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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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종교지도자
세상이 아무리 급격하게 변한다고 하지만, 요즈음처럼 급변한 적도 드물 것이다. 유력한 상대 후보를 500만 표 이상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되어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세 달 만에 10% 지지대로 떨어지고, 연일 몰려드는 촛불 시위대들을 막느라 청와대로 향하는 길마다 쥐 한 마리 빠져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촘촘하게 경찰차로 막더니, 급기야 컨테이너 박스를 용접해서 ‘컨테이너 만리장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게 하였다.
이번 사태가 겉으로 보기에는 ‘광우병 감염이 우려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불거졌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훨씬 복잡한 일들이 얽혀있는 것 같다.
취임도 하기 전부터 ‘영어 몰입 교육’을 비롯하여 중요 정책을 마구 쏟아내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한반도 대운하’ 강행의 뜻을 밝혀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사게 한데다가, 내각 구성원과 청와대 고위급 인사에도 재산 축적 과정이 석연치 않은 사람들과 특정 종교와 학교 인맥을 위주로 하여 ‘고소영’ ‘강부자’니 하는 우스갯말까지 나오게 하였다. 여기에다 유가 급상에 따라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들이 그야말로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엄청난 표 차이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인물됨과 정책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순전히 전임 대통령과 전 정권의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취임 이후 국민들의 눈에 비친 그의 언행은 마치 하늘에서 “정권을 맡아야 한다”는 계시라도 받은 양, 언행을 안하무인(眼下無人)식으로 마구 해대는 것에 다름없었다.
게다가 청와대로 가는 길을 봉쇄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으면, 실상을 바르게 파악하려 노력하고 진짜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를 쓰는 것이 당연한데도 “초를 사는 비용은 누가 댔느냐?”는 등등,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려는 오만함만을 보여주었다.
뒤늦게 ‘나도 조금은 잘못했다’는 식으로 위기를 벗어나려 애를 쓰는 시늉을 하면서 각계와의 대화를 들고 나와 불교ㆍ개신교계와 가톨릭을 비롯한 종교계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조차 종교 지도자를 통해서 국민들의 바람[願]과 진솔한 목소리를 들으려하기보다는,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에 급급했다는 느낌을 주어 많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장엄(莊嚴)용 대화 모임 아니었느냐?”는 비판을 듣게 되었다.
심지어 전임 대통령의 ‘말’에 실망했던 국민들에게서 “구관이 명관이다. 그래도 그때는 이렇게 경박스럽지는 않았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물론 현실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도 없이, 이런 식의 면피(免避)용ㆍ장식(裝飾)용 대화 자리에 나가서 사진 몇 장 찍고, 밥 한 끼 먹고 덕담 몇 마디 나누는 것을 자신들의 대단한 권리인 양 여기는 종교 지도자들도 문제가 많다. 스스로 대표적인 종교 교단의 지도자를 자처한다면, 청와대까지 가서 대통령을 만날 때에는 만나는 목적이 무엇인지 잘 따지고, 가서 할 말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준비했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만 세력 때문입니다”와 같은 식으로 권력자 앞에서 아부하는 말을 하지 않고, 국민들을 대신해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을 솔직하게 질타할 자신감을 갖추었어야 한다.
그러나 몇 차례 열린 각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그런 자신감을 보여주고 국민들의 진짜 목소리를 전해주고 국민과 대통령 자신을 위해 냉정한 비판을 해준 지도자는 없었던 것 같다.
잘 알듯이,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의사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식으로는 모든 종류의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훈시’나 ‘지시’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6월 대통령과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 전달에 불과했다. 그 첫 번째 책임은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연출한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있지만, ‘책임 회피용 의사(擬似) 대화’에 나가 대통령의 일방적인 설교를 듣고 기념사진 몇 장 찍고 온 종교지도자들 또한 큰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8-06-17 오전 10: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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