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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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요연 비구니
중국 당(唐)나라 때, 고안대우(高安大愚) 선사의 제자인 요연(了然) 비구니는 날카로운 기봉으로 선객들을 쩔쩔매게 한 여장부로 <전등록>에 이름을 올린 선사이다. 그는 말산(末山)에서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말산요연(末山了然) 스님이라고 불렸다.
어느 때, 요연 비구니가 말산에 있을 때 관계지한(灌溪志閑 ?~895) 선사가 선지식을 찾아 다니다가 그곳에 들려서 이렇게 말하며 승당 안으로 들어갔다.
“만일 상당하면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선상을 뒤집어 엎으리라.”
요연 비구니가 시자를 보내 물었다.
“스님은 산에 유람다니러 왔습니까? 불법을 위하여 왔습니까?”
관계 화상은 ‘불법을 위하여 왔노라’고 대답했다. 요연 비구니가 법상에 올라앉으니 관계 화상이 앞에 나아가 뵙자, 요연 비구니가 말했다.
“스님은 오늘 어디서 떠났습니까?”
“길 어귀(路口)에서 떠났습니다.”
“왜 덮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로구(路口)는 지명도 되고, 길 어귀를 가리키는 이중의 뜻을 담고 있다.
‘왜 덮어버리지 않는가?’라는 뜻은 ‘길 어귀를 어슬렁거린다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공격이다.
이 말에 관계 선사는 말이 막히고 말았다. 관계 선사는 자존심이 상했고, ‘비구니가 아무리 잘 나도 남자 보다 안목이 뛰어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편견이 남아있다. 이에 관계 선사는 예배하면서도 재차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어떤 것이 말산(末山)입니까?”
“꼭대기가 드러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것이 말산의 주인입니까?”
“남자 모양도 여자 모양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자 관계 선사가 ‘할’을 하면서 “어째서 변하지 못합니까?”하니 “귀신(神)도 아니고 도깨비(鬼)도 아니거늘 변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대답했다.
이 문답에서 ‘말산’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말산요연 스님의 본성(本性)을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요연 스님은 ‘말산은 그 이마를 드러내지 않는다. 비로자나부처님의 머리 위와 같기에 누구도 본 일이 없다’는 뜻의 답변을 하고 있다. 이는 본성, 즉 불성(佛性)은 스스로 체득하는 것일뿐, 볼 수 있거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의미다.
‘그렇다면, 말산에는 어떤 분이 살고 있는가?’란 질문에는 ‘남자도 여자도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관계 선사가 다시 ‘남자도 여자도 없다고 하는데, 스님은 여성이지 않은가? 어째서 여성을 초월하지 못하는가?’하고 질문하자, 요연 스님은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인다.
‘어떻게 그런 가당찮은 질문을 하는가? 본래 성품은 귀신도 도깨비도 아니라네.’
카운터 펀치를 맞은 관계 선사는 요연이 여성의 몸이면서도 성별을 초월해 살아가는 선객임을 느끼게 된다. 불성은 남녀와 노소가 따로 없이 평등함을 자각한 것이다. 요연 비구니는 간단한 문답을 통해 이를 깨우쳤고, 관계 선사는 수좌라는 상(相)을 버리고 편견없이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이에 관계 선사는 이 절에서 3년간 원두(園頭)의 소임을 맡아 수행하였고, 나중에 임제의현(?~867) 선사의 법을 계승한 큰스님이 된다.
이처럼 많은 선객들을 깨달음으로 이끈 요연 비구니가 남긴 오도송은 이러하다.
“오온의 망상 무더기가 그대로 고불당인데(五蘊山頭古佛堂)/ 비로자나 부처님이 주야로 백호광명을 항상 놓고 있네(毘盧晝夜放毫光)/ 만약 여기에서 차별없는 이치를 안다면(若知此處非同異)/ 곧 이 화엄장엄이 시방세계에 두루 하리라(卽時華嚴遍十方).”
우리가 나(我)라고 집착하는 ‘물질과 정신작용’(오온)은 허깨비와 같지만, 오온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대로가 진리의 몸이다.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님을 안다면, 시방세계가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라는 뜻이다. <증도가>의 “배움이 끊어진 일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없애지도 않고 참됨을 구하지도 않네. 무명의 실제 성품이 곧 불성이며 환상의 헛된 몸이 곧 법신이로다”하는 법문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김성우 기자
2008-06-17 오전 10: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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