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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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한 철 살기에 우리 사람답게 삽시다!
전설의 고향에 대해서
요즘 Cable TV를 통해서 예전에 방영됐던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을 시간 날 때마다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옛날만의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신이다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이 세상만물에 생명이 있고 마음이 있고 형상이 번연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공부하는 저희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남을 해치지 않고 도와주면서 한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전설의 고향을 잘들 보시지만 그건 전설의 고향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앞뒤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시지 과거에 산 거는 현실이요 현실에 사는 건 미래인 것입니다. 사람이 즉, 짐승이 될 수도 있고, 짐승이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 포천 어디에서 이런 예가 있었죠. 큰 구렁이가 도를 닦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 닦고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신문에 나고 모두 야단들이 났었거든요. 한 30년 전 얘기라고도 볼 수 있겠죠. 아마 30년 더 됐을 거예요. 그랬는데 그때 군인들이 사단 사단이 그냥 무지하게 거기 주둔해 가지고 천막을 치려고 전부 그 산을 닦았습니다. 그런데 거기 노인네더러 꿈에 “내가 지금 도를 닦고 있는데 앞으로 사흘만 있으면 내가 다 해. 끝나. 그러니까 사흘만 말미를 좀 달라고 그렇게 말씀 좀 해 달라.” 하고 노인더러 그렇게 부탁을, 애원을 하더라는 거죠.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내 몸을 딴 데로 옮길 테니까 사흘만 말미를 달라고.” 그렇게 애원을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가서 얘기하니까 군인들은 들어주지 않는 겁니다. 그 이튿날 또 꿈을 꿔서 또 가서 얘기해도 안 들어주는 거예요. 그 이튿날, 사흘 되던 날은 아주 간곡히 얘기해서 가서 대장더러 얘기를 하니까 군인이 그런 미신을 들을 수 있겠느냐고 그러곤 안 들었다는 거죠. 그랬는데 웬걸 그때 천막을 치고 거기서 전부 자는데 밤에 그냥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가지고, 그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비가 오는 줄도 모르게 와 가지곤 그냥 산이 뭉그러져 가지고 전부 일망타진됐어요, 그냥. 근데 그 애원하고 애원하고 벌벌 떨고 빌고 빌고 빈 그 노인네 논만 그대로 요렇게 산이 무너져 가지고 막아 주고, 그 집만 막아 줬지, 딴 집들은 다 그냥 무너졌더랍니다.
나중에 보니까, 즉 말하자면 예전부터 원 노릇을 하다가 너무 욕심이 많고 너무 남의 거를 갈취를 했기 때문에 구렁이가 돼 가지고 거기서 내내 있다가 나중에 개심을 하고 천 년을 거기서 이슬을 먹고 이파리만 따 먹고 그러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남을 해치지 않고 천 년을 채우려면 사흘 남았는데 그랬단 말입니다. 그랬으니 그 동네 일판이 다 그렇게 된 건 그렇게 된 거지만 군인들이 몇백 명이, 아니 그때 몇백 명보다도 그, 숫자는 다 모르겠어요. 사단이 몇이라니까, 아주.
그런 소리를 듣고 그런 현상을 봐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겪어 보면 아시겠지만 여러분의 의식이 욕심이나 아집이나 탐심, 남을 탓하는 투기, 이러한 마음을 가지신다면 안 되죠. 인생은 가랑잎과 같다 그랬죠.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래도 인간이라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도 저런 나뭇가지보다도 못한 때가 많아요. 가을이 돼서 나뭇잎이 다 떨어져도 그 가지는 벌벌 떨면서도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조금도 해치지 않아요.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 말입니다, 그 한 철 살기 위해서, 나그네 생활로 한 철 살기 위해서 남을 얼마나도 해칩니까. 꼭 해친다고 해서 해치는 게 아닙니다. 마음 하나 잘못 먹으면 그렇게 해쳐집니다. 거짓말 한 번 하다 보면 그걸 속이기 위해서 백 번은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이게 부처님이 가르친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세세생생을 끄달려야만 하는 그런 이치가 있는가 하면 자기의 묵은 빚 갚아야 할 것도 못 갚고 자기 육을 낳아 준 부모까지도 해를 입고 자식까지도 해를 입게 된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은 자세히 모르실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아십시오. 우리가 밥을 얻어먹고 돈벌이를 해서 살 양으로 머릴 깎고 이 중 옷을 입은 게 아닙니다. 이거 보세요. 하루 한 끼니 두 끼니 아무거로든 배 채우면 살 것을 왜 구태여 그렇게 해서 삽니까! 그렇게 부처님의 이름을 속이고 부처님의 뼈다귀를 팔아서 먹고 살아야 되겠습니까! 부처님이 여기 와도 부처님의 고깃덩어리를 믿으라는 게 아닙니다. 일체 조사들의 고깃덩어리를 믿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그 아리따운 마음을 꿰뚫어서 내 마음과 둘이 아닌 마음을 만들어서 내가 그렇게 베풀라는 거지요.
여러분! 부처님 법이 어디 있습니까? 실질적으로 이 세상 살아나가면서 우리가 경험하면서 알고 가는 것이 다 부처님 법입니다. 그러니 ‘내가 부처님 법이고 내가 부처님 법을 행하고 있고 내 가정이 다 살아나가는 게 부처님 법 아니고 무엇인가. 내가 한 걸음 걷고 말하고 움죽거리는 게 다 부처님 법이니 이것이 참선이 아니고 무엇이며 이것이 바로 나를 발견하는 재료구나. 부딪치는 게 다 재료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십시오.
태양의 근본과 인간의 근본
태양의 근본이 인간의 근본과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법문 중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그렇다면 시간도 공간도 크고 작음도 없이 모두가 하나라는 말씀이신지요?
내가 ‘태양의 근본이 인간의 마음의 근본이다’ 하는 것은, 만약에 여러분의 체가, 예를 들어서 태양의 그 뜨거운 속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타 죽고 없어지죠? 물질이라는 건 그렇게 없어지는 거죠.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불 속에서도 물 속에서도 죽지 않는 것입니다. 불 속에 들어가서 모습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문제도 바로 그 뜻입니다. 태양계의 모든 생명이, 아니 체 없는 생명이 모습을 나타낸다고 해서 그게 뜨겁겠습니까? 그것은 녹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타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따뜻한 태양 빛을 내리쬐어서 만물을, 곡식을 익혀 여러분 입에 들어가게끔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온화하고 따뜻하다면 만백성을 다 한 팔로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지혜로운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생각을 잘 낸다면 그렇게 어마어마하고 광대무변한 것을, 그 마음을 가지고도 우리는 좁은 마음으로 뛰어넘지 못하고 참 이렇게들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까. 이 지구에서도 지금 인간이 되려고 무척 애쓰는 게 있습니다. 모습을 차츰차츰 바꿔 가면서 가다가 보니까 인간을 봐야만 자기가 그 모습을 타고나겠기에 인간을 납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납치해서 그 모형대로 그걸 봤으면 바로 자기 몸을 그대로 진화시키는 겁니다. 그러한 능력은 있으나 바로 봐야, 먹어 봐야 또는 들어 봐야 모든 것을 알겠기에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서로 경쟁으로써 발전을 이룬 겁니다. 우린 인간 되는 것도 경쟁을 해서 인간이 됐고 지금 살아나가는 것도 경쟁을 하면서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도량이라는 자체, 우주 전체의 한도량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치열한 경쟁 상태에 있는 겁니다.
이쪽에서는 저쪽 정보를 수집하려고 하고 저쪽에서는 이쪽 것을 수집하려고 하는 문제들이 지금도 허다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세계적인 문제에서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를 먹으려 하고 저 나라에서 이 나라를 뺏으려 하는 그런 경쟁 속에서 우리는 지금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국내의 우리 사정은 더 치열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마음 한생각이 그렇게 넓고 묘하고 또 생동력 있게 나갈 수 있고 삶의 보람을 느끼는 대인이라면 우리는 앉아서 호국불교를 할 수 있고 앉아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고 앉아서 우주에 상응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은 몸이 나서서 호국불교를 하고 우주에 상응하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몸 하나가 지금 미국을 가려 해도 그렇고 막이 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몸뚱이가 다니면서 불교를 펴는 시기는 벌써 지났습니다. 한생각으로써 우주를 둘러쌀 수 있는 그러한 마음, 한마음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우리 인간 하나하나에게 더불어 주어져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광대무변한 이 법을 상실하고 배척하고 자기 자신의 그 광대한 능력을 아주 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멸시 안 한다고 하지마는 그것은 여러분을 이끌어 온 그 은혜를 잊고 있는 거고 또 자기 능력을 아주 포기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여러분에게 그렇게 능력이 있다는 것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주 대천세계로부터 우리 모두가 이렇게 등장이 됐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처음에 미생물로부터 큰 짐승으로 이렇게, 물에서도 나고 화(化)해서도 나고 그 후에는 알로 낳게 됐고 태로 낳게 됐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 거죠.
비유를 해서 지금 지구에서도 세계적으로 볼 때에 ‘인공위성을 띄운다, 우주정거장을 세운다’ 이러는 문제도 없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지 않고 무허가로서 우주에 상응도 하지 않고 회의도 안 하고 서류도 올리지 않고 우주정거장을 세운다면 우주정거장은 파괴될 수 있는 우려가 십중팔구입니다.
과학적인 문제가 거론된다 할지라도 우리가 마음의 그 섭리에 서로 상응을 할 줄 모른다면, 바로 회의를 하지 않고 무시하고 들어가는 게 되기 때문에…. 그 뜻을 모르거든요. 우리의 울타리 안에서 울타리 바깥으로 권위를 쥐고 있는,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고 또 알 수 없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는 것은, 부딪치면 부딪치는 대로 나가는 겁니다. 타 버리고 나가고 부서집니다.
모두 핼리혜성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들을 합니다. 그런데 난 말을 못하겠습니다. 그건 왜? 양면이 동등하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한다면, 여기로 비유해서 정보국이라고 합시다. 정보국에서 정보국장이 하달을 해서 정보원이 어떠한 순찰을 돌 때에, 잘하는 부분은 잘한다고 서류가 올라갈 거고 못하는 부분은 아예 파괴시킨다는 얘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파괴를 시키는 게 그냥 불이 나거나 그러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병이 들거나 어떠한 나라든지 재앙이 옵니다. 파산이 되고 국토가 나빠지고 이렇게 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그건 나쁘게 한다 할 수도 없고 좋게 한다 할 수도 없는 양면이 있으니 그 말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나라의 임금의 공덕이 크면 백성들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백성들의 공덕이 크면 임금의 이름이 상천에 오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양면이 다, 우리가 마음 가짐가짐을 잘 가짐으로써 지혜로운, 생동력 있는 발전을 이룹니다. 그러니 한마음 한뜻으로써 돌아가는 이 원리를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생각나는 대로 일심에서 나가는 거 일심으로 든다. 일심으로 들면 일심에서 모든 일체 만법이 나가고 든다. 그러니 네 주인공을 발견해라! 네 주인공을 발견할 때는 부처님을 봐도 부처님 형상이 내 형상이고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이니 절대로 둘로 봐서는 안 된다 하는 겁니다.

진실하게 살기가 너무 힘들어
요즘은 더욱더 고단한 삶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저희 부부야 이날까지 어떻게든 살아왔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저희 자식들에게까지 이런 고단한 삶을 살게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제 자신은 양심 속이지 않고 부처님께 누 되지 않게 성실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요즘 세상은 진실하게만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도 오직 진실하게만 살아야겠지요?
항상 얘기해 드린 거요, 오신통이라는 그 불바퀴 속에서 정신과의 논문도 나올 수 있고 공과의 논문도 나올 수 있고 천문학과의 논문도 나올 수 있고 심리학과의 논문도 나올 수 있고 과학자의 논문도 나올 수 있고 천체물리학자의 논문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의학의 논문도 나오고, 모두 전체예요. 이 속에서 다 나오는 거니 이것만 터득한다면 여러분이 어떠한 거든지 다 해결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 자기가 나이를 먹었으면 자식들한테라도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이라고 할 건 없지만 불가사의한 것도 아닙니다. 모두 갖추어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겁니다. 발견해서 쓸 수 있다면 앞으로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는 점차적으로 기도 약해지고 인간은 자꾸 병도 잦아지고 그럴 시기가 앞으로 다가오지 않나 이렇게 보죠. 왜? 자기 있는 것만 다 쓰고 있는 힘을 다 들여서 정신 노력을 해서 연구를 하고 배우는 것도 너무 그냥 어지럽게 과목을 두고 배우고 이러기 때문에 모든 기가 빠지죠. 기가 없어지면 기를 자꾸 넣어 가면서 써야 될 텐데 기를 넣을 줄을 모른다면, 꼭 차에 기름 넣을 줄 모르듯이 그렇게 된다면 차가 굴러갑니까? 지구도 유지하려면 타의에서 그 모든 것을, 광력이나 전력 자력을 또 끌어들여서 우리가 그 모두를 지탱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의 한마음이란 말입니다. 물도 생명이 있고 불도 생명이 있고 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생명과 둘이 아닐 때에 바로 한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능력을 개시할 수가 있는 거죠.
여러분 마음은 체가 없기 때문에 물 한 그릇에다가, 예를 들어 바다가 물 한 그릇이라고 한다면 더러운 거든 깨끗한 거든 거기다 다 부어 보십시오, 두드러지나. 콩 한 알갱이에다가 우주 삼라만상 대천세계 전부를 넣는다 하더라도, 부처님 세계를 다 넣는다 하더라도 그릇이 모자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줄지도 않고 늘지도 않고 이렇게 샘물 나오는 것과 같아서 여러분 마음속의 주인공, 그 주인공 안의 안테나가 바로 샘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와 같은 겁니다. 내가 깨달을 때까지는 그 수도꼭지가 필요합니다. 나중에 그 수도꼭지는 자연적으로 그대로 물이 있는 거기 때문에 수도꼭지다 아니다 할 거 없이 그냥 자기가 먹고 싶으면 퍼 먹고 주고 싶으면 퍼 주고 이러는 거지 여기 수도꼭지를 꼭 쥐어야 된다 이런 것도 없죠.
알고 보면 그렇지만 처음부터 아는 척하고 처음부터 “이거면 족하지.” 처음부터 “이것이 없다는데 뭘 쥘 게 있어?” 아주 그냥 시험도 안 해 보고 자기가 지혜도 넓히지 못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 와서 절을 하는 것이 누구한테다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익어서, 무르익어서, 고개가 숙어져 두루 자기 나무에서 자기 실과가 무르익어서 만 가지 맛을 낼 수 있는 그런 요소, 또 씨앗이 내년을 바라볼 수 있는, 영원한 내년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씨앗이 되라고 그런 거죠.
그래서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절을 시키는 거지 누가 절을 받기 위해서 그럽니까? 얼마나 귀찮은 줄 아십니까, 그것도? 사실은 아주 그게, 내가 받는 건 아니지만 그 대상이 된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줄 아세요? 그렇지만 마다하지 않고 그냥 심부름을 하는 겁니다. 절을 받는 것도 일종의 심부름이에요. 그게 소홀한 일인 줄 아십니까? 제때에 참, 여러분처럼 배고플 때, 먹고 싶을 때 가서 턱 사서 갖다 끓여서 해 먹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에요. 남이 주는 대로 그저 맛있는 걸 주면 맛있는 거 나눠서 먹고, 맛이 없는 거 주면 맛이 없는 거 나눠서 먹고, 맛이 있는 거면 그분들이 오면 하나씩 더 나눠 주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이에요. 나는 이런 말을 할 때는 때로는 이 가슴에서 눈물이 흘러요, 그냥.
진실한 것은 자기만이 알지 누가 알아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알아 달라는 것도 그건 습이죠. 그것도 인과가 되는 거죠. 알아 달라고 할 게 뭐 있습니까. 나만이, 내가 아는 것이 우주 법계에서 아는 것을 뭘 알아 달라고 합니까? 부처님이 내 마음에 있는데 뭣 하러 뭣 때문에 바깥에서 그렇게 허우적허우적하고 찾습니까? 내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믿고 있는데, 그리고 사실이 그런데 어떻게 바깥에서 허우적거립니까? 그거는 부처님에 누가 되는 일이죠.
그래서 나는 항상 그럽니다. 나는 일생을 통해서도, 아니 영원히 죽고 죽고 또 죽어서 가루가 된들 누가 되게 하지 않게 꼭 당신이 해야 한다고 날더러 돌아다보고 내가 그럽니다. 누가 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입니다. 사람이 살면 이 껍데기 가지고 얼마나 살기에 헛된 말을 하고 살겠습니까. 내가 만약에 무지렁이가 아니고 만약에 상식이나 학식을 많이 배워서 그렇게 사는 사람 같았다면, 그리고 잘났다면 얼마나 남한테 가증스럽게 거짓말을 잘하고 얼마나 사기질을 잘했을까 하는 생각에서 몸서리가 쳐진다고요. 내가 이렇게 난 게 잘됐고 못 배운 게 잘됐고, 정말이지 차라리 어디 가서 한 그릇 얻어먹는 게 낫지 그럴 수가 없죠.
여러분, 한 철 살기에 우리 사람답게 삽시다. 그리고 어떠한 교를 가지고 있든 우리 한마음 한뜻으로서 누구를 미워하지 맙시다. 그리고 경계하지 말고, 적어도 마음으로는 그렇게 가짐가짐을 갖고 언제나 항상 말조심하고요.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한생각 하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게 업보가 얼마나 큰지 모를 겁니다, 아마. 그냥 추측으로 생각하고 그냥 막 생각하고 말하고 이런다면 그건 업보가 큽니다. 그러니 어떠한 잘못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생각이지 그건 나하고는 상관없이 생각하십시오, 각자. 남이 칼로 찔러 죽인다, “너 이놈! 오늘 저녁에 너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러더라도 허허 하고 빙긋이 웃을 수 있는, 그리고 그 사람을 탓 안 하고 겁내지 않고 당당하게 ‘내가 있으니까 찔러 죽이러 온다지, 내가 없다면 찔러 죽일 게 뭐 있어서 오겠나.’ 하고선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칼을 들지도 못할 겁니다.

마음을 마음대로 쓰면서 살려면
마음을 마음대로 쓰고 산다면 어떤 것도 괴로울 것이 없을 텐데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 것, 내 몸, 내 가족, 내 사람이라는 옹졸한 마음으로 일평생을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이 중생의 처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스님, 마음을 마음대로 쓰면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도 마음대로 못하는 게 바로 지금 현실이죠. 자기가 마음으로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요. 이게 바로 줄이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지금 요런 주머니 안에서 요렇게 대롱대롱 매달려서 요 안에서만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창살 없는 감옥이죠. 창살이 없으면서도 창살이 있다는 얘기예요.
뭐 한번 생각해 보시면 다 아실 겁니다. 이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서 한번 물건을 던져 보면 물건이 그냥 산산조각이 나고 그냥 없어져 버리죠? 그러니까 여기 앉아서 여러분의 집을 한번 가 보면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음이 여기에서 집에 가는 거나 저 문 바깥을 가는 거나 우주 전체를 돌아가는 거나 태양계를 가는 거나 모두 차이가 없어요. 마음이라는 건 가깝고 멀고가 없어요. 그래서 빛보다 더 빠른 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보는 거죠. 빛은 한계가 있지만 마음은 한계도 없어요.
그러니 이 광대하고 무변한 묘법을, 마음의 묘법을 여러분은 잘 아셔야 돼요. 그런데 때로는 이사를 잘못 가면 어쩌나, 손이 있느니 없느니 하거든요. 또 가서도 뭐가 어떻게 되면 조상의 탓, 집 이사 간 탓을 한단 말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매사 게 다 탓으로 돌아가요. 그게 탓으로 돌아가는 것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영계성이 있으니까 모든 게 오겠지만, 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용광로와 같은 데가 있으니까 모든 거를 거기다가 집어넣으면 스스로 재생이 돼서 나가요. 그 심령에다가 영을 만 개를 집어넣었던들 두드러집니까? 악한 거든지 선한 거든지 다 들어가도 두드러지지 않아요. 그게 부처님 법이니까요. 여러분의 법이 부처님 법이요 부처님 법이 여러분의 법이니까요.
바다에 빗물이 쏟아져 들어가는데 두드러집디까? 그냥 옆에서 들어갔다고 빗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바닷물하고 따로따로 있습디까? 그런 거 보았어요? 그런 거 못 보셨죠? 영에다가 영을 백 개 만 개 천 개, 이 우주 전체를 갖다가 집어넣어도 두드러지지 않아요. 그걸 다 꺼내 놔도 줄지 않아요. 안 그렇습니까? 넣어도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고 꺼내도 꺼내도 줄지 않고. 이거는 정말이지 세세생생에 광대무변하고 조상 자식들 다 건지는 공부고, 또 점점 공부를 더 하다 보면 세상을 다 건질 수 있는 공부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죽어 가는 사람이 안 죽는 게 아닙니다. 죽는 사람이, 멸하는 사람이 있어야 생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게 양면이 있기 때문에 둥글게 돌아가고, 둥글게 돌아가기 때문에 끊어지지 않는 진리란 것이 나왔죠.
생활의 어떠한 것도 그 오온(五蘊) 속에서 다 나오는 겁니다. 손을 보십시오. 손가락을 볼 때는 다섯 개가 이렇게 뚜렷하지만 주먹을 쥐었을 때는 한 주먹입니다. 이 세상도 그렇게 한세상입니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바로 한세상이죠. 여러분이 이렇게 살아도 한세상, 저렇게 살아도 한세상이라면 좀더 우리가 인간의 삶에 대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영원 불생불멸할 수 있는 그런 각오를 하시고 불심을 좀더 돈독하게 가지시고, 진실하게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진실한 믿음을 가질 때, 부처님 앞에 와서 진심으로써 삼 배를 올릴 때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이고 부처님 몸이 내 몸이요 바로 부처님의 그 무한의 능력이 내 능력이기도 할 터인즉, 내가 아프다면 바로 내 지극한 마음속에서 의사가 나올 것이고, 바로 지극한 마음에서 가난을 물리칠 것이고, 지극한 마음속에서 유생 무생(有生無生)이 다 한마음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까 병으로 말하자면 내 마음의 그 능력의 빛이 바로 세균의, 보이지 않는 세균의 모든 것을 뿌리칠 수 있는, 즉 말하자면 빛에 의해서 녹아 버릴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생기고, 또 녹아 버리는가 하면 피해서 그것은 다시 몸이 화(化)해서 다른 걸로 창조가 되기도 하니 죽이는 게 죽이는 게 아니고 살리는 게 살리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이겁니다.
2008-06-30 오후 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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