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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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유철마 비구니
위산영우(山靈祐: 771~853) 선사는 백장 선사의 법을 계승하여 호남성 장사에 있는 위산 동경사에서 선법을 펼친 당대의 고승으로서 선종 오가(五家 임제ㆍ위앙ㆍ조동ㆍ운문ㆍ법안종) 가운데 최초로 독자적인 선법을 펼친 위앙종의 조사이다. 위산 선사와 더불어 위앙종의 근간을 형성한 그의 제자 앙산혜적(仰山慧寂: 802~887) 선사를 참문(參問)해 크게 깨달은 비구니선사가 바로 유철마(劉鐵磨)다.
성이 유씨요 ‘쇠 맷돌’이란 별명을 얻은 유철마 스님은 탁월한 선기(禪機)로 좋고 나쁜 일체의 경계를 맷돌에 넣고 갈아버리는 선풍(禪風)으로 유명했다. 선종 최고의 어록 <벽암록>에서 위산 선사와 법거량을 나누고 <전등록>에서도 자호(子湖) 선사와 선문답을 나눌 정도로 걸출한 선객이었다. 위산에서 10리 떨어진 거리에 암자를 짓고 살았던 철마 스님은 성별과 지위고하를 초월, 활달한 가풍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철마 스님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벽암록> 제17칙의 공안이다.
“유철마가 위산에 이르자, 위산 화상이 그 비구니에게 말했다.
‘이 늙은 암소(老牛), 그대 왔는가?’
유철마가 말했다.
‘내일 오대산에서 큰 대중공양이 있답니다. 스님! 가시겠습니까?’
위산 화상이 자리에 옆으로 누웠다.
철마는 곧장 법당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 문답에서 “늙은 암소, 그대 왔는가?”라는 친근한 인사말은 철마 스님의 안목을 시험하기 위해 던진 미끼다. 위산 선사는 평생 당신을 ‘물소(佛性을 상징)’라고 부르고, 죽은 뒤에 산 아래 신도집의 소로 다시 태어나 이류중행(異類中行: 축생과 더불어 살며 보살행하는 것)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늙은 암소’라고 부르는 것은 자기와 같이 본성을 깨달아 보살의 삶을 살아가는 선객으로 인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에, 철마 스님은 “내일 오대산에서 큰 대중공양이 있으니, 스님! 가시겠습니까?”하고, 뜻밖의 대답을 한다. 옛날부터 일만의 보살과 함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성지로 신앙화 된 산서성 오대산은 호남에 있는 위산과 수만리나 떨어진 곳이다. 걸어서 몇 달이 걸리는 문수산에, 그것도 대중공양(齋)을 받으러 가자는 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격식 밖의 말(格外語)’이다. 이 화두는 철마 스님이 위산 선사처럼 세간 속에 살면서도 시공을 초월해 사는 자유인이자, 번뇌망념을 초월한 성자인 아라한(應供)처럼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할 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문수보살의 상주처인 오대산은 절대 깨달음의 경지로서 일체의 차별경계를 초월한 ‘보살의 세계(菩薩住處)’이기도 하다.
그런데 위산 선사는 철마 스님의 대답에 아무런 말없이 몸을 옆으로 누워버리고 만다. 당신의 본래면목인 물소가 되어 벌렁 누운 뜻은 무엇일까. 배도 부른데 대중공양을 하기 위해 멀리 오대산까지 갈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 여기 누워서 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일까. 이미 깨달음을 얻어 일체 구하거나 집착하거나 분별하지 않는 무사무심(無事無心)의 한가한 도인에게 문수보살이니, 대중공양이니, 깨달음이니, 선문답이 하는 말이 무슨 소용 있을까. 오로지 쉬어온대로 ‘쉬고 쉴 뿐(休去歇去)’이다.
이런 위산 선사의 모습을 보고, 철마 스님 역시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고, ‘곧장 법당 밖으로 나가 버린다’. 큰스님은 큰스님이고, 철마는 철마일 뿐 대장부(大丈夫)인 것은 마찬가지란 자신감이다.
다음은 철마 스님과 자호 선사와의 문답. 자호 스님이 철마 비구니가 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쇠 맷돌 아닌가?”
“그렇습니다.”
“왼쪽으로 도는가, 오른쪽으로 도는가?”
“스님, 그렇게 잘못하지 마십시오.”
자호 스님은 주먹으로 때렸다.
이 공안에서 자호 선사는 철마 스님이 오자, ‘자네는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며 어디를 그렇게 헤매고 다니는가?’하고 테스트를 한다. 그러자 철마 스님은 ‘왼쪽, 오른쪽 헤맨 적 없으니 분별하지 마시라’고 대든다. 그러자, 자호 선사는 일체의 시비분별을 차단하는 방(棒)으로 문답을 끝낸다. 여기서 두 선객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분별심일 뿐이다. 우리 스스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 낼 수 있는 선객이 되는 것이 급선무다. 김성우 기자
2008-06-30 오후 4: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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