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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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내 옷 내가 고르기
이씨는 30대 중반에 힘들게 결혼했다. 처갓집에서 이씨가 가진 것 없다고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사람은 진심으로 사랑했고,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을 이루기까지 아내와 이씨는 무진 애를 썼었다. 꿈같은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이씨에게 아내가 “당신에게 보여 줄 것이 있어요”하며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열어보면 알아요” 하면서 아내는 “큰 맘 먹고 샀어요. 당신 거예요. 다음 주에 아버님 생신에 가는데”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씨는 궁금하게 생각하며 포장을 풀었다. 남성 셔츠였다. 환한 색상에 고급스러워보였다. 아내는 “그 색이나 디자인이 당신에게 딱 어울릴 것 같았어요.” 하였다.
그 말을 듣자 이 씨는 갑자기 거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뭐? 나한테 어울린다고? 당신이 어떻게 알아?” 이씨는 무시당한 것 같아 미친 듯이 화가 났다. 놀란 아내에게 퍼부어댔다.
“왜 나한테 물어보지 않은 거야! 내 옷이지 당신 옷이야? 왜 당신마음대로 결정하는 거야, 도대체!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내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 하고는 에이, 하며 상자를 바닥에 내팽겨쳐 버렸다.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세상에, 당신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요.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해서 사온 건데 내던져버리다니. 당신 생각해서 사온 게 뭐가 잘못된 거예요?” 이씨는 ‘당신 생각해서’라는 말에 걸렸다. “정말 나를 생각했으면 내 의사를 물어보아야지. 당신 마음대로 사 놓고는 나를 생각했다고?”
아내는 너무 놀라서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 안 입어! 가서 환불해 와! 내 옷은 내가 산다고!” 이씨는 도무지 분노를 자제할 수 없었다.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나를 그렇게 무시할 줄 몰랐다고!”하고 소리 지르고는 밖으로 나와 버렸다.

밤거리를 정신없이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걷자 힘도 빠지고 마음도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공원 벤치에 앉아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왜 그랬을까. 나를 생각해서 사온 건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의 분노는 없어지질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이씨는 마음을 가라앉혀 보았다.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이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작은 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사촌 형이 셋 있었고 누나도 있었다. 이씨는 항상 형들의 옷을 물려받아 입었고 대학교 전까지는 한 번도 자기의 옷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작은어머니가 하는 말은 “이게 너에게 어울릴 거다. 이번엔 이것을 입어라. 너를 생각해서 준다”였다. 그러나 체형이 자기와 다른 형들 옷은 너무 크거나 색이 바랬고 아무튼 제대로 어울린 적이 거의 없었다. 이씨는 어떤 옷이든 한번이라도 자기가 골라서 입어보고 싶었다. 아무리 싼 옷이라도 상관없었다. 직접 내가 골라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적은 없었다. 일방적으로 물려주거나 사주는 옷을 입어야했다.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열등감과 억울함 속에서 내 옷을 고를 수 없다는 분노가 마음 깊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래서 아내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사준 옷이지만 자기에게 묻지 않고 샀다는 사실에 그토록 화가 났던 것이다. 무시당한 느낌과 분노가 그 정도로 깊은 줄은 몰랐다. 정작 작은 어머니에게는 한 번도 화를 내지 못했다. 엉뚱하게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 준 아내에게 화살을 돌리다니, 이씨는 너무 괴로워졌다. 이씨는 밤중에 집에 들어갔다. 아내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아까는 당신이 꼭 작은 어머니처럼 생각되더라고.”
이씨가 놀란 일은 아내는 아내이지 작은 어머니가 아닌데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하는 점이었다. 며칠 동안 내내 그 생각만 했다. 그러다 우리 속엔 자생중생들이 있는데 그 각각의 중생들은 자기가 알고 겪은 것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법어가 떠올랐다. 어릴 때 화가 난 중생의식은 해소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표현을 할 수 없었을 뿐 분노는 그대로 쌓여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유사한 상황이 되자 그 중생이 나서서 걷잡을 수 없이 화를 폭발시킨 것이다.
“자생중생들은 잘 되고 잘못되고 선하고 악하고를 모릅니다. 자기가 아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내 마음이 그것을 다스려서 조복 받아야 합니다.”
법어를 마음에 새긴다. 이씨는 그러려면 자성의 힘을 길러야 될 것 같다고 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고 있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06-16 오후 3: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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