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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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온’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번 그 개요만을‘유식론’에서 인용하여 설명하겠습니다.
마산의 여러분과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참으로 기쁘고 반갑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더운데도 와서 맨바닥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이시라면 뭐는 못하겠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이렇게 맞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를 맞이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을 끌고 다니는 여러분의 그 길잡이를 맞이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지금 누가 끌고 가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가는지 그것을 종잡을 수 없어서 미래의 정신세계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물질에만 여념이 없는 분들이 많으시리라고 믿습니다. 정신계를 한 번도 실험해 보지 않고, 나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괴롭고 자유스럽지 못하게 사는 거지요.
오늘 이렇게 마산에 왔으니 상식적으로 알아 두어야 할 문제들을 말씀드리지요. 제가 미국에 갔을 때에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거기 사람들은 불교라는 것이 만날 미신만 숭상하고 그러는 종교인 줄 알았답니다. 거기에는 일본 불교, 티베트 불교, 기독교, 가톨릭, 통일교의 여러 분이 많이 모이셨습니다. 그때 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풀 한 포기도 불교 아닌 게 없다.”라고요. 상점 간판마다 이름이 있듯이 종교도 그와 같습니다. 내 종교가 옳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생각이지 만약에 귀머거리가 “나는 뇌성벽력이 울리고 천둥이 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나는 천둥 치는 걸 모른다. 그러니 천둥이라는 건 없다.” 이렇게 말한다면 귀머거리 아닌 사람이 듣고는 “아, 천둥 번개가 왜 없느냐. 지금도 천둥이 쳤다. 네가 못 듣는 거지.” 하고 얘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첫째 말입니다, 불교라고 할 때, 불(佛)이라는 건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서로가 말하고 서로 화목하게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도 바로 교(敎)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아닌 게 하나도 없고 풀 한 포기도 불교 아닌 게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똑같으니 그 아픔이 똑같고, 아픔이 똑같으니 부모자식지간 또는 형제지간도 모두가 다 똑같을 겁니다. 벌레 하나도 차이가 없습니다. 저런 벌레도 생명이 있고 귀중하지요.
또 한 가지는 우주의 근본이 인간의 마음의 근본에 직결돼 있고 이 세상만사의 살림살이가 우리의 근본 마음에 가설이 돼 있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세번째는 우리가 공생 공용 공체 공식화 하고 돌아가는, 조화를 이루고 돌아가는 이 사실도 또 아셔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는 물질세계의 50%만 가지고는 도저히 살아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은 무상하다고 하지요. 부서지고 깨지고 변하고 없어지고 죽고, 이렇게 변화무쌍합니다. 그것이 바로 무상이라고 말하는 이치입니다. 우리 사람 살아나가는 도리가 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직결돼 있는 우리 한마음이 어떻게 돼야 하나 하는 것도 한번 연구해 보셔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이런 게 있습니다. 지금 세 가지를 토막토막 끊어서 했는데, 두서없는 말이라고 흉보지 마시고 잘 새겨들으세요. 인연성, 즉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상점에 가서 뭐를 사도 인연이요, 꽃을 봐도 인연이요, 마당을 걸어도 인연이요, 바람이 불어도 바람과 인연이요, 불을 봐도 불하고도 인연이요, 모두가 인연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인연에 따라서 같이 조화를 이루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에 있어서는 크고 작고 못나고 잘나고 높고 낮고 이런 게 둘이 아니요, 동서가 둘이 아니요, 여자 남자가 둘이 아니요, 지렁이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이 둘이 아니요, 모두가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옛날에 이런 말을 했죠.

만봉봉에 연꽃 피어 싱긋 웃으니
삼라만상 대천세계를 다 집어넣었더라.
한마음 도리에 근본이 들었으니
삼라만상 대천세계에
모든 생명과 모습들은 다 거기에
한마음, 한법, 한마당, 바로 한발로 디뎠느니라.

그런 이치가 있듯이 말입니다. 지금 불바퀴가 돌아가는데, 수없는 불바퀴가 돌아가고 별성들이 반짝거리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몸속에도 조그마한 별들이, 생명들이, 모습들이, 의식들이 전부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 몸뚱이는 지금 스러져 가고 있을 겁니다. 송장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왜, 어디서 생겼나? 이게 인과성, 인연성에 대한 얘깁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살던 인과, 즉 말하자면 악과 선은 모두 여러분 속에 있으니 때에 따라서는 이런 게 치밀기도 하고, 타의에서 들어오는 유전성이나 세균성이나 영계성이나 업보성이나 인과성이 내 안으로부터, 바깥으로부터 전부 작용을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사는 것을 보신다면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실 것이요, 여러분이 지금 행하고 가는 거를 가만히 생각해 보고 지켜보신다면 미래에 어떻게 올 것이라는 것을 아마 짐작하시고도 남음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악과 선은 거기에 뭉쳐 있다가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법(四諦法)을 설하신 거지요. 고(苦)라는 것이 고덩어리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고덩어리를 누가 그렇게 지었느냐 이겁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어서 이렇게 짊어지고 나왔는가 이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끌어 드리는 공부는, 마음은 체가 없으니 마음과 마음, 의식들을 한마음으로 이끌어 가시라는 겁니다. ‘한마음’ 하면 모든 내면세계나 외부세계를 한데 합쳐서 말하는 겁니다. 생명 있는 거, 마음을 움죽거리는 거, 말없이 말을 이심전심으로 전달하고 돌아가는 무정물, 식물 이런 모든 것들의 그 마음들이 한데 모여서, 모두 이 안에 있는 생명들의 그 의식들, 마음들이 같이 한데 모여서 모두 한마음으로 돌아갑니다. ‘한마음’ 하는 것은 모두가 직결돼 있고 가설이 돼 있기 때문에 ‘한마음’ 하는 겁니다. 한 부처님께서 한 꽃을 들었을 때에 그 꽃 안에 이 세상만사가 다 들어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오늘, 두서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앞뒤를 잘 재서 ‘하나’로 돌아가신다면 됩니다. ‘하나’로 돌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이 세상을 봤을 거고, 어떻게 상대성 원리가 있을 거고, 어떻게 부처님이 있다 예수님이 있다, 하늘이 있다 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천지, 모든 그 자체를 아시겠습니까? 모든 것은 일시무시요 일종무종입니다. 여러분이 살아나가는 이 자체가 발자취를 짊어지고 다니지도 않고, 자취마다 없어집니다. 모든 게 공해서, 말을 했으면 과거로 금방금방 돌아갑니다. 생각 하나 잘하면 구덩이에서 빼낼 수 있고 생각 하나 잘못하면 구덩이에 빠지게 할 수 있는 것이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마음, 마음! 마음으로 창살 없는 감옥을 만들어 놓고 자기를 꼼짝도 못하게 하는 여러분이 돼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 저 지구 바깥으로 벗어나려 한다면 못 벗어나시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여기 앉아 계시면서 마음으로 집에 갔다 오라고 하면 갔다 올 수 있으시겠죠. 사실 눈 뜨고 보는 것은 한계가 있어도 심안으로는 이 세상만사를 다 보고도 남음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마음의 귀로 듣는 것은 세상만사를 다 탐험하면서 다 듣고, 삼라만상 대천세계 그 모든 생명들의, 모습들의 그 말을 이심전심으로 다 듣고 다 움죽거린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 것은 여러분이 나쁘고 좋고 그것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부처 중생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사대 성인들이 다 따로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일체 부처가 따로 있다 생각하고 또 조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조화를 이루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조상은 따로 있고, 부처는 부처대로 따로 있고 법신은 법신대로 따로 있고, 문수 말입니다. 보현은 보현대로 따로 있고 약사는 약사대로 따로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요기 놓고 빌지 않으면 안 되고 조기 놓고 빌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마음이 좁기 때문에 넓게 지혜를 가지고 살지 못한다 이겁니다. 삼학(三學)은 삼학대로 세 가지가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두, 계(戒)도 정(定)에 들고 혜(慧)도 정에 들었으니, 그 정마저도 모두가 공해서 쉴 사이 없이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니 어떤 걸 할 때 정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해서 모두가 공이라고 했습니다. “공과 색이 둘이 아니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될 수 있으면 알아듣기 쉬운 용어를 쓸 양으로 애를 쓰고 있지만 여러분한테 아마 다 전달되기는 어렵겠죠. 그리고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그랬는데, 또 한 가지 들어 보시렵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컴퓨터도 있고, 숙명통이라는 그 자체를 컴퓨터라고 그랬습니다, 남의 마음을 아는 탐지기와 또 신족통, 즉 말하자면 오고 감이 없는 팩시밀리, 또 천이통 즉 무전통신기, 그리고 우리 천체망원경 천안통, 이 다섯 가지를 바로 오신통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오신통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여러분한테 다 재료로 주어져 있고 그 시스템이 다 돼 있다는 얘깁니다. 어서 귀가 트이고 눈을 떠서 여러분이 자유인이 돼야만이 흐뭇하게 살 수 있고 싱긋이 웃으면서 걸음을 걸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다섯 가지 시스템의 재료는 무엇이냐. 여러분은 지수화풍으로 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광력, 전력, 자력, 통신력이 충만히 재료로 여러분한테 주어져 있는 겁니다.
만약에 그것을 믹서기로 비유한다면 재료가 있어야 거기다 넣고 갈죠. 그런데 재료도 있고 믹서기도 있고 다 있거든요. 그 오신통의 시스템은 바로 믹서기와 똑같다는 얘깁니다. 어느 거든지 들어가면 그냥 갈려 나오는 자동적인 기계와 같습니다. 우린 자동적인 기계와 같다 이겁니다. 무심 도리의 자동적인 기계와 같은 이 자체는 여러분이 과거에 사실 때, 지금 우리가 살듯이 살 때에…, 이거부터 얘기해야겠군요.
미래의 과거는, 미래의 정신세계에서 볼 때에 우리 지금 현재가 과거입니다. 이 과거에서 볼 땐 미래고, 미래에서 볼 땐 과거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정신세계와 이 지금 현실세계가 둘이 아니게 여러분은 그렇게 모두 재료를 가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 교차로를 가지고 있단 얘깁니다. 밤과 낮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가 응용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재료가 다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생각에 모두가 몰두해서 한마음으로 걸림 없이 여여하게 돌아갈 수 있는 능력만 얻는다면…. 그것도 자기 마음입니다. 오래 다녔다고 해서 물리가 터지는 게 아니고, 또 늦게 왔다고 그래서 물리가 안 터지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한생각을 잘하시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과거에 입력됐던, 컴퓨터에 입력이 돼서 지금 현실에 자꾸자꾸 나오는 거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무엇이 우리에게 팔자 운명이라는 이름을 갖게 하고 자꾸 그렇게 병고, 가난, 그 모든 고통과 이름을 갖게 했는가? 컴퓨터에 다 입력이 돼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운명 팔자와 모든 것은 거기에서 다 나오죠. 시시각각으로 나옵니다. 요만한 것 가지고도 싸움 안 할 것도 싸움을 하게 만들어서 그냥 분란을 마구 일으키게 조작을 하는 그놈들이 어느 놈들인가! 바로 내 속에 들어 있는 내놈들입니다. 내 한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을 한마음 속에다 되맡겨 놓고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거기서 해결해라.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거기서 낫게 해라. 행복도 누가 주는 것이 아니고 뺏어 가는 것도 아니고 너한테서만이 나올 수 있는 거니까 네가 행복을 갖다 줘라. 행복을 갖다 주지 못하는 것도 너고, 행복을 갖다 주는 것도 너다.’ 하고 믿고 물러서지 않는 그런 여러분이 돼야만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또, 아까 얘기했듯이 그 재료가 그렇게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사시는 데에 닥치는 대로 용도에 따라서 ‘아! 이것도 거기서 나온 것!’ 하고 놓는다면 해결할 수 있는 거죠. 남이 따귀를 때렸어도 때릴 생각을 하지 않고 내 탓으로 돌리면서 거기다 놓을 수 있는 마음! 내가 없다면 어떻게 상대가 나를 때릴 수 있을까요? 내가 생겨나서 있으니까 나를 때렸지요. 소가 언덕이 있으니까 비비고 가지 괜히 비비고 가나요? 첫째는 내가 이 세상에 난 탓이죠. 그러니까 모든 거는, 잘해도 내 탓이요 못해도 내 탓입니다. 내 주인공만이 나를 이끌어 갈 수 있고, 지금도 이끌어 가고 있고 내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갈 수 있고, 이 세상이 다 조화를 이루고 돌아가듯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부처님께서 꽃 한 송이 들어서 이 세상을 설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만약에 그 컴퓨터에서 나오는 거라면 거기다가 다시 맡겨 놓아서 입력이 다시 될 때 앞서 입력된 게 없어지니까, 인과니 유전성이니 영계성이니 세균성이니 하는 모두가 무너지고 없어진다 이 소립니다. 카세트에 넣었던 것도 되넣으면 앞서 넣은 게 없어지죠? 그렇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쉽게 얘기해 드리는데도 모르신다면 난 어떡합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해서 무너뜨린다면 팔자나 운명이 붙을 자리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병고가 붙을 자리도 없어요.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돌아가는데, 불바퀴처럼 돌아가는데 붙을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불바퀴의 뜻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모르시걸랑 지금 시쳇말로 ‘블랙홀’이라고 하는 것을 보세요. 모두가 그렇게 공해서 돌아가는 겁니다.
이 몸뚱이도 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혹성이 있기 때문에 별성이 여기에 있죠. 우리의 마음들은 별성인 겁니다. 우리 몸뚱이가 사대로 흩어진다 하더라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 별성도 옷을 벗고 바로 같이 이 세상에 환생을 해서 또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자기 그릇에 따라서, 용도에 따라서, 과거에 살아온 그 차원에 따라서 이 세상에 모습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소리죠.
시공이 없이 돌아가면서 체가 없는 마음 마음들이, 헤아릴 수 없는 마음들이, 즉 말하자면 원자 속에서 입자가 많이 나와서 그 입자가 분자가 돼서 이 혹성 바깥에 이렇게 세 겹으로 여섯 겹으로 첩첩이 싸고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신통을 블랙홀이라고 그러면 돌아가는 그 자체를 운영하는 누진통을, 즉 레이더망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그 레이더망은 무엇을 합니까? 들이고 내는 소임을 맡았고 통신하는 소임을 맡았고, 결정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소임을 맡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은 물질이니까 또 그렇다고 봅시다.
그러면 지금 지구 바깥에도 그렇게 자기소임을 다하면서 입자가 바로 분자로 화해서 바깥을 지키고 있는 그런 3단계가 있는 까닭을 아시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몸도 혹성입니다. 그런데 이 3단계의 소임을 어디에서 다하고 있느냐? 법계에서 하는 겁니다. 이 법계는 무엇이냐? 모든 세포 하나하나의 생명들이 털구멍을 통해서 나고 들면서 그렇게 자기소임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겁니다. 즉 말하자면 세균성이나 영계성이 지금 이 허공에 꽉 차 있는데도 우리가 이렇게 다닐 수 있고 발자국을 떼어 놓을 수 있고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균성이나 병균 이런 것들 뭐, 수많은 것이 다 그냥 접해서 사람이 못 살죠. 그런데 (가슴을 짚으시며) 여기서 지켜 준단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고맙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물도 고맙고 불도 고맙고, 바람도 고맙고 흙도 고맙고, 당장 살아야 하니까요! 네? 우리 세포 하나하나의 생명들한테도 다 고맙죠. 소임을 다 해 주니 말입니다. 또 세포 하나하나가 있는 것만이 고마운 게 아니라 오장 육부, 바로 대장 소장 위장 간장 콩팥 방광 척수 척추 이자 식도, 이 모두가 전부 자기소임을 다 해 주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고맙죠. 심장으로부터 그 모든 작용을 누가 하고 있습니까?
지렁이나 벌레를 보면 징그럽다고 하실 테죠? 그런데 그런 것을 입증하는 겁니다. 내가 두서없이 말하더라도 잘 꿰어서 잘 들으십시오. 우리는 수억겁 광년 전으로부터 미생물에서부터 쫓고 쫓기면서 진화돼서 인간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다른 것이 다 생기고 제일 나중에 생겼다고 보지요. 그러면 우리가 그만큼 뒤집고 뒤집어서 인간까지 됐으면…. 인간으로 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인간으로 살다가 좌천하는 수도 있죠. 만약에 독사가 된다면 독사의 집착과 그 의식이 그냥 거기에 모두 동결돼 가지고 습을 벗어나지 못해서 인간으로 환토를 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거죠. 그 모습을 벗기가 말입니다.
그러나 그뿐입니까? 물이 다 똑같은 단물이라 할지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는 것이고 선한 여러분이 잡숫는다면 아주 좋은 피가 될 것입니다. 아주 맑은 이슬이나 비도 그 물은 똑같지만 약초가 먹는다면 사람을 살리고, 독초가 먹는다면 독이 돼서 사람을 죽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음 한생각을 잘하면 바로 약초가 될 것이고 마음 한번 잘못 쓴다면 독초가 될 것입니다. 사람을 칼로 팍 찔러서 죽이는 것만 죽이는 게 아닙니다. 한생각을 잘못해서 한 사람의 목을 끊을 때에 일곱 식구 여덟 식구가 다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극히 조심하고 모든 것은 주인공에 맡기면서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둘이 아닌 까닭에 나는 당신의 종이고 당신의 집일 뿐이지, 당신이 움죽거리라고 하는 대로 움죽거릴 뿐이지 진짜 나를 움죽거리게 하는 건 당신뿐입니다.’ 하고 거기다가 다 맡기고 살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신다면 얼마나 편안하고 얼마나 가정이 화목해지고 얼마나 모두가 빛이 나실 건지 모를 겁니다, 아마.
잘못된다고, 잘못됐다고, 잘못한다고 해서 그게 고정되게 있는 게 아니라 금방 잘못하다가도 잘되게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고 잘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잘하다가도 금방 남한테 악하게 하는 수도 있습니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고정됨이 없는 끝간 데 없는 진리를 탐구하면서 각각 가정에서 살아나가는 도리가 바로 참선이요 좌선입니다. 바로 이것이 끝간 데 없는 진리를 실험하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 생활 자체가 그대로 여여하고 바로 실상이면서 실천인 것입니다. 따라서 도가 따로 없이 우리 생활이 도라고 믿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이렇게 건둥건둥하고 돌아갑니다. 요다음에 질문하실 때는 진실하게 질문하십시오. 그러면 거기에서 진실한 것이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항상 그렇게 한마음 주인공에 맡기고 사세요. 주인공은 죽는 법이 없습니다. 예전에 어느 독립군이 죽어 가면서 “까마귀야 까마귀야, 날 보고 웃지 마라. 너희들이 나를 비웃고 또 나를 이렇게 죽여서 산산조각을 낸다 한들 나야 어찌 너희들이 뺏으랴. 나야 어찌 죽으랴. 영원할 것이니라.” 했더랍니다. 그처럼 우리는 자기의 근본, 바로 자기 생명의 근본 그 자체가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의식으로 뭉쳐진 것이니 바로 그 영혼을 여러분이 다스려야 합니다. 좋고 나쁘고를 아는 여러분의 마음이 다스리는 겁니다. 여러분이 나쁜 거는 나쁜 거대로 다스리고 좋은 거는 좋은 거대로 다스려서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그런 한생각의 도리를 실천한다면 우리 역사도 바꿔 놓을 수가 있고, 우리 삶도 경제도 기술도 지금 발전을 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한생각이 모든 것을 바꿔서 정말이지 신성하게, 땅도 넓어질 수 있고, 뺏어서 넓어지는 게 아닙니다. 또 마음도 넓어질 수 있고 우리 살림살이도 풍족할 수 있고 삶의 보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할 수가 있고 평등하게 생각할 수가 있고 의리와 도리, 도의, 사랑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도리를 알아서 인간의 자유를 얻는다면 우리는 이 세계를 손바닥 안에 넣고 연꽃의 향기를 두루 피울 것입니다. 인공위성을 띄우고 전파를 통해서 세계를 덮는다 할지라도 마음 한생각만은, 빛보다 더 빠른 이 마음 한생각만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공부를 하면 깨친다, 안다 이런 걸 떠나서 나를 끌고 다니는 나 자체가 내 한마음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주인공이 바로 여러분의 불성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참자기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자기를 내동댕이치고 저 바깥에다 ‘내 영혼을 구원해 주시오. 아들을 잘되게 해 주시오, 남편을 잘되게 해 주시오. 부모를 잘되게 해 주시오.’ 하다가 잘못되면 조상 탓이나 하고 그러는데,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이 미신짓을 하니까 미신이 있는 것이지 여러분이 미신짓을 안 한다면 어찌 미신이 있겠습니까?
불교가 미신이나 믿고 어디에 국한된 그런 게 아닙니다. 불교라는 것은 끝간 데 없는 진리를, 평등한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 자체가 바로 불교인 것이고, 바로 생활이면서 진리인 것입니다. 음식이나 놓고 목탁이나 두들기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풀 한 포기도 불교 아닌 것이 없고 땀방울 하나도 불교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나 자신을 끌고 다니는 그 근본 자체를 좀 더 생각해 보시고 돌아보시고 실험해 보시고 체험해 보신다면 나의 이 두서없는 말이 어떤 뜻인지 좀 아실 겁니다. 그건 글귀로도 알아낼 수 없는 것이고, 경구로도 알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못났든 잘났든, 배웠든 못 배웠든, 위대하든 위대하지 않든 여러분의 마음속에, 바로 여러분을 끌고 가는 그 자체가 여러분을 그렇게 이끌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기가 빠지면 기도 넣어 줄 것이고, 모든 점에서 다 그렇습니다. 병이 나는 것도 거기서 나오는 것인데 거기서 파워를 일으키니까 세상만사가 다 파워가 일어나는 거예요. 한쪽이 파워가 일어나니까 다른 쪽도 파워가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막 일어나는 거죠, 뭐.
(다음 호에 계속)
2008-06-17 오전 10: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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