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오직 부처님 눈치만 봅니다!” 신씨는 말하고 나서 자신도 놀라버렸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항상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살았다.
자라면서 신씨는 항상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했다. 가게를 하던 아버지는 그 날의 매상에 따라 기분이 좌우됐다. 기분이 좋은 날은 어머니에게도 좋게 이야기하고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쁜 날은 저녁 식사 반찬부터 무조건 트집을 잡고 불평하며 어머니와 다투기 일쑤였다. 그런 때는 학교에서 정말 필요한 게 있어 돈을 달라고 해도 화만 낼 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신씨와 다른 형제들은 자연히 저녁이 되면 퇴근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매일 밤 아버지 기분이 어떤지를 잘 봐서 그에 맞춰서 행동해야지 안 그러면 야단맞거나 심지어 매를 맞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의 입장이나 감정은 느낄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었다. 어린 신씨가 친구와 다투고 들어와 기분이 울적해도 아버지가 기분이 좋은 날은 좋은 척 해야 했다. “건방지게 왜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하고 야단을 맞게 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그 날의 기분을 결정하는 것이고 아이들은 그저 그에 따라야 했다. 자기의 감정이나 주장을 못하게 되자 학교에서도 그렇게 됐다. 항상 두려워서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 마음속엔 불안감이 따라다녔다. 공부 집중보다 선생님들의 기분을 살피고 신경쓰다보니 성적이 좋을 수가 없었다.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상사들은 항상 두려운 존재였다. 결제 받으려면 눈치를 보느라 쩔쩔매게 됐다. ‘왜 그렇게 줏대가 없어요’하고 동료나 후배들까지 뭐라고 했다. 알면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윗사람이라고 하면 아버지가 연상되어 꼼짝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회사 생활을 수십 년 하다 보니 억울하고 손해 보는 일도 많았다. 다른 동료들은 상사와 잘 지내면서 많은 정보도 얻고 추천도 받고 하는데 신씨는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십 중반이 넘어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아내를 따라 절에 나가기 시작했다. 신씨에게 충격적인 것은 모든 사람이 각자 부처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부처님 마음의 중심에 모든 것을 되돌리고 집중해야 한다. 모든 것이 바로 자기 마음에서 지어 놓은 대로 나온다는 점, 그러니 마음을 바꾸어야 인연도 바뀌고 환경도 바뀐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그런 아버지를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입력된 대로 나온 결과이다’라는 것을 아는 순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옆에 있는 아내에게 체면을 차릴 수도 없이 일 년이 넘도록 신씨는 절에만 가면 눈물이 나왔다.
이제 인생을 바꾸고 싶었다. 모든 것을 내가 아니라 내 속의 부처님이 한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무척 어려웠다. 자신의 본래 마음을 찾으라고 하지만, 신씨는 워낙 오랜 세월 동안 자기 마음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사는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습관된 것을 내면으로 돌리려고 하니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꾸준히 절에 다닌 지 칠년이 넘어갔다.
오늘은 중요한 일로 부서 회의를 하게 되었다. 상사가 “각자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했다. 여러 사람이 찬반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신씨도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상사가 “자기 의견을 말하세요! 당신은 항상 남 눈치를 봅디다”하고 면박을 주는 것이 아닌가.
가끔 듣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말을 듣자 화가 났다. 자기도 모르게 “전 이 세상 그 누구의 눈치도 안 봅니다. 전 오직 부처님 눈치만 봅니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 소리였다.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고 신씨 자신도 놀랐다. 얘기를 들은 스님은 “그게 바로 거사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자성 부처님의 음성입니다” 하였다.
어떤 성격의 어려움도 결국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힘은 자기 내면에 있다. 중생으로서의 개인은 약하지만 근본 부처님 마음에는 누구나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 중생심을 하나하나 조복 받아 부처님 마음으로 바꾸어가는 것이 수행이다. 신씨는 이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힘이 생긴 것 같았다. “부처는 본래 자기 마음속에 있는데 그것을 모르니 중생이다”라는 법어가 실감난다고 한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