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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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도 공이고 진심도 공이다
過去已滅 現在不住 未來未至 三際窮之 了不可得 不可得法 則無有心 若無有心 則一切法皆無 行者雖觀心不住 皆無所有 而非無刹那任運覺知念起
일체법이 마음을 따라서 일어났다는 것을 명료하게 알았다면 반드시 일체법을 일으키는 나의 한 생각이 끝내 어떠한 형상일까 하고 회광반조 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마음은 둥근 모습일까 모난 모습일까, 푸른 색깔일까 누런 색깔일까, 또는 시간적으로는 과거ㆍ현재ㆍ미래에 있을까 아니면 내외 중간에 있을까. 과거에 있다고 말한다면 과거는 이미 소멸하였고, 현재라고 한다면 현재는 한 찰라도 정지함이 없이 흘러가고 있고, 미래라고 한다면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마음을 과거ㆍ현재ㆍ미래에서 추궁해 보아도 나의 한 생각을 관찰하는 마음은 끝내 형상을 얻지 못한다. 이 마음은 시간적으로 시작과 끝이 없고, 공간적으로는 특정 방향으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은 내외 중간에 있지도 않으며, 길고 짧고 모나고 둥글지도 않으며, 푸르고 누렇고 붉고 하얗지도 않으며, 과거ㆍ현재ㆍ미래 등 일체 처소와 일체 시간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당체를 구해보아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범부 중생은 만법이 내 마음밖에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여 목전에 나타난 산하대지와 명함색공과 인아시비와 견문각지 등 일체법을 모두 다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때문에 하루종일 분별심으로 유전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마음은 끝내 얻지 못한다는 것과 마음을 따라 일어난 일체법 역시 얻지 못한다는 것을 추궁해서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해도 그 마음은 무감각한 허공이나 목석처럼 무지하지 않다. 그 때문에 한 찰라의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사물에 부딪치는 대로 모두가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의 거울에 환하게 나타난다.
현재 일념은 유정과 무정의 경계에서 분명하게 지각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마음은 임의로 운행하면서 지각해 아는 생각이 일어난다”라고 말한 것이다.

又觀此心念以內有六根 外有六塵 根塵相對 故有識生 根塵未對 識本無生 觀生如是 觀滅亦然 生滅名字 但是假立 生滅心滅 寂滅現前 了無所得 是所謂涅槃空寂之理 其心自止
앞에서 일념을 일으키는 마음이 어느 곳에 있는가를 돌이켜 관찰하여 보았는데, 과거ㆍ현재ㆍ미래에서 추궁해 보아도 끝내 처소가 없었다. 그러나 처소를 얻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찰라 일념이 없는 것이 아니어서 지각해 아는 마음이 임의로 운행하면서 일어난 것이다.
수행자는 이 마음의 일념이 무엇으로 인해서 일어나는지 다시한번 돌이켜 관찰하여야 한다.
우리들의 내적인 마음엔 ‘안 이 비 설 신 의’라는 육근이 있다. 이 ‘근(根)’에는 승의근(勝義根)과 승의근이 의지하는 부진근(浮塵根)이 있는데, 이것은 서로 동일하지가 않다.
부모로부터 태어난 육신을 부진근이라 하는데, 이는 진실하지 않은 허망하고 거짓된 것이기 때문에 이름을 ‘부(浮)’라고 하였고, 견문각지의 작용도 없기 때문에 ‘진(塵)’이라고 명칭하였다.
다음으로 승의근은 범부 육안의 경우엔 보이는 대상이 장애가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오직 천안(天眼)만이 볼 수 있다.
경전에서는 이 승의근에 대해 “안근은 포도가 늘어진 것처럼 생겼고, 이근은 새롭게 둘둘 말린 나뭇잎처럼 생겼고, 비근은 쌍으로 손톱이 늘어진 것처럼 생겼고, 설근은 초생 달처럼 생겼으며, 신근은 허리에 찬 북처럼 생겼고, 의근은 어두운 방처럼 생겼다”라고 말하였다.
승의근은 일을 이루도록 보조하는 뛰어난 능력이 있어 대상경계를 비추면 식이 승의근을 의지해서 발동하게 함으로써 그 작용을 성취한다.
가령 안근은 색경을 볼 수 있고, 이근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의근은 일체법까지도 알 수 있다. 이것이 내육근을 구별한 모습이다.
외적으로는 색 성 향 미 촉 법 등 육진경계가 있는데, 육근과 육진이 마주하여 상호간에 교대로 짝을 이루기 때문에 이 사이에서 육식이 일어난다.
만일 육근과 육진이 상대적으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육식은 일어날 길이 없다. 왜냐하면 육근만이 홑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육진만이 홀로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육근과 육진이 일으키는 주체가 되고, 육식이 그 사이에서 생기하는 대상이 되며, 육근이 상대하는 주체가 되고, 육진이 상대되는 대상이 되어 피차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서 건립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주체로서의 육근과, 대상으로서의 육진과, 일으키는 주체로서의 육진ㆍ육근과, 그를 의지하고 바탕으로 해서 일어나는 육진이 모두 다 허깨비 변화처럼 무상하여 끝내 실제가 없는 공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허망한 인연이 화합하여 육근과 육진이 마주하면 육식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허망한 인연이 따로 분리되고 육근과 육진에서 벗어나게 되면 망상인 육식심은 바로 소멸하게 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육식은 본래 일어남이 없는데, 육근과 육진이 허망하게 화합하는 인연 때문에 있게 된다는 점이다. 육근과 육진은 본래 일어남이 없으며 이도 역시 육식심의 인연으로 인해서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여러 인연이 화합해서 일어나는 것은 실재하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그 당체가 공인 것이다. 일으키는 마음을 돌이켜 관찰해 보았더니 이와 같고, 소멸하는 경계를 돌이켜 관찰해 보았더니 이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해본다면 마음을 관찰해 보았으나 일어나지 않았고, 법을 관찰해 보았어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마음을 관찰해 보았으나 무상하며, 법을 관찰해 보았어도 역시 무상하다. 따라서 “마음을 관찰해보아도 이와 같고 소멸함을 관찰해보아도 역시 그러하다”라고 말하였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일어나면 소멸하고 소멸하면 일어나는 것처럼 생멸이 끝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생멸이라는 명칭과 문자는 단지 임시적으로 성립됐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연이 화합하면 일어나고 인연이 분리되면 소멸하여 허망하고 거짓되고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지 허망하게 생멸이라는 모습을 호칭했을 뿐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이를 돌이켜 관찰한다면 마음을 따라 일어나는 법만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법을 관찰하는 마음까지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주관인 마음과 객관인 경계가 쌍으로 없어져 마음과 경계가 함께 고요해진다.
그렇다면 진실하게 공하고 적멸한 이치가 내 목전에 환하게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생멸이 소멸하면 적멸이 현전한다는 의미인데, 이때를 당하면 산하대지가 그 자리에서 없어지고 허공까지도 분쇄되어 이곳엔 인상도 없고 아상도 없고 중생상까지도 없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영가(永嘉)대사는 “분명하게 보았더니 한 물건도 없고 역시 사람도 없고 또 부처까지도 없어 삼천대천세계가 물속에 거품이며 일체 범부와 성인이 순간에 사라지는 번개와 같다”라고 하였다.
육도범부만 얻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출세간ㆍ성문ㆍ연각ㆍ보살ㆍ부처님까지도 얻을 것이 없으며 단지 망상만 공일뿐만 아니라 진심도 역시 공인 것이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우주법계와 내 마음이 일심으로 평등할 뿐이다. 거기에 무슨 다른 물건이 있겠는가.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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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6 오후 3: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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