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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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불 속에서 살아남기
침착해야 산다
“제 정신으로는 할 수 없었죠.” 김씨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오싹하다. 김씨는 작은 인테리어 회사 사장이다. 어느 날 현장사무실 밖 마당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안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보니 커다란 유리창으로 보이는 사무실 안에서 불이 붙고 있지 않은가. 안에는 직원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문 쪽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커다란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며 불길과 함께 마당 밖으로 튀어나왔다. 조금만 늦었으면 김씨는 그 불붙은 유리창을 뒤집어 쓸 뻔하였다. 그러나 문 쪽으로 갔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다. 불과 몇 초 사이, 직원들을 구하려고 움직인 것이 위험으로부터 그를 구한 셈이었다.
와락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직원들은 이리저리 허둥대며 불을 끄려 하고 있었다. 김씨는 “정신 차려! 모두 침착해! 침착해야 산다!” 하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직원들은 김씨의 외침에 일순 표정이 바뀌며 차분해졌다. 그런데 화학약품들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불이 퍽퍽 붙으면서 번져갔다. 김씨는 문쪽에 있던 소화기를 들어올렸는데 어찌된 까닭인지 핀이 빠지지를 않았다. 안간힘을 써도 안 되어 포기하고 소화기를 바닥에 내던져버렸다. 점점 위험해져 직원들은 밖으로 빠져나갔다. 김씨도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무실 안에 있는 방 안에 있는 직원이었다. 그는 나오려고 작은 방 문을 열었다가 불길이 안으로 솟구치자 기겁을 하고 얼른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그 문 주위는 온통 불길이어서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있으면 김씨도 위험했다. 살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다.

혼자 살 수는 없다
“그래도 그 순간 저 사람은 우리 회사 직원이다, 그를 버릴 수는 없다. 같이 타 죽더라도 그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기기들을 닥치는 대로 불 위에 던졌지만 불길은 잡히질 않았다. 곧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불을 끌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가슴이 불에 덴 것보다 더 아팠다. 지금이라도 나가면 자신은 살 수 있었다. 그래도 안 된다. “혼자 살 수는 없다! 부처님, 제발!”
바로 그 때였다. 나갔던 직원 중 한 명이 갑자기 뛰어 들어왔다. “사장님, 어서 나오세요! 위험해요!” “안 돼.” “이러다 다 죽어요!” 직원은 발에 뭐가 걸려 넘어질 뻔하면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작동이 안 돼서 김씨가 내팽개친 소화기였다. 그 순간 소화기가 팍 터졌다. 하얀 줄기가 마구 쏟아졌다. 아까 바닥에 내던질 때 그 압력으로 핀이 빠졌던 모양이었다. 김씨는 정신없이 그것을 잡아들고 불길을 향해 쏘면서 안의 방문 쪽으로 갔다. 직원도 도와 길을 냈다. 문을 열며 소리치니 안에 있던 직원이 나왔다. 셋은 간신히 밖으로 나왔다.
김씨에게는 그 십여 분의 아수라장이 몇 시간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스님에게 “세 가지 정말 감사한 일이 있었어요”하고 말하였다. 우선 평소에 마음공부를 해서 위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었던 점이다. 지금도 “침착해!”하는 자신의 외침에 직원들이 일시에 차분해졌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불이 났다고 김씨도 무조건 당황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두 번째는 사무실 유리가 깨지는 것을 피한 점이었다. 직원들을 생각해 불붙은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그를 살렸다는 점이다. 문으로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으면 꼼짝없이 크게 다치고 말았을 것이다.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마지막으로 절망적인 순간에 나갔던 직원이 들어와 소화기를 작동하게 된 점이다. 그 직원은 “전 사장님이 안 나오시고 혼자 불 끄려고 하시는 걸 보고 놀랐어요, 그래서 무조건 다시 들어간 거예요”라고 하였다. 그가 소화기를 들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싶다. 그런데 그 소화기는 작동이 안 되어 포기했었지 않은가. 어떻게 소화기가 그의 발에 걸렸고 작동되었단 말인가. “혹시 부처님이 소화기를 다시 작동시켜주신 건 아닐까요?”하고 물으니 스님은 “네, 아마 거사님 마음을 보고 자성 부처님이 나투신 거겠죠”하며 벽에 걸려있는 법어를 가리킨다.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이 마침내 온 우주와 함께하는 한마음인 것이다’라는 말씀이었다.
스님은 “거사님이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목숨을 거는데 자기 속 자성 부처님이 그냥 보고만 있겠어요! 덕분에 안에 있던 분을 살리셨네요. 참 장하십니다”하고 미소 짓는다. 김씨는 가슴이 찡하며 눈물이 나왔다. 평소 마음공부를 하고 자성 부처님을 찾는 습을 들이지 않았다면 그 위급한 순간들에 버틸 수 있었겠는가. 지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보이지 않는 그 자리에 깊이 감사 또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07-15 오후 4: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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