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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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술 보다 마음의 향기
술은 나의 힘
“야, 너 정말 술 한 잔도 안 하는 거야?” 친구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응, 안 먹어.” 김양은 슬며시 미소가 나왔다. 친구의 모습이 불과 얼마 전까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인 김양은 술을 잘 하는 편이었다. 김양은 술을 마셔야 평소 하지 않던 속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고 믿었다. 누구와 갈등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술 한 잔 하며 풀어버려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간혹 술을 못하는 친구가 있으면 답답했다. 그 친구와는 솔직한 대화를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 술자리는 2차, 3차까지 이어지기 일쑤였다. 부모님은 “너 정말 그렇게 술 마시고 다녀도 되는 거니?”하며 염려하였다. 김양은 의기양양하게 “이래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거예요.” 하였다. 어느 날 거래처 직원과 중요한 이야기를 할 일이 생겼다. 그에게 전화를 해서 “이 대리님, 오늘 저녁 같이하세요. 제가 대접할게요.” 그러면서 속으로 오늘 그 사람을 취하도록 해서 속을 터놓고 대화를 해야지. 그래야 이 일을 잘 성사시킬 수 있을 거다 라고 생각하였다.

참선은 나의 힘
그런데 뜻밖에도 이 대리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따라주기만 할 뿐 자신은 마시지 않았다. 김양은 실망하였다. ‘아휴, 답답한 사람이네. 오늘 깊은 얘기 하기는 틀렸다’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진지하고 솔직한 자세에 믿음이 갔다. 김양은 자신도 모르게 역시 진지하게 일을 의논하게 되었다. 식사가 끝날 때 김양이 “2차 가서 이야기해요”라고 했더니 이 대리는 “네, 2차는 제가 모실게요”하더니 웬 찻집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김양은 웃음이 나왔다. 아니, 노인들도 아니고 웬 찻집인가. 그러나 이 대리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희한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절로 자기 이야기가 나왔다. 전통차를 마시니 술은 깨는데 대화는 오히려 무르익어갔다. ‘참 이상하네’ 김양은 생각했다. 어떻게 맨 정신으로 취한 것 같이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걸까. 그날 밤 열시에 취기가 전혀 없이 들어오니 어머니가 “너 오늘 늦을 거라고 했잖니?” 하며 놀라는 표정이다.
그 후 여러 번 만나면서 이 대리가 참선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김양의 회사에도 명상모임이 있으니 한번 꼭 나가보라고 했다. 제일 솔깃한 말은 “술 안 마셔도 취한 것처럼 마음을 열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호기심에 점심시간 명상모임에 나가보았다. 처음엔 좌선하고 있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런데 점심에 명상을 하면 이상하게 오후시간에 힘이 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재미삼아 나가기 시작하여 몇 달이 흐르자 그 모임에서 하는 대화시간이 기다려졌다. 환한 대낮에 잠시나마 자신의 얘기들을 하는 시간이 어느새 청량수처럼 느껴졌다. ‘이럴 수도 있구나. 취하지 않고도 마음을 열고 서로 믿을 수가 있구나.’
김양은 그렇게 조금씩 참선의 맛을 들여갔다. 깊이 마음을 집중하면 평화로운 기운이 온 몸을 감쌌다. 그 행복한 느낌은 아무리 취해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회식에서 술을 먹는 양이 조금씩 줄어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별로 눈치 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제 김양은 취하지 않아도 솔직하고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술을 줄이자 무엇보다 다음 날 피곤하지 않아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되고 건강도 좋아졌다.

마음의 향기
오늘은 모처럼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런데 밤에 작성할 자료가 있어 술은 마시지 않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무조건 취하고 볼 일이었다. 오늘은 술은 마시지 않고 친구들과 대화만 했다. 그러면서 문득 친구들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취해서 하는 말이나 행동이 별로 아름답거나 좋아보이지 않았다. “제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예전엔 저도 그러고 지냈죠. 왜냐하면 그게 전부인줄 알았거든요. 마음 속 참나를 만나는 법을 몰랐거든요.”
김양은 술의 힘을 빌려야만 솔직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되었다. 마음을 집중하고 다스려가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더 잘 수용하고 이해하는 힘을 얻고 있다. 이제 술이 아닌 마음의 향기와 법문의 향기에 취해지내고 싶다고 한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06-23 오후 1: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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