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수행으로 망상 조복받고 번뇌타파
修止觀者有二種 一者於坐中修 二者歷緣對境修 一於坐中修止觀者 於四威儀中亦乃皆得 然學道者坐爲勝 故先約坐以明止觀 略出五意不同 一對治初心亂修止觀 所謂行者 初坐禪時 心亂故 應當修止以除破之 止若不破 卽應修觀 故云對破初心亂修止觀
지금까지 강의했던 다섯 장에서는 스물다섯가지 법을 만족하게 갖추어 정수(正修)방편으로 삼았었다.
여섯 번째로 본 정수장(正修章)에서는 정식으로 수행하는 공부에 대해 밝히고 있다. 가령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인연이 구비했다 해도 이치에 걸맞게 진실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도업을 성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사 차안만을 집착하면서 피안을 그리워한다는 꾸지람을 끝내 면치 못한다.
따라서 수행자가 지금까지 보조수행으로서 여러 가지 인연을 빠짐없이 갖추어서 몸과 마음이 청정하고 일체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면 이로부터 순일한 마음으로 지관을 정식으로 수행해야만 한다.
지관을 수습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앉아서 닦는 지관이며, 또 하나는 인연에 부딪치면서 경계를 마주하며 닦는 지관이다.
우선적으로 앉은 가운데서 닦는 지관을 말해보겠다. 본래는 사위의(四威儀)가운데서 모두 지관을 닦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행주좌와 가운데서 위엄은 두려워할만 하고 의표는 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을 방일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거나 앉거나 항상 마음을 조련하고 포섭하여 도업을 성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앉고 가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하다 보면 역시 그 수고로움을 참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때가 아니면 머물지도 눕지도 말아야만 한다. 설사 눕고 머물러야 할 때라도 불법에 대한 정념을 항상 간직하여 이치에 걸맞게 머물러야만 이 네 가지 행주좌와에 있어서 그 법도에 합하고 율의를 잃지 않게 된다.
사위의 가운데 ‘행(行)’에 대해 말해본다면 수행하는 사람이 걸음을 걸을 때 마음을 밖으로 치구하지 않고 경솔하거나 들뜸이 없이 항상 정념의 상태에서 삼매를 이루어야만 한다.
‘주(住)’는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때가 아니면 안주하지 않아야만 하지만, 만일 안주할 경우라도 처소를 따라서 항상 삼보를 생각하고 공양하며 경법을 찬탄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서 광대하게 연설하며 경의 의미를 생각하고 경법에 걸맞게 안주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좌(坐)’에 대해 말해본다면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가부좌를 하고 편안하게 좌선을 하면서 제법실상의 이치를 진실하게 관찰하고 대상의 분별을 영원히 단절하여 마음은 맑고 고요하며 몸은 엄숙하고 위의가 있어 여법하게 좌선을 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와(臥)’는 누워서 수면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때가 아니면 누워서 수면을 취해서는 안된다.
이는 몸과 마음을 조화하고 포섭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잠시 누울지라도 반드시 우측으로 누워서 정념을 잃지 말아야 하고 혼란한 마음이 없어야만 한다.
이처럼 정지하고 일어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사위의 가운데서 똑같이 지관을 수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위의 가운데서 모두 지관을 수습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사위의 가운데서 똑같이 수행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이미 오랫동안 도를 닦아 공부가 순수하게 무르익은 사람의 경우에 해당된다.
만일 초심자라면 사위의 가운데서 앉은 가운데서 수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마음을 쉬기 쉽고 경계 역시 쉽게 공적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선적으로 앉은 가운데서 지관수행하는 것을 밝혔다.
지관수행하는 법문은 매우 많아 그 방법이 한결같이 않지만 지금은 다섯 가지 뜻으로만 밝힐 뿐이다. 그러므로 총략적으로 그 뜻을 드러낸다고 말했던 것이다.
대체로 이 다섯 가지 의미에는 일체 수행문을 모두 포섭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다섯 가지 종류로 지관을 수행한다는 것은 첫 번째로 초심인의 거칠고 혼란한 마음을 대치해서 닦는 지관이고, 두 번째는 마음이 들뜨는 병을 대치해서 닦는 지관이며, 세 번째는 편의를 따라서 닦는 지관이며, 네 번째는 선정 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마음을 대치하는 지관이며, 다섯 번째는 평등한 정혜로 닦는 지관이다.
우선 첫 번째로 말한 초심인의 거칠고 혼란한 마음을 대치해서 닦는 지관에 대해 말해보자.
수행을 하며 도를 이루겠다고 최초로 발심한 사람이 처음으로 좌선을 통해서 지관을 닦을 때 마음이 거칠고 산란하여 쉬지 않을 경우 그 땐 반드시 지 수행을 통해서 제거해야만 한다. 지 수행은 산란하게 요동하는 마음을 정지시키는 수행이다.
혹시 지 수행을 해도 거칠고 산란한 마음병이 제거되지 않으면 반드시 관 수행을 통해서 타파해야만 하는데, 관 수행은 마음의 어두움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 수행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수행하는데 병통이 많기는 하지만 그 많은 병통을 요약하면 혼침과 산란 등 두 종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범부 중생들의 병통은 혼침 아니면 산란이다. 그러므로 한번 지관을 닦음으로 해서 혼침과 산란 등 두 가지 병을 타파할 수 있다. 즉 지수행으로서 거칠고 산란한 망상을 조복 받을 수 있고, 관 수행을 통해서 마음속에 미세한 번뇌를 관조하여 타파할 수 있다.
따라서 첫 번째로 초심인의 거칠고 혼란한 마음을 대치하고 타파하기 위해 닦는 지관이라고 말했다.
今明修止觀有二意 一者修止 自有三種 一者繫緣守境止 所謂繫心鼻端 臍間等處 令心不散 故經云 繫心不放逸 亦如猿著鎖
지관을 수행하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지(止)수행이고 또 하나는 관(觀)수행이다.
지 수행 가운데는 세 종류의 차별이 있다.
첫 번째는 인연을 한곳에 붙들어 매달아 그 경계를 지키는 ‘지’인데, 이는 생각을 붙들어 매는 법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수행인이 들뜬 마음이 일어나면 마음을 한 처소에 붙들어 매고 그 한 경계를 편안히 지키거나, 혹은 마음을 자신의 코끝이나 배꼽 밑 단전사이에 붙들어 매거나 혹은 모든 부처님의 상호를 연상하는 일이다.
이 모든 방법들을 총체적으로 말하면 마음이 다른 곳으로 치구하며 산란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범부의 마음은 종일토록 망상이 어지럽게 날며 잡념으로 유동한다. 이는 마치 마음이 원숭이나 말이 이리저리 날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마음을 한 곳에 붙들어 매 방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원숭이에게 자물쇠를 채우듯 한다” 라고 말했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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