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법정 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中
90년대 ‘풍자’와 ‘파격’으로 정치의 감춰진 진실을 들춰내 대중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줬던 한겨레 그림판의 박재동(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화백.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로 구법의 길을 떠난 현장 법사처럼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아 실크로드 기행을 떠났던 그를 만났다.
그는 실크로드를 다녀온 후 ‘행복과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렸다. 실크로드 기행을 통해 세상 보는 눈이 바뀐 것이다. 실크로드의 다양한 문화 속에서 또 다른 행복과 아름다움을 느낀 그는 ‘우리 문화가 최고’에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면 그것이 우리 문화’라는 시각으로 바뀌었다고 밝힌다.
돈황 석굴의 불상ㆍ실크로드의 악공과 무희ㆍ천진난만한 아이들ㆍ절벽의 토굴집ㆍ사막에서의 달빛 등 34일 동안 실크로드에서의 경험은 그의 손끝을 거쳐 스케치로 꽃피운다. 7월 1일 열린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강연에서 박재동 화백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만났다.
# 실크로드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실크로드. 즉, 비단길은 이름과 다르게 위험한 길입니다. 높은 산맥과 사막으로 새가 날아 넘어가지 못하고 해골들이 길을 알려준다는 곳이죠. 이런 위험한 길을 따라 동서 문물이 교류되고 더불어 종교ㆍ예술ㆍ철학도 전파됐습니다. 인도불교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전해진 후 이런 불법을 전하겠다는 열의는 당나라 때 현장 법사의 인도구법기로 이어지죠. 이는 신라 통일전쟁 중에 위험한 당 유학을 떠났던 의상 대사에게까지 전승됩니다. 저의 실크로드 기행은 이러한 구법열의를 이어받아 진정한 행복과 아름다움은 무엇인가라는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현대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그 무엇이 저 먼 곳에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것이죠.
# 장안의 2월은 향잔으로 가득하고, 육진의 도로는 차마가 덜커덩거리며 다닌다
이번 기행의 시작인 중국에서의 첫 느낌은 먼지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중국은 먼지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기행을 하면서 느낀 느낌은 먼지 그 자체일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차이로 중국은 절벽이 있으면 절벽을 파서 집을 짓습니다. 이것이 돈황 석굴을 낳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북경을 출발하여 서안을 지나 난주로 가면서 화려한 중원문화와 다른 소박한 변방문화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안 이화원의 아름다운 연못과 대비해 난주로 향하며 본 맑은 하늘아래 붉은 대지는 마치 초벌구이한 듯 보여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붉은대지를 지나 돈황에 도착했습니다. 돈황은 절의 계곡입니다. 절벽을 보면 집이나 절이 지어져있습니다. 돈황 45불 중 한 불상을 스케치 했습니다. 그 불상은 너무나 유연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띄어 스케치하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그 불상에서 마치 부처님을 친견한 듯 장엄함을 느꼈습니다.
그 장엄함을 뒤로한 채 우리는 돈황을 떠나 투르판으로 이동했습니다. 투르판에는 두 강물로 싸인 천연 요새 교하고성이 있습니다. 이곳은 절벽요새인 환경 요인으로 인해 아래로 흙을 파내려가 그 위에 지붕을 얹습니다. 대들보를 세우고 지붕을 얹는 우리와 다르게 파내려가 지붕을 얹고, 더 나아가 유목민은 지붕조차 없는 집을 짓는 것을 보고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너졌습니다.
이곳 투르판에는 <서유기>에 나와 유명한 화염산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70도까지 올라가는 산이죠. 그 인근에는 천산의 만년설이 녹은 차가운 물이 흐르는 하천과 화염산의 뜨거운 열기가 만나는 베제클리크 사원이 있죠. 이 지역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이곳을 꼽습니다. 사원 스님들이 절로 수행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경이었습니다.
# 쏟아지는 달빛 속에
투르판을 떠나 천산고원으로 들어갔을 때 일입니다. 밤이 깊어 흙으로 지어진 숙소에 묵었습니다. 숙소건물은 문도 덜렁 덜렁거리고 페인트가 없어 양피로 표시를 해놓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숙소시설과는 반대로 지금까지의 일정동안 가장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덜컹거리는 문소리와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의 절묘한 조화가 마치 자장가 같았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갔을 때 맑은 하늘에는 달빛이 세상을 환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환한 달빛이 모든 만물에게 비추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달빛은 모든 만물을 가리지 않고 고루 비춥니다. 무주상보시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달빛이 주는 절대적인 평온함 속에 이것이 우주의 본질이구나 생각했습니다.
# 말 타는 소녀의 행복
천산고원에서 아을샤 온천으로 가는 중간에 다섯 가구정도 되는 유목민 마을에 들렸습니다. 사람이 쉽게 올 수 없는 오지마을의 인정이 넘치는 것을 보며 지역과 환경이 다르지만 인정이 넘치는 문화는 한국과 같음을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말을 타고 있는 한 어린 유목민 소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살다가 슬픈 일이 어떤 일이 있었니?”
“그런 거 몰라요”
“가장 즐거운 일은 뭐니?”
“말 타는 거요.”
“학교 갈 때 말 타고 가니?”
“예.”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그 소녀와 마을 주민들을 보며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행복에 관해서는 천산산맥을 지나 이슬라마바드 사원에 도착했을 때 일화가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보니 사원 안에 머리가 하얀 한 노인이 누워있었습니다. 그 노인에게 그 소녀에게 던졌던 질문을 다시 던졌습니다. “언제 행복하십니까?”“나는 항상 행복합니다.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 때 항상 행복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그 노인과 부처님의 모습이 겹쳐보였습니다.
저는 실크로드에서 악기와 널뛰기 등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라고 생각했던 것이 공유되는 것을 보며 느꼈습니다. ‘사람과 문화는 다르지만 생활 속에서의 본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다’라는 것입니다. 서로 다르지만, 결국은 같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남보다 더 갖고 더 높아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일상 속의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달라 보이는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고, 같음을 깨달아 생활 속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노덕현 기자 dhavala@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