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처님오신날을 맞았습니다.
부처님오신날! 큰 소리로 부처님오신날! 하고 외쳐 봅니다. 과연 부처님은 어디에 와 계시는가? 하는 의문이 뒤따릅니다. 물론, 부처님은 우리 마음속에 함장 되어 있는 ‘본래무일물’의 진리라는 선가(禪家)의 가르침을 모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일체가 연기적 순환 구조 속에 있음을 깨달아 집착의 굴레를 벗어난 곳이 ‘부처의 자리’라는 교학의 근본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디에 와 계시는가? 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불기2552년 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에 던지는 이 질문의 유효성! 인간 세상에는 부처님이 와 계시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 사회의 갈등은 하루도 그칠 날이 없고 온갖 범죄도 쉬는 날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와 계신 곳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갈등과 범죄가 있는 곳, 인간의 꽃이 시들고 악의 꽃이 무성한 곳에 부처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오지 않았습니다. ‘착함도 악함도 생각하지 말라’던 가르침은 공허한 관념놀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음’을 알고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거문고 줄을 고르라’던 가르침도 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부처님은 어디에 와 계시는 걸까요?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이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나던 그 상황을 상상해 봅니다. 경전에 전해지는 설화들을 토대로 부처님이 오시던 그 날을 생각해 보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디에 부처님이 와 계시는지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납니다. 왕비의 옆구리를 열고 길에서 태어납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궁궐의 깨끗한 산실에서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가의 나뭇가지 아래서 태어납니다. 부처님이 태어난 길은 어떤 길입니까? 계급과 권력과 권위 그리고 부와 명예를 따르기 보다는 인간 본래의 모습 우주의 본래 진리로 통하는 길을 추구하는 바로 그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길에 와 계십니다. 계급 보다 낮고 권력이나 권위, 부와 명예 보다 낮은 길, 보다 어려운 사람에게로 향한 길에 부처님은 계십니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분명히 부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를 외칩니다. 물론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 상징을 믿지 않는 불자는 없습니다. 이 외침이야말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가장 극명한 이유인 것입니다. 인간존엄의 선언이고 생명의 가치를 넘어서는 것은 없음을 밝힌 것이며 마땅히 일체 생명이 더불어 편안한 세상을 열겠다는 사자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생명입니다. 존엄한 생명을 존엄하게 알고 온 생명이 더불어 행복고자 노력하는 그 곳에 부처님은 와 계십니다.
부처님을 만나는 길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안쪽에 있습니다. 자신의 안쪽에서 지혜와 자비의 길을 열어 일체를 걸림 없이 들이고 낼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부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날이 바로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부처님 만나는 길을 닦읍시다.