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남 석
종교환경회의 상임대표
석가모니부처님은 가비라성 밖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셨고, 마가다국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으셨다. 그리고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셨으며, 구시라성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서 열반하셨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고통에 신음하는 중생들을 위해 멀고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부처님처럼 뭇 생명의 젖줄이자 어머니인 생명의 강을 잘 모시겠다고 서원한 순례자들이 추위와 더위, 눈보라와 비바람을 묵묵히 견디고 맞아가며 생명의 강을 따라 지금 이 시간에도 경건한 마음으로 걷고 있다.
스님, 원불교 교무님, 목사님, 신부님 등 수행자와 성직자가 중심이 된 순례단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 대다수의 국민들과 함께 간절히 바라고 있는 ‘운하백지화’가 5월 24일 백일순례 회향 전에 이루어졌으면 한다.
최근 중국 쓰촨성의 강진 발생으로 충칭직할시가 17개 댐 붕괴를 우려해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두장옌시 북쪽에 위치한 지핑푸댐과 고대 수리시설 가운데 하나인 위쭈이 제방에서 균열이 발견돼 붕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보더라도 댐이나 운하 등 인공적인 수로사업은 최악의 경우까지 고려해서 추진해야 하므로, 최소한 수 년간 각 분야 전문가들의 철저한 조사와 타당성 검토를 마친 후 추진해야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삼면이 바다이면서 산지형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홍수를 비롯한 각종 자연재해, 3000만 명이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식수원의 수질오염, 하천생태계와 주변 환경의 파괴, 운하예정지 주변의 문화재 파괴 등 제반 문제에 대해 치밀한 조사와 대책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만을 외치는 여론몰이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찰스 울프 미국 사회영향평가소장은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가 주최한 ‘한반도 대운하와 영향평가’ 토론회 발표를 통해 “대운하 사업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대안조차 설정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고 했다. 울프 소장은 “사전환경성 평가와 전략환경평가와 같은 환경법령은 정말로 필요한 규제들”이라며 “대형 사업일수록 더욱 세심한 평가와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대운하가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추진되는 것이 기정사실이지만 대운하만이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가”라며 “오히려 다른 곳에서 민간투자와 공공투자가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지 않겠냐”고 의문을 던진 바 있다.
지금 국민과 언론의 주요 관심사는 미국산 수입쇠고기 문제인 듯하다. 광우병의 공포를 안겨주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문제는 국민의 생명, 건강과 관련된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수원의 수질오염을 비롯해 홍수 등 자연재해와 직결된 운하문제 역시 수입쇠고기 문제만큼이나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덜해 걱정이다.
<지장경> ‘분신집회품’에 보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남자나 여자의 몸뿐만 아니라 산이나 숲이나 냇물이나 들과 강이나 못이나 샘이나 우물 등의 분신(分身)을 내어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제도하여 해탈케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범망경>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 가운데 제20 경계(輕戒)는 ‘생명을 구제하라(不能救生戒)’는 것으로, “일체의 흙과 물은 다 나의 먼저 몸이요 일체의 바람과 불은 다 나의 본체이거니 산 것을 풀어서 살려주라”고 했다.
냇물이나 강은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해탈케 하는 부처님의 분신이며 흙과 물은 나의 먼저 몸임을 알아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 함을 몸소 보여주시고 일깨워주신 도법 스님, 수경 스님, 연담 스님, 지관 스님께 깊은 존경의 예를 드린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백일순례가 5월 24일 오후 2시 종로 보신각 앞에서 회향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시대 이 땅에 구현될 수 있도록 사부대중이 함께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