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석 암
전등사 기획팀장
우리나라는 종교 다원주의 국가다.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장례식장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무언가의 도움을 얻고자 한다. 그 절박한 심정으로 장례를 앞두고 한 번쯤은 종교에 의지한다.
장례식장에 갔을 때 일이다. 지인이 상주로 있는 분향소에서는 독경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옆 분향소에서는 개신교의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각자 개인이 믿는 종교에 따라 장례문화도 다르다. 각 종교들은 장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장례문화를 육성하고 장려하고 있다. 장례문화와 포교는 여러모로 직결되는 부분이 많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불교인재개발원에서 불교 상ㆍ장례 염불 교육생을 모집해 교육을 진행 중이다. 다른 종교에 비해 조금 늦었지만 바람직한 모습이라 여겨진다. 현대인은 자신이 죽음을 맞거나 혹은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을 대하게 될 때 종교를 찾는다. 슬픔으로 침잠돼 지쳐있을 때 정성스런 맘으로 의식을 대행해 준다면 상주로서는 큰 위안과 힘을 얻는다. 함께 의식을 치룬 상주는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신심이 굳건해지기도 한다.
장례의식과 더불어 장지도 중요한 포교방편이다. 불교는 전통적으로 매장을 선호하는 유교문화에 대응해 화장 문화와 수목장 및 산골 등 자연장 문화를 이끌어 왔다. 이런 불교전통 장례문화가 법제화된 것이 개정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중 자연장과 수목장이다. 기존의 장묘문화는 매장과 납골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산 자의 공간과 분리된 죽음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찾기 어렵다. 또한 생활주변에 이런 죽음의 공간이 들어서면 혐오시설로 인식돼 주민들의 반대도 심하다. 반면에 수목장은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인 동시에 산 자들에겐 휴식공간으로 인식돼 자주 찾고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죽음 또한 자연스런 우리들 삶의 한 과정으로 인식된다.
사찰은 수목장에 필요한 산림과 휴게소, 식당 등이 이상적으로 구축돼 있다. 사찰 주위 산림은 우리의 큰 자연유산이다. 사찰 경내를 비롯한 사찰 주위 삼림이 풍성한 것은 스님들이 도감이라는 직책을 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켰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이런 유산으로 바른 장묘문화를 선도해 포교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장사법이 개정되기 이전부터 이미 불교에서는 은해사, 전등사, 기림사에서 수목장을 실시해 왔다. 필자는 전등사 기획팀장으로 수목장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수목장이 포교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했다.
전등사의 수목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종교성향은 대체로 세 가지다. 가족 모두가 독실한 불교신자로 고인을 절 부근에 모시고 싶어 하는 경우, 고인은 독실한 불자이고 자녀들은 무교인 경우, 가족 모두가 무교인 경우다.
첫째의 경우는 이미 재적사찰이 있으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문제는 두 번째와 세 번째다. 이들은 발인을 하고 화장장을 들러 전등사에 오면 유골을 명부전으로 모셔 반혼제를 한다. 스님의 집전으로 영목에 안치하는 장례의식의 내용에 대부분의 유족들이 만족감을 느낀다. 또한 스님들의 정성과 여법한 의식에 스님과 불교에 대한 호의를 갖게 된다. 그리고 제사 등 고인을 위한 추모 행위를 하며 자주 전등사를 방문한다. 이런 방문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레 불교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다. 그 궁금증은 스님들과의 면담으로 해결되고 신도활동까지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개정된 장사법에서는 종교단체는 해당 신도들에게만 수목장 제공이 가능하다. 해당 신도들에게 국한된 법률상, 포교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장지를 찾은 이들이 불교 장례문화의 여법한 의식에 감복한다면 수목장을 이용하기 위해 불교로 귀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수목장은 포교에 있어 여전히 가능성이 큰 방편이다. 현재 개별사찰별마다 다른 명패, 관리법, 장례의식을 종단 차원에서 통합ㆍ개발해 매뉴얼을 갖춰 수목장을 진행한다면 대중에게 신뢰를 주고 포교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다만 개정 장사법은 문화재사찰(대부분의 전통사찰)의 경우 문화재청장 허가와 수목장 면적을 5000㎡로 제한했다. 이 부분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전통사찰은 문광부에 등록돼 있어 법인에 준하는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수목장을 기존 장사법에 기계적으로 적용해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득하고 면적에 대한 제한을 둔 것은 포교에 방해가 될 것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종단 차원 대책과 대응을 모색해 전통사찰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