ‘제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 묵어가겠지만, 대답을 못하시면 이대로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떠나 가버렸다.
이때 선사는 혼자 탄식했다.
‘나는 명색이 사문이라고 하면서 비구니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외람되이 장부의 형상은 갖추었으나 장부의 작용이 없구나! 이 산을 떠나 선지식을 두루 친견하리라.’
그리고 조용히 선정에 드니 갑자기 어떤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3·5일 안에 큰 보살이 오셔서 화상께 설법해 드릴 것이오.’
그런지 열흘이 지나지 않아 천룡 화상이 왔거늘 선사는 뛰어나가 말에 절을 하고 맞아들여 모시고 서서 앞에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러자 천룡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니, 즉시에 환히 불법을 깨달았다.
선사는 그 뒤로 대중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룡 화상에게 일지선(一指禪)을 얻은 뒤로 평생 동안 사용해도 다 사용하지 못했다.’”
이렇게 하여 구지 선사는 마조도일 선사의 제자 대매법상(大梅法常: 752~839)의 법을 잇는 천룡 화상의 제자가 되었다. 그후 선사는 수행자들이 찾아와서 불법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할지라도 단지 한 손가락만을 세울 뿐, 한 마디도 이르지 않았다. 그의 선을 ‘한 손가락(一指頭)의 선(禪)’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행자들의 온갖 질문에 손가락 하나로 같은 대답을 하고, 이러 저러한 학인들의 온갖 분별의식을 한 손가락으로 잠재운 구지 선사의 법력은 실제 스님의 지도에 의해 비롯된 것이었음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이처럼 탁마 과정에서 비구, 비구니, 거사, 노파라고 하는 남녀와 승속의 차별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위 문답에서 실제 스님이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주장자를 우뚝 세운 것이나, 천룡 스님과 구지 선사가 한 손가락을 세운 것이나, 앙산 선사가 한 획을 그은 것이나, 무수한 선사들이 주먹이나 먼지떨이(拂子)를 세우거나, 고함을 지른 일들이 같은 가, 다른가. 이것을 모양과 언어로 이해한다면 차별 경계에 떨어지겠지만, 형상과 고정관념을 여의고 본다면 둘이 아닐 것이다.
선종에서 ‘하나(一)’는 불법의 근본인 진실, 진여당체, 본래면목을 표현하는 불립문자의 경지를 상징한다. 또‘둘(二)’은 언어로서 진리을 체득하는 대기설법에 해당한다. 때문에 하나를 알면 일체를 알게 되기에, 구지 스님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인 뜻을 깨달으면 삼라만상의 이치를 요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하나’를 깨달은 의상 대사는 ‘법성게(法性偈)’에서 이렇게 힌트를 주고 있다.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양이 본래 없고/ 모든 법이 동(動)함 없어 본래부터 고요해라/ 이름 없고 형상 없고 온갖 것이 다 없으니/ 깨달아서 알뿐 다른 방법으론 모르리라/ 참된 성품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하여/ 자성만을 지키지 않고 인연따라 나타나네/ 하나 속에 모두 있고 일체 속에 하나 있어/ 하나가 곧 모두이고 모두가 곧 하나이니….”
김성우 기자
2008-07-21 오전 9: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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