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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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부터 발견하고 네 마음부터 보아라!
제주지원의 여러분, 그리고 큰스님네들과 같이 한자리를 하게 돼서 참 감명 깊고 감사합니다.
기독교나 가톨릭교에서는 불교가 목탁이나 치고 머리 깎고 염불이나 하고 점이나 보고 사주나 보는 마구니라고 오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든 가톨릭교든 불교든 하여간에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한 지구 안에, 즉 한 버스 속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한 버스 안에서 그 버스가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네 자리 내 자리, 내가 옳다 네가 옳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것을 들을 때마다 ‘불교의 심오한 뜻은, 부처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가르쳐 주신 그 뜻은 하나도 모르면서 말들을 함부로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란 풀 한 포기의 생명도 돌 하나의 생명도 모두가 ‘불(佛)’입니다. 일체 만물만생의 그 생명들은 전부 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로 통하고 뜻으로 통하고 통신으로 통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그 자체가 바로 ‘교(敎)’입니다. 끝없이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는 이 자체가 그대로 불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군데 국한돼 있는 게 불교가 아니라 전체 우주 삼라만상이 그대로 여여하게 돌아가는 자체가 바로 불교며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부처님의 뜻을 따라야 하며 진리에 순응해야 하며 시대가 발전되는 대로 시대가 변천하는 대로 또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한테 부처님께서 그 시절에 맞게 방편으로 썼던 용어를 지금 시대의 용어로써 말씀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어떤 종교를 믿든 바깥으로 끄달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은 “네 마음부터 발견하고 네 마음부터 보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여러분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상대도 없을 것이고 부처님도 없을 것이고 이 세상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각자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상대도 있고 부처도 있고 종교도 있고 세상도 있는 것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예로 든다면, 그 나무의 잎새, 가지가 무엇으로 인해서 푸르게 살고 있습니까? 바로 뿌리로 인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육신이 싹이라면 여러분의 영원한 뿌리, 근본 불성은 바로 뿌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싹은 제 뿌리를 믿어야만이 제 뿌리에서 철분 지분 수분, 이 모두를 위로 올려보내고, 위에서는 태양열과 공기력을 아래로 내려보내서 서로 주고받고 상응하면서 푸르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의 사대 성인들과 모든 부처님들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여기 부처님들도 앉아 계시지만 지금 부처님들도 그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나무가 제 뿌리를 믿어서 제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 맺고 제 나무에서 열매가 무르익는다면 바로 만 가지 맛이 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 나무에서 익은 열매는 그렇게 만 가지 맛이 남으로써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그대로 그 맛을 보고 그 뜻을 짐작을 하고, 그 맛을 보고 부처님의 묘한 뜻을 알고, 그 맛을 보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겁니다.
여러분이 내면의 자기 근본 뿌리를 믿지 않고 아무리 바깥으로 찾아 봤자입니다. 들이고 내고 하는 것도 한 구멍밖에는 없습니다. 자신이 일상생활 하는 데서 항상 보고 듣고 말하고 하는 것도 바로 오신통을 그대로 역력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 숙명통, 이 다섯 가지인데 그것도 이름 해서 다섯 가지지 여러분이 보고 듣고 가고 오면서 행하고, 남의 마음을 알고, 내 마음속으로 어디서 내가 형성됐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여러분이 지금 하고 계신 겁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다섯 가지를 다 안다 하더라도 도가 아니니라. 그것은 어떻게 따진다면 한 덩어리의 컴퓨터밖에는 되지 않느니라. 그 행하는 도리의 오신통에서 벗어나야 바로 누진의 대뇌를 통해서 자유스럽게 행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오신통 자체를 굴린다고 했습니다. 오신통 안에서는 오신통을 굴릴 수가 없으니까 오신통을 벗어나야 되죠. 통 밖으로 나가야 그 통을 굴리듯이 말입니다. 아리송합니까? 하하하…. 여러분이 지금 생활하시는 그 자체가 고정된 게 하나도 없어요. 보는 것도 고정된 게 없고, 듣는 것, 말하는 것, 가고 오는 것, 만나는 것, 또 먹는 것까지도 고정됨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이름 해서 바로 오신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 데 도가 있는 줄 알지 마시고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도가 있고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생활이 있고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바로 잘 굴리고 못 굴리고가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가만히 각자를 보십시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게 하나라도 틀린 게 있나. 여러분 몸뚱이 속에 자생중생들이 꽉 찼습니다. 자생중생들이 세포 하나하나에도 꽉 차 있습니다. 꽉 차 있는 이 자생중생을 어떻게 해야만이 제도를 하고 화하게 해서 보살로서 등장하게 할 수 있을까. 이 자생중생들이 제도를 받아야 바로 본인 자체가 견성을 하며 성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생중생들이 만약에 작용을 멈추고 어떠한 병이 들거나 파워가 일어난다면 여러분의 육체는 그냥 쓰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가 아니라 이 공간 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 몸뚱이를 혹성이라고 해도 되고 별성이라고 해도 되고 우주라고 해도 됩니다. 이 몸뚱이 속 모든 자생중생들의 의식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전부 인연이 돼서, 그 인연에 따라서 주어진 악업 선업이 바로 여러분 몸뚱이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없고, 현실은 모두가 공했기 때문에 나를 내세울 게 없다 하는 겁니다. 내가 물 한 컵을 먹었다 합시다. 물 한 컵을 먹었을 때 혼자 먹었습니까? 내가 먹었습니까, 그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먹었습니까? 그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공식(共食)을 한 겁니다. 그랬으니 ‘내가 먹었다’ 할 수가 없죠. 내가 일할 때도 같이 했으니 ‘내가 일했다’ 할 수가 없고요. 내가 봤다 하더라도 ‘내가 봤다’ 할 수가 없고요. 내가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내가 혼자 번 게 없고요. 모두가 한 게 없습니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어요! 높다 낮다 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왜 높다 낮다 할 수가 없는가. 모두가 공생 공용 공체 공식화 하고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내가 벌었다’ 망했다 하더라도 ‘내가 망했다’ 또는 누구를 줬다 하더라도 ‘내가 줬다’ 지금 살고 있는 것도 ‘내가 살고 있다’ 그저 매사 게 나, 나, 나, 나 하거든요.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내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아까 내가 말했듯이 오신통이 컴퓨터와 같습니다. 자동적인 컴퓨터! 인간에게는 자동적으로 입력이 되는 거지 누가 입력을 해 줘서 입력이 되는 게 아닙니다. 행을 잘하고 말을 잘하고 모든 거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입력이 될 거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입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입력이 되는 대로 현실에 그것이 바로 나오는 것입니다. 입력이 된 대로 말입니다.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하죠. 그것을 번뇌 망상이라고 하고 애고라고 하고 업보라고 하고 유전성이라고 하고 영계성이라고 하고 세균성이라고 하고 인과성이라고 하고, 모두가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입력이 돼서 지금 현실에 나오는 거니까 나오는 구멍에다 다시 입력을 한다면 앞서 입력된 게 없어진다.’ 하고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물질세계에서 물질과학으로 발전을 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노력하고 행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대로 우리가 물질과학으로 물질세계에만 등장을 한다면 절대 그것은 올바른 과학이 아니며 올바른 천체물리학이 아닙니다. 올바른 의학이 아니고 올바른 철학이 아니고 또 올바른 천문학도 아닙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뜻에 의하면 (물컵을 만지시며) 이것이 부피가 어떻고 크기가 어떻고 어떻게 생겼고 하는 것을 자꾸 발견해 내는 것이 도라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발견했으면 그와 더불어 배가 고프면 먹을 줄 알고 목이 마르면 마실 줄 알고, 잠자고 싶으면 잠잘 줄 알고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날 줄 아는 것이 도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진짜 자유인이 돼야만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라는 말은 어떤 개별적인 하나의 부처를 말한 것이 아니라 곤충에 이르기까지 나 아님이 없을 때에 그걸 이름 해서 부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생중생들을 다 제도를 하셨기 때문에 바로 자기가 제도가 된 거고, 제도를 해서 천백억화신으로서, 즉 지금 현재의 말로는 원자에서 분자로서 입자가 수만이 나가서 응신이 돼서 바로 각양각색의 중생들에게 응신이 돼 주시니까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잘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은 체가 없으면서도 헤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부처님의 마음에서 나가는 아촉이니 이 아촉불 자체가 전체를 이끌어 가지고 가는 것이죠. 우리가 몸속에 있는 자생중생들을 잘 제도하려면, 아까 얘기했듯이 그런 업보나 인과성 유전성 영계성 이런 것은 말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시식을 지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단,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죠. 나오는 구멍에다 다시 입력을 한다면 앞서의 팔자 운명 모든 애고가 사라지고 만다 이겁니다.
우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체 만물이 다 지수화풍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지수화풍으로 뭉쳐졌기 때문에 지수화풍을 먹고 삽니다. 지수화풍이 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그거를 먹으면서도 광력 전력 자력 통신력이 충만히 여러분한테, 각자 모두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한생각에 의해서 모두 쓸 수 있는 것을 관습이나 습에 끄달리고 애고에 끄달리고 욕심에 끄달리기 때문에 그 한생각을 자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질질 끌려가듯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그 뜻이 무엇인가? “너희는 먼저 몸속의 자생중생들 속에서 벗어나고 둘째는 어항에서 벗어나거라.” 하셨는데 그건 공기주머니에서 벗어나라 이 소리죠. 우리가 지구를 벗어나서 한 발짝도 떼어 놓지 못하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 마음들이 한 발짝도 떼어 놓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가지고 마음대로 살 수 있습니까? 마음을 가지고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사시죠?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너희는 그 마음을 벗어나서 마음대로 자유스럽게 살아라.” 하고 가르치신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반드시 무명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얘깁니다.
우리 마음은 체가 없어서 우주 삼라만상 이 법계를 다 한 찰나에 둘러보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도리를 여러분이 아신다면 바로 부처님의 뜻도 알 뿐만 아니라 큰스님네들의 법도 아실 겁니다. 왜냐하면 그 도리를 아신다면 본래 나온 것이 없기 때문에 본래 갈 것이 없거든요. 이 육신이 죽었다고 해서 여러분이 죽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육신을 벗고 이 세상에 또 출현을 하는데, 어떤 모습으로 나올는지 모르죠. 물론 뱀의 모습도 될 수 있고 개 모습도 될 수 있습니다. 개같이 살았으면 개 모습을 가지고 나올 것이고 사람같이 살았다면 사람 모습을 가지고 나올 것입니다. 이 세상의 법은 요만큼도 에누리가 없습니다. 내가 언젠가 한번 그런 말을 한 예가 있죠. 공동묘지에 가니까 늙은이 젊은이도 없고 여자 남자도 없고 늙은이 애도 없고 모두가 없더라고요.
여러분은 도의 진리를 너무나 가깝게 두고 계시기 때문에 못 찾는 겁니다. 이 몸뚱이 속의 자생중생들이 자기를 움죽거리게 하고 보게 하고 듣게 하고 온통 욕심이 나게 하고 분기가 나게 하고 사람을 죽이게 하고 별짓 다 하거든요. 그래서 “네 마음의 선장으로 다스려라. 다스리면서 내면에, 나오는 구멍에다 다시 넣어라.” 이런 겁니다. 나오는 구멍에다 다시 맡겨 놓지 않는다면 그 업보는 없어질 수가 없고 그 번뇌 망상은 녹아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한껏 지금 편안할 때인데…, 하늘이 무너지고 조각조각 나서 가루가 된다 한들 뭐가 속이 상합니까? 이 세상에 풀 한 포기만 살아 있어도 부처님 법은 그대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마음 없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 우주도 역시 형성될 때에 지수화풍이 한데 합쳐진 대천지세계에서…,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될까요? 검은 대륙이라 그럴까요? 하여튼 거기에서 지수화풍이 한데 합쳐져서 대우주를 형성시켰고, 우주를 형성시키고 별을 형성시키고, 별을 형성시켰으면 태양을 형성시키고 위성도 형성시키고, 우리 인간의 생명도 형성을 시키고 모두를 형성시켰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하나처럼 나가기 때문에 우주의 근본이 인간의 마음에 직결이 돼 있고 이 세상 돌아가는 자체가 바로 가설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여러분한테 원력이 주어져 있으니 바로 제 나무는 제 뿌리를 믿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신도가 오든 안 오든 걱정을 안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날 위해서, 우리 승려들을 위해서 갖다 주는 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갈 때 물건을 사러 간 거지 돈을 가게 주인한테 갖다 주려고 간 게 아닙니다. 물건을 사러 갔을 때는 그 물건의 값어치가 되는 대로 돈을 내놓고 그 물건을 사 갑니다. 그러면 이쪽에서 돈 준 사이도 없고 저쪽에서 물건 준 사이도 없습니다. 부처님의 법이 그러합니다. 부처님의 법이 그러하므로 부처님의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법이 부처님의 법입니다. 도는 생활 속에 있는 거지 나를 떠나서 있는 것이 없고 마음을 떠나서 도가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습관에 의해서, 이사를 가더라도 부적을 해서 붙여야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적 아니면 의지를 못하죠. 지금 이 밝고 밝은 세상에, 마음을 발전시켜야 할 세상에 말입니다. 마음을 발전시켜야만이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를 어디에 세워 놔도 뒤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 가정을 어디에 세워 놔도 뒤지지 않을 것이고, 어느 돌 위에 동그마니 세워 놔도 살 수 있게 되어 멋진 삶의 보람이 있을 겁니다. 지금 여러분은 물질계에만 치닫고 있어서 정신계는 아주 부족합니다. 정신계와 물질계가 동등해야 이 세상에 혼란이 안 올 뿐만 아니라 지금 청년들에게도 혼란이 오지 않습니다. 자라나는 애들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천지차이로 차이가 나니까 이거는 무슨 도깨비처럼 날뛰죠. 이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것을 믿더라도…, 생각을 해 보십시오.
나뭇잎들이 자기 뿌리를 안 믿고 딴 나무를 믿는다거나 딴 이름을 믿는다거나 딴 형상을 믿는다 하면 에너지가 자기 나뭇잎으로 올 수 있을까요? 절대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소크라테스도 “너부터 알아라!” 했고, 달마 대사께서도 “너부터 알라” 했고, 모든 부처님들, 각계각층 선지식들께서 다 “너부터 알라” 했습니다. 너를 모른다면, 과거의 너를 모른다면 문제가 해결이 되지를 않죠. 과거의 너를 잡고 가야만이 무의 세계, 정신세계를 타파할 수 있는데, 자기를 형성시킨 자기를 모른 체하고, 즉 말하자면 자기 뿌리를 모른 체하고는 딴 싹, 딴 이름, 딴 형상을 믿고 온통 나를 살려 달라, 이사를 가는데도 잘 가게 해 달라, 죽게 돼도 낫게 해 달라, 이러니 이게 될 법한 일입니까?
그리고 정신계가 지금 물질계하고 차이가 워낙 나기 때문에 지금 의학계에서도 병고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거든요. 어디서 온 줄을 알아야 대치를 할 텐데 어디서 온 줄을 모르지 않습니까? 학술적으로만 배웠으니까 말입니다. 누가 그 학술을 배웠느냐, 어떤 놈이 그 학술을 배웠느냐는 얘깁니다. 그래서 일상생활 모두가 마음 빼놓고는 절대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의학계에서도 30%, 많이 쳐야 40%밖에는 이끌어 갈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럼 60%는 누가 끌고 갑니까? 모든 게 정신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즉 심성계에 말입니다. 그리고 아까 얘기한 것 잘 들으셨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과학자 여러분은, 얼른 쉽게 말해서 (물컵을 만지시며) 이 둘레가 어떠니, 물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느니, 어떻게 만들어졌느니, 몇 해가 됐느니, 이런 거를 연구해서 발견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가는 거는, 보고 알았으면 갖다가 먹을 줄 알고, 대치해 놓을 줄 알고 옮겨 놓을 줄 알고,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어야만이 이게 도다 이겁니다. 그러니만큼 도가 아주 어렵고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 생활 속에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계신 겁니다. 그런데 한 찰나를 뒤집어보지 못하고 그 업식에 의해서, 습관 습성에 의해서 영 고쳐지지가 않죠.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게 이상스럽다고만 생각할 수밖엔 없죠. 예전에 소크라테스가 “너부터 알라” 하니까 저놈 이상스런 말만 한다고 죽였지 않습니까? 지금 생각을 해 보니 죽인 게 아쉽죠, 모두?
그래서 여러분한테 그렇게 능력이 주어져 있으니까 그대로 한생각을 잘하시라 이겁니다. 지금 청년들의 삼분의 일이 어떡하고 지내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많이 보시죠? 부모 자식 간에 또는 부부지간에 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아들이 오늘 학교를 간다더니만 안 가고 저녁에 들어왔다고 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심정으로 대하십니까? “요놈의 새끼야, 응? 공부하러 가랬더니 어디 가서 퍼질러 다니면서 놀다가…, 요놈의 새끼!” 하고 그냥 노발대발하고 막 욕을 퍼붓죠? 그렇게 해서는 절대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그렇게 된 거는 마음으로 해결을 해야지 욕이나 말로 해서는 절대 해결이 안 납니다. 마음으로 잘못된 거는 마음으로 고쳐야지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얘기하죠. 만약에 자식들이 속을 썩이고 돌아다니다가 들어오걸랑 “아이구! 너 배고프지 않았니? 어디 가서 이렇게 자고 왔니? 어디 가서 이렇게 놀다 왔니? 용돈은 떨어지지 않았느냐?” 이러고 아주 부드럽게 말을 해 주면서 부드러운 행을 해 주면서 따뜻하게 해 주면서 안에다 맡겨 놓으라고요. 끌어 쓰는 용도는 다 달라도 전력은 다 똑같죠? 그러니까 모든 것의 전력이 다 똑같듯이 아들의 주인공 뿌리와 내 뿌리가 둘이 아닌 까닭에 바로 ‘주인공! 저 아들의 마음이 저렇지 않도록 하는 것도 너밖에 없어!’ 하고 거기다가 맡겨 놔야 그것이 그대로 진행이 되는 겁니다. 마음과 마음은 천리만리라도 통합니다. 마음이라는 걸 여러분이 보지 못하니까 아주 무시하죠? 그러니 통신이 어떻게 됩니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묘하답니다.
아주 난폭하고 공부도 안 하고 등록금 주면 갖다가 삭쳐 버리고 술 먹어 버리고 이렇게 하던 아들을 가진 신도가 있었는데, 자꾸 따뜻하게 부드럽게 해 주면서 주인공에다가 ‘모든 거를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하고 놓았답니다. 그랬더니 그 마음으로 전달이 돼 가지고 마음이 달라지면서, 하루는 항아리를 닦고 있는데 “피곤하죠, 엄마!” 그러면서 “내가 좀 들어 드리고 내가 좀 닦아 드릴게.” 하고 그날부터 착해져서 지금까지 효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대중 박수)
그러니 내가 여러분에게 한마디 할 것은, 생활 속에서 남편이 잘못했다거나 괴롭히더라도 말로다가 아웅다웅하고 싸우지 마시고 부드럽게 얘기하고 부드럽게 행해 주시면서 거기다 맡겨 놓으세요. 남녀를 막론해 놓고 부부지간에도 그렇고 부모자식지간에도 그렇고 모두 그렇습니다. 거기다 맡겨 놓고 화목하고 질서 있게 행하세요. ‘모든 게 내 탓이야. 내가 없다면 상대가 없을 거니까 잘했든 못했든 내 탓이야.’ 하고서 자기 탓으로 돌리면서 부드럽게 말을 해 주고 부드럽게 대해 준다면 바로 전기가 통하듯이 그냥 마음과 마음이 통해서 과거 무심과 지금 현재 유심이 같이 둘이 아니게 통해 가지고 자기가 마음먹는 대로 화목해지고 사랑하게 되고 사랑해 주고 그렇게 되죠. 지금 그런 사람들이 우리 신도 중에 많이 있습니다. 본원도 그렇고 지원도 다 그렇게 해서 살고 있죠.
오늘 마지막 세 번째 천도를 했습니다만 내가 제주도에 처음에 와 보니까요, 그 4·3 분규 아시죠? 4·3 분규! 저쪽 사람들이 산속에 숨어 있으면서 제주도 사람들을 끌고 올라가고, 그러니까 이쪽 사람도 이쪽을 죽이고 저쪽 사람도 이쪽을 죽이고, 그냥 아주 샌드위치가 돼서 숨으려고만 애를 쓰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았죠. 땅속으로 돌 틈으로 모두 은신을 하기 위해서 들어갔다가 죽은 그 영혼들이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여기 한때 뱀이 무지하게 많았죠? 뱀 말입니다. 그렇게 돌 틈으로 들어가고 굴속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돼서 죽으니까 그 영혼들이 다 그냥 혼비백산을 해서 숨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쪽으로 들어가서 탄생이 될 수밖엔 없죠. 그래서 아마 이 제주도에서 많은 곤욕을 치루었으리라고 봅니다. 그냥 뱀이 집 가로 막 기어들어서요. 그러나 지금은 보려 해도 별로 볼 수 없죠? 어떻습니까?
대중: 예! (대중 박수) (다음 호에 계속)
2008-05-13 오전 11: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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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