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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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해우소서 삶을 깨닫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中 ‘선암사’-

시인은 ‘숨 막힐듯한 현세에서 벗어나고플 때 훌쩍 떠나 선암사 해우소에서 근심을 풀라’ 청한다. ‘10년 전 시인이 기대어 통곡했던 와송(臥松)과 대화 나누라’ 한다. 눈물이라는 또 하나의 나와 자연이 포옹하게 하는 작가의 시세계는 오탁(五濁)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정화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시인의 작품에 드러난 사찰풍경이 종교간 화해와 소통의 장으로 거듭난다.
문학서비스단체 문학사랑(이사장 김주영)은 국내외 문화예술 전문여행사 ‘파라다이스 티앤엘(대표이사 이창우)’과 매월 1회 시심을 품은 문학기행을 떠난다. 정호승 시인 등단 35년ㆍ현대시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찰여행이다. 첫 목적지는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배경이 된 선암사(주지 경담)다. 이른 아침 서울서 출발한 버스가 순천으로 향하는 동안 기타 반주에 맞춰 백창우 작곡으로 완성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를 노래로 배운다. 오솔길을 걸어 선암사 산문에 들어서자 포교국장 전각 스님이 함박 미소로 여행객을 반겼다.

부처님 마음과 시인의 마음은 많이 닮았습니다. 제 시는 유독 사찰에서 써내려간 것이 많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렇게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성사됐네요. 여행은 일생을 바라보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인연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선암사 해우소가 우리를 부른 것은 필연일 것입니다. 삶 자체가 눈물인 시대에서 함께 숨 쉬는 우리의 반가운 만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는 인간 삶의 비극 속에서 꽃핀다고 생각합니다. 비극이 비극으로 있다면 정말 비극이겠죠. 그러나 비극 속에서 꽃 피기 때문에 시가 됩니다. 시는 생명을 보는 일중 하나입니다.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는 일, 바로 시를 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비극을 시의 힘으로 위안하고 위안 받습니다. 비극의 순간에 처한 인간을 봅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모든 인간에게서 신을 본다’ 했지만 저는 모든 인간에게서 시를 봅니다.
마음의 세계. 바닥을 기어가는 등 굽은 소나무에게 삶의 고통을 보았고 그 나름의 비극적 삶을 사는 운명에 동일화합니다. 10년을 아우르는 시공간은 시의 영원성으로 소통합니다.
10여 년 전 선암사 심검당에서 문수보살을 그리는 스님과 다담을 나누게 됐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해우소를 찾았지요. 현대화되기 전 대궐과 같은 기와집 형태의 건축물로 우리 글 ‘뒷간’이라 쓰인 대문을 통과하니 남측간ㆍ여측간으로 구분돼 있더군요. 들어가는 입구인가에 붓글씨로 ‘몸 안의 대소변을 배출시키면서 당신의 번뇌 망상도 함께 배출하시오’라는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오늘 여기 온 까닭이 무엇인가’ 선암사 부처님은 저를 향해 단순한 대소변 배출이 아닌 불쌍한 번뇌 망상을 버리고 가라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제 딴에는 당시의 번뇌 망상을 버리고자 노력했던 곳이 선암사입니다. 영혼의 대소변, 번뇌의 대소변을 배출한다면 우리의 삶이 좀 더 평화롭지 않을까요.
누운 소나무는 어떠합니까. 늠름하게 잘 자라는 여느 소나무와 달리 땅바닥을 기어가며 뻗어 나갑니다. ‘내가 만약 소나무라면 저 소나무와 참 닳았구나. 하늘을 보며 자라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고 땅을 기어가듯 살아가는 소나무의 고통이 나와 같다’ 여겼습니다. 번뇌의 관념 속에 살아가는 불쌍한 나를 어머니 품처럼 보담아준 곳이 바로 선암사입니다.
저는 선암사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번뇌와 망상 그리고 관념들을 완전히 비우지 못하고 육체의 대소변만 비우며 살아온 저는 시로써 치유를 표현했습니다. 저의 위안을 많은 이들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고 ‘눈물이 나면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울라’고 청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에도 울고 임종 직전에도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눈물이 날 때 선암사 해우소에서 실컷 울어보십시오. 부처님 말씀과 자연의 손길에 위로받으며 고요한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시를 쓸 때 언어를 표현한 작가의 느낌을 독자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시를 이해하는 기본은 내 생각과 느낌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시인은 작가임과 동시에 독자입니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시어 속에서 내 삶과 연결되는 고리를 만나기도 합니다. 인간의 행각을 보면 때론 그 잔혹함에 몸서리칩니다.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한 죄의식도 망각합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있습니다. 선하고 아름답게 태어난 사람이 그것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과정이 바로 문학입니다. 시는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을, 더 나아가 자연의 인간을 아름답게 합니다. 시는 바람 한 줄기 은유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나라 사찰은 종교적 의미보다 문화적 의미가 강합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상 생전에 절에는 반드시 다녀봐야 합니다. 부처의 길이란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바라보며 자비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서로 바라보는 방법과 존재가 다르고 역사와 과정이 다를 뿐 결국은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현실의 문제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참으로 많은 통곡을 합니다. 근심을 푸는 해우소에서 세상 시름 모두 놓으십시오. ‘선암사’라는 시는 인간의 통곡이 인간이기에 지니는 ‘당연한 통곡’이라 합니다. 괴로움은 인간이기에 지니는 숙명과 같습니다. 내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는 찬란한 바다를 보더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때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때입니다. 현실의 시련이 인간관계에서 치유되지 못하고 자연으로부터 치유되는 그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자연이 인간에게 준 생명력을 이해할 때 비로소 시인이 됩니다.
시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남의 비밀, 만남에도 이별에도 죽음에도 모두 비밀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그러한 비밀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모두 압니다.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런 가시나무에도 아름다운 꽃이 핀다고 생각한다면 힘든 세상살이지만 소중한 자신의 삶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 안에 제가 함께 한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결국 마음의 문제입니다. 사랑의 힘이 내재된 마음이죠. 사랑의 본질은 희생 즉 자비입니다.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미 희생의 방식을 잃었고 이 시대는 사랑을 더 이상 정의내리기 힘들어졌습니다. 책임이 따르는 사랑, 그 사랑의 기술. 시인은 시를 통해 인간의 비밀 즉 사랑을 구현하고 상처를 극복하게 하는 세계를 그립니다. 저는 그 사랑을 선암사 해우소에서 느꼈고 자아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곳을 선물합니다. 가연숙 기자 omflower@daum.net
2008-07-15 오후 5: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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